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크리스마스 테이스팅 코스
작년에는 건너 뛰었던 크리스마스 테이스팅 코스를 올해 다시 시도해보았다. 가급적이면 시간을 많이 뺏기지 않도록 오븐이나 수비드를 많이 써서, 실제 준비에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예전에 사두었던 저렴한 반 병짜리 와인을 여러 종류 따서 먹었다.
1. 아뮤즈 부시: 지리산 생햄과 버번에 조린 두 종류 사과, 타임-마스카르포네 치즈
예전부터 지리산 생햄 이야기를 들어왔는데 겸사겸사, 이번 기회에 먹어보았다. 돼지고기와 사과, 또는 파인애플은 그냥 상식적인 조합이고, 부드러움을 더하기 위해 크림치즈 같은 걸 생각했는데 마침 디저트에 마스카르포네 치즈가 들어가서 거기에 타임, 레몬즙을 더했다. 빵을 좀 미리 구워놨거나 북유럽에서 많이 먹는 통밀 크래커가 있다면 좋았겠지만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못해 알 수 없는 밀가루 덩어리를 급조해 바닥에 깔았다. 목표는 바삭함을 더해 대조를 주는 것이었는데, 다 만들어 놓고 나니 영낙없는 카나페였다.
2. 단호박 수프와 호박씨, 조린 오렌지껍질 튀일
제주도 단호박을 오븐에 구워서 껍질을 발라낸 뒤 끓여 블렌더에 갈고 체에 거른 뒤 우유, 크림, 카다몸을 더했다. ‘부드러운 수프에 바삭한 과자”라는 개념으로 튀일을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호박 수프니까 호박씨로 만드는게 낫다 싶어 레시피를 찾아서 응용했다. 호박과 오렌지, 그리고 그 사이의 카다몸 조합도 잘 어울리니 아이스크림이나 쿠키에 넣으려고 설탕에 조려둔 오렌지 껍질도 조금 다져 더했다. 덕분인지 아주 바삭해야할 튀일이 조금 끈적거려 만족스럽지 않았다. savory tuile이 더 잘 어울릴텐데 어쩌다보니 sweet tuile을 만들었다.
3. 봄동샐러드와 꼴뚜기
카르파치오는 좀 그렇고, 관자를 구워볼까 했는데 키조개 관자는 딱딱해서 그런지 썰어서 파는 것 밖에 없다. 싸지도 않고 양도 많아서 대신 꼴두기를 골랐다. 소금, 올리브기름, 마늘, 생강에 잠깐 재워뒀다가 달군 팬에 아주 살짝 익혔다. 요즘 나오는 꼴뚜기는 정말 오래 익힐 필요가 없다. 대부분의 경우 버터를 녹인 팬에 마늘, 샬롯 등등을 잠깐 볶다가 더해 살짝 익히면 먹물이 조금 배어나오면서 국물이 생긴다. 여기에 파스타를 비벼 먹어도 훌륭하다.
4. 수비드 삼겹살과 두 종류의 양파
섭씨 65도에 36시간 익힌 삼겹살의 겉을 지지고, 카라멜화한 양파와 설탕, 셰리식초에 절인 샬롯(그리하여 두 종류의 양파;;)을 곁들였다.
5. 슈톨렌 위에 얹은 두 가지 치즈
냉장고에 굴러다니던 치즈 두 가지를 선물받은 슈톨렌 위에 얹었다코스트코에서 산 미디엄 체다와 작년 오레곤 주 Coos Bay 근처 수퍼마켓을 기웃거리다가 처음 보길래 집어온 노르웨이의 단맛 나는 치즈 Gjetost(발음이:;;;). 그냥 치즈를 먹는다고 흉내만 내는 수준;;
6. 실패한 부시 드 노엘
‘그래도 맛은 괜찮았다’라는 변명이 케이크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말려야만 하는 롤케이크가 말리지 않고 부서졌다면 아무리 맛이 괜찮았다고 해도 실패한 것. 바로 이 부시 드 노엘(이라고 불러도 되기는 할까요ㅠㅠ)가 바로 그렇다. 롤케이크는 처음 만들어봤는데 레시피를 따라 비스퀴를 만드는 순간부터 이미 실패라는 걸 깨달았고 슬픈 예감은 당연히 현실이 되어 김밥 싸는 발로 살짝 돌리자마자 바로 꺾어졌다 ㅠㅠ 그냥 내년을 기약하기로… 속에는 마스카르포네에 스타벅스 비아 크리스마스 블렌드를 섞은 커피크림이, 겉에는 전자레인지로 돌려 만든 간단한 가나슈를 발랐다.
# by bluexmas | 2012/12/28 13:34 | Taste | 트랙백 | 덧글(20)
엄마손인 저한테는 불가능 해보여요.
음식 하나하나 정갈한게..너무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