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 라 룬 비올렛- 핵심은 프로, 나머지는 아마추어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그렇다. ‘핵심’을 이루는 음식의 조리 자체는 아주 훌륭한데 그 ‘나머지’인 디테일은 안타까울 정도로 아마추어 냄새를 물씬 풍긴다. 잘 만든 음식을 담아내는 방법부터 인테리어, 메뉴판(이것만 다른 블로그에서 보고는 사실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등 모든 부문에서 그러하다.
물론 이해가 가는 구석도 있다. 비용이나 기타 문제 등으로 인해 가장 중요한 음식에만 선택적으로 집중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위치조차 그러한 느낌을 받도록 만든다. 그 정도라면 일부러 찾아가야만 할뿐더러 겨냥하는 고객층이 갈만한 다른 장소도 가까이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선을 고려해야할 여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돈보다는 센스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 부문이 특히 그렇다. 네 가지(관자 브리지, 발로틴, 수비드 코숑, 비스트로 비프) 요리에 와인 한 병을 마시고 슈 디저트를 먹었는데, 발로틴의 속에 든 ‘무스(?)’의 식감이 마치 익어서는 안될 것이 익어 묘한 것과 관자의 겉을 아주 살짝 더 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 빼놓고는 훌륭했다. 간도 내가 생각하는 서양 요리의 범위 안에 들어 있었으니, 가격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지난 번에 먹은 레스쁘아의 요리보다도 그 부분만 놓고 본다면 훨씬 나았다. 특히 수비드로 익힌 삼겹살은 정말 훌륭한 수준이었다(삼겹살은 수비드로 조리하기에 가장 훌륭한 부위라고 생각하지만, 지방은 뭉개지고 정육은 갈라지므로 언제나 그 사이의 균형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훌륭하게 조리한 단백질이 곁들이 야채나 담음새 등을 거쳐 100점에서 90점으로 떨어져버린다. 예를 들어 발로틴의 경우 곁들여 낸 호박과 양배추가 차가웠으며(어떤 의도라도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삼겹살의 경우 오목한 접시 가장자리에 담은 네 종류의 곁들이 채소를 포크로 찌르기 위해 누르면 접시가 기울어져 최악의 경우는 엎어질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이런 부분은 아주 조금만 생각을 한다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굳이 한가지 더 지적한다면, 삼겹살의 조리가 완벽해 부드러웠지만 서양 요리의 짜임새를 생각한다면 바닥에 주 jus 처럼 묽은 소스를 살짝 깔아주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실 ‘폴렌타-주 또는 팬소스-삼겹살-마이크로 그린 샐러드 등 한 두 종류의 곁들이 채소’ 정도의 구성이면 훨씬 더 좋았을지도?!).
한편 디저트의 경우도, 겨우 6천원에 플레이팅까지 한 걸 먹는 상황은 충분히 감사할만하지만 슈와 에클레어만으로도 완성도는 충분하기 때문에 굳이 냉동고에서 바로 꺼낸 듯한 얼린 과일을 곁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주 잘 어울리는지 모르겠지만 베리의 맛을 꼭 곁들이고 싶다면 같은 냉동 과일로 콤포트나 소스를 만들어 한숟갈만 곁들이면 충분할 것이다. 미리 크림을 짜넣었을 경우 슈가 수분을 흡수해 질겨지는 걸 막기 위해서인지 차갑게 보관했던데, 그 자체로 괜찮았지만 차라리 플레이팅을 하겠다는 욕심을 버리면 주문을 받아 크림을 짜넣어서 내보낼 수도 있을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늘어놓기는 했지만 사실 음식만 놓고 본다면 이건 ‘의견’이지 ‘불만’은 아니다. 하지만 나머지 부분은 그 음식의 완성도를 감안할때 심히 불만스럽다. 특히 메뉴는 정말 최악인데, 일단 폰트가 ‘사이버 비스트로’ 같은 걸 표방한다면 모를까 명함(이것의 디자인도 정말 한심스럽다)에서 스스로를 ‘Neoclassique Bistro’라 표방하는 레스토랑의 디자인으로서는 어울리지도 않으며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단촐한 음식에 비한다면 와인은 지역별로 이것저것 갖춰놓으려는 노력의 일환인지 꽤 많다는 생각인데, 역시 눈에 잘 안들어오는 것은 물론 주문받는 사람도 공부를 덜 했는지 관심가는 몇 가지에 대해 물어보자 대답을 잘 하지 못했다. 맨 끝에 ‘와인디시’라는 항목을 따로 설정해 파테 등 와인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요리를 따로 뽑아 놓았던데 그런 의도라면 와인 리스트와는 별도로 가짓수가 많지 않은 각 요리(아니면 “와인디시”만이라도)에 싸고 비싼 것 각각 한두 종류씩 추천 와인을 써 놓는 편이 차라리 손님에게도 선택이 쉬운 것은 물론, 와인 주문을 북돋울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거지같은 음식에 인테리어 등 분위기만 앞세워 삽질하는 레스토랑/카페가 갈수록 늘어나는 이 현실이 정말 싫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분위기라는 걸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 게다가 음식을 포함한 문화생활에 지갑을 더 적극적으로 여는 2, 30대 여성 층을 주 고객으로 삼으려 한다면 어느 정도 그러한 부분도 신경을 써야 한다. 크게 거슬리기 때문에 다음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은 없었지만, 간판이며 인테리어 등등이 최대한 주변에서 자급자족하려는 분위기를 너무나도 진하게 풍겼으니 음식이 마음에 드는데 인테리어 등 나머지가 별로인 경험은 나도 처음이라 정말 어리둥절하다.
기록이 남아 있겠지만 저에게 말을 거시기 이전에 가기로 결정을 했던터라 사실은 가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닐까 고민했습니다. 무엇보다 제 돈내고 음식 먹으러 가서 원하지 않게 말을 섞는 상황이 벌어질까봐 우려가 되더군요. 저에게는 즐기기 위한 주말 저녁 자리였으니까요. 그래서 혹시 물어보시더라도 아닌척 하기로 마음먹고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물어보시더군요. 제가 진짜 본인이든 아니든, 말씀마따나 “일”하시는 상황이라면 손님에게 그런 건 묻지 않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물어본 사람이 본인이 아니라면 험담을 하는 상황이니 그것도 문제고, 진짜 본인이라면 그 말에 ‘그게 사실 난데 지금 뭐라고 얘기하는 거요?’라는 반응이라도 보여야 하겠습니까? 블로그를 보니 제가 하는 작업과 상당히 흡사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던데, 그걸 보고 제가 님에게 맛집을 “씹으세요?” 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 by bluexmas | 2012/11/13 10:18 | Taste | 트랙백 | 덧글(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