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또르띠야
며칠 전, 추적추적한 날씨 탓인지 밀가루 생각이 부쩍 나서 또르띠야를 부쳐 먹었다. 따지고 보면 별 건 아니고 그저 멕시코식 밀전병인데, 발효시키지 않고 베이킹 파우더로 특유의 공기방울을 불어넣는다(안 넣는 경우도 있다). 요즘은 이런저런 랩의 대중화로 슈퍼마켓에서도 살 수 있지만 최소한 열 가지는 될 재료 목록을 보고 있노라면 굳이 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방부제를 넣어서 만들면서 굳이 냉장 유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슷한 또르띠아를 미국에서는 그냥 상온에 놓고 판다. 방부제가 좀 덜 또는 안 들어간 건 냉장, 냉동 유통하고).
사실 ‘또르띠야(tortilla)’라는 명칭은 스페인어로 작은 케이크(small torta)라는 뜻이니 굳이 이런 밀전병에만 붙이는 이름은 아니다. 예를 들어 ‘스패니시 또르띠아’는 감자와 양파를 올리브 기름에 천천히 익힌 다음 계란에 섞어 구워내는, 프리타타 등과 비슷한 일종의 오믈렛이다. 한편 또르띠야 또한 굳이 밀가루로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옥수수가 밀보다 훨씬 더 먼저 쓰였는데, 요즘은 밀가루처럼 가공한 옥수수가루(maseca) 또는 생옥수수(주로 hominy)로 만든다. 특히 옥수수로 만들 경우 글루텐 함량이 적어서 밀대로 밀지 않고, 우리가 메밀가루로 평양냉면 면발을 뽑는 것처럼 특유의 또르띠아 누르개로 눌러 만든다. 금속으로 만든 가정용을 쉽게 살 수 있는데, 유튜브를 뒤져보니 직접 만들어 쓰는 양덕도 있는 모양이다.
주로 미국 레시피를 참고해서 만드는데, 사실 이게 정통 또르띠아 레시피인지는 잘 모르겠다. 미국에 널리 퍼진 멕시코 음식이라는 게 국경을 공유하는 텍사스(텍스멕스)나 캘리포니아의 패스트푸드화된 타코, 부리또 등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칠리, 선인장, 위틀라코체(Huitlacoche, 아즈텍족이 즐겨 먹었다는, 옥수수 알갱이에 생기는 균류-옥수수 깜부기) 등 온갖 요소들이 가득하다던데 먹어본 적은 없다. 미국에서는 인류학 박사 과정을 위해 멕시코에 공부하러 갔다가 음식에 빠져 커리어를 바꿨다는 시카고의 릭 베이리스를 멕시코 요리에 가장 정통한 셰프로 꼽는다.
한편 밀가루 또르띠아의 핵심은 부드러움이다. 그래서 지방을 넉넉하게 넣는데, 기본적으로는 라드나 쇼트닝을 쓰지만 첨가물이 들지 않은 제품을 찾을 수 없으므로 그냥 버터로 대체하면 된다. 밀대로 밀어야 하는게 좀 귀찮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리 만들기 어렵지 않다. 밀가루와 베이킹파우더, 소금, 실온에 잠시 두어 부드러운 버터를 푸드프로세서 등으로 잘 섞은 뒤 물을 흘려넣어 반죽을 만들고, 반죽이 수분을 충분히 머금도록 랩으로 싸서 잠시 두었다가 등분해서 밀고, 무쇠팬 등 두껍고 열을 잘 머금는 팬에 한 면당 30초~1분 정도 구우면 된다. 먹고 남은 건 랩으로 싸거나 짚백에 넣어 냉동보관한다. 영화 <Sin City>의 DVD 서플먼트인가에는 감독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할머니의 레시피라는 또르띠야를 직접 만들어 야식/아침을 먹이는 영상이 들어 있다. 인터넷을 뒤지면 레시피도 찾을 수 있다.
# by bluexmas | 2013/01/02 10:48 | Tast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