음식 문맹자의 본의 아닌 자아 비판
어제 아침, 제보(?)를 받았다. 경향신문에 <맛집 문맹자들>이라는 칼럼이 실렸는데, 내 블로그 글 <삼고초려하고도 만석 닭강정 안 먹은 이유>가 언급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확인해보니 ‘유명한 닭강정집에 갔다가 가게 앞에 떡하니 쌓여있는 치킨파우더 박스를 보고 그 길로 돌아나왔다는 음식 칼럼니스트의 목격담은 희귀한 사례가 아니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 앞뒤 맥락이 내가 원래의 글에서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달랐다. 아니, 솔직히 그 맥락에서 왜 나의 사례가 언급되는지조차 이해하기 어려웠다. 필자는 정지은이라는 문화평론가. 누구지? 정지은? 갑자기 이름이 너무 낯익게 다가와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런, 최근 일 때문에 이야기를 주고 받던 모재단의 직원이었다. 블로그를 읽고 있으며, 그걸 바탕으로 재단에서 진행하는 문화사업 가운데 하나를 의뢰하고 싶다고 최근 연락을 받아 그 주제 등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조정하던 중이었다.
일단 문자로 그 글을 쓴 사람이 본인인지 확인한 뒤, 전화로 물었다. 인용한 사례는 맥락과도 전혀 맞지 않고 나의 의도와도 전혀 다른데, 아예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일 때문에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의 특수성까지 감안한다면 ‘이런 내용의 글에 그 사례를 인용하려 하는데 적합하겠느냐?’라고 왜 물어보지 못했느냐는 것이 나의 요지였다. 이에 그는 그 맥락에서 나의 사례를 인용하는게 적합하다고 생각했으며, 또한 성가시게 하고 싶지 않아 굳이 연락을 해서 물어볼 필요를 못 느꼈다고 대답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확인할 필요를 못 느꼈다’라는 것. 되려 ‘왜 화를 내느냐’며 그 맥락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되묻는 그에게 나는, ‘치킨 파우더’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아느냐고 물었다.’화학조미료의 일종이라고 들었습니다.’
부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 매체의 음식글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 글 또한 너무나도 중구난방이지만, 나의 사례가 인용되지 않았더라면 사실 읽을 일도 없었을 것이며 설사 읽었더라도 짜증은 났으되 외부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경우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일일이 대응하다가는 내 이야기며 정보를 전달할 시간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 음식 문화의 총체적인 문제점은 압도하는 ‘아마추어리즘’이다. 늘 먹는데다가 ‘의’와 ‘주’와는 달리 손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공부나 연습없이도 권위자 행세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음식을 우습게 안다. 현재 우리가 먹는 성의도 없고 맛도 없는 음식은 모두 이런 마음가짐의 결과물이다. 여태껏 음식에 관심도 없이 살았으면서, 일하다가 잘 안 풀리면 카페나 음식점을 차려서 뭐라도 만들어 팔면 될거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끼니 때울만큼 재료 썰고 불 피우는 것과 ‘요리’에 관련된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데, 전자가 되면 당연히 후자라고 생각하고 체계적인 조리 시스템 안에서 수백년 동안 이론과 실기를 넘나들며 검증된 지식의 존재조차 모른채 말도 안되는 주장을 조리의 비법인 양 눈먼 사람들에게 설파한다.
이런 식으로 음식에 접근하는 사람들이 글을 쓰다 보니 음식저널리즘 또한 아마추어리즘에 혹사당하고 있다. 지금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화평론가가 문화의 한 가지로서 음식을 짚어보는 건 의미있는 시도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제반 지식을 확실하게 갖춰야 한다. 내가 글에서 언급한 ‘치킨 파우더’는 화학조미료가 아니다. 누구에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글의 원저자인 나는 그런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다. 인터넷만 뒤져봐도 그 맥락에서 언급하는 치킨파우더가 뭔지는 금방 찾아낼 수 있는 상황에서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 또한 글쓰기 대상으로서의 음식을 우습게 알고 접근하는 행위이자,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기본 자세 또한 갖추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의견을 빚어내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아무도 완벽할 수 없지만, 적어도 시도는 할 수 있다. 정지은이라는 문화평론가에게 나는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손 닿을만한 거리에 있었지만, 참으로 궁색한 이유에서 그는 내 글을 언급하면서도 나에게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글을 통해 비판하는 ‘음식 문맹자’, ‘맛집 문맹자’의 굴레에서 본인조차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본의 아니게 드러내었다. ‘치킨파우더’가 조미료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줌과 동시에 나중에 다시 전화를 하겠다던 그는 열 시간정도 지난 다음 메일 한 통을 보내 자신의 감정적인 대응을 사과하며 경향신문에 연락해 문제가 된 인용을 지우거나 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지만, 이 글을 올리기 직전 통화한 경향 신문의 담당자는 그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UPDATE: 이 글을 올린 뒤 경향신문에서 해당 글의 필자와 통화해 나를 인용한 부분을 지웠다고 한다. 필자로부터 연락받았다.
# by bluexmas | 2013/01/09 10:46 | Taste | 트랙백 | 핑백(1) | 덧글(16)
Linked at The Note of Thir.. at 2013/10/01 23:04
…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이런 게 싫어서 회사도 안 다니는데 그래도 겪어야만 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그러던 와중에 올 초에 있었던 일이 또 생각났다. 이 글에서 언급했던 일의, 말하자면 후폭풍 같은 것이다. 그 또한 잠재적 갑님과의 일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소 비슷한 상황이었다. 다만 그쪽에서 먼저 연락을 했고, 나 … more
그러면 건 파우더나 베이비 파우더는 뭐란 말인감???
우리가 식인종이라 아기에게 베이비 파우더 뿌려서 구울 일도 없을 텐데 말이죠.
저도 알레르기 때문에 닭을 안 먹어서 치킨 파우더라길래 육수 낼때 쓰는 치킨 스톡 비슷한 국물용 치킨 파우더를 생각하곤 닭강정에 왜 그게 들어가나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튀김용 가루 이야기더라고요. 맞죠?
전통 닭 강정은 튀김옷 없이 양념으로 졸이는 음식인데 튀김옷을 입혀서 만드는 것은 새로운 스타일인 모양입니다.
안그래도 요즘 과도한 아마튜어리즘이 제대로 된 지식의 숙성을 방해하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사진 좀 찍기 시작하고 값비싼 풀프레임(흠…찔려라…) 들고 몇년 되면 마치 자신이 무슨 카파나 브레쏭 쯤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때문에 사진이 더 우스워져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별 문제 없다면 땡이라는 마인드가 깊숙히 뿌리를 내려서 곪을때로 곪은 모양입니다
디테일에 약한 한국사람들의 특징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육계는 35일이고 삼계닭이 20일 키운 것이라니… 이 무슨 망발이냐는…
양계장가서 그런 소리 했다간 몰매 맞을 것인데 아주 신문이라는 공신력 있는 대중매체에 올리는 글 치고는 사실 확인 같은 것을 아주 날로 했다는 느낌입니다.
( 하긴 그 신문 자체도 찌라시 수준이지만…)
기자나 평론가들의 남의글 무단인용은 너무 심한것 같아요 저는 예전에 모 음악평론가분이 제가 한 표현을 고대로 가져다 쓰시곤 해서-_-;;;;;;;;;
사실 잘 모르면 헛갈릴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자기가 뭘 모르는지조차 몰랐던 모양입니다. (쯧쯧)
비공개 덧글입니다.
근데 자료출처에 대한 무단사용 및 기재는 저작권 위반아닌가요?
자기 “저작” 팔아서 먹고 사는 글쟁이가 저렇게 인용에 있어서 개념이 없으니
우리나라 글쓰기 수준은 정말 미국 초딩만도 못한거 같아요.
미국은 초딩이라도 남의 자료 함부로 출처 안밝히고 가져오면 가차없이 F 받는다는데;
!!!!! 이 부분이 누구 좀 보여주고 싶은 구절이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