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수의 월요병
뭔가 좀 직장인처럼 부지런하게 일해보고 싶어서 매주 줘야만 하는 일의 마감을 월요일로 정했더니, 일은 열심히 하지 않는 대신 월요일 오후부터 찾아오는 강력한 월요병을 얻었다. 뭐 나라는 인간이 하는 일이 예외없이 그렇지만…
아침에는 역시나 쓸데없는 부지런을 떨어 007 스카이폴을 보러 갔다. 사실 영화 무식쟁이인 나는 다니엘 크레이그 형님이 나오시는 것들만 보았다. 무식하다보니 007이 느끼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게 보았는데 트위터에서 스포일러를 아무런 대비없이 보고 간터라 좀 열받은 상태였다. 그것도 영양가 없는 철학을 늘어놓는데 동원된 상황이라 더더욱 심기가 불편했다. 영화는 재미있었으나 어째 마지막은 좀 용두사미 같은 느낌이 너무 강했다. 50년인가 되었다던데 한 시대를 청산하고 또 다음 세대로 가려는 계획인가? 무식한 내가 뭐 알겠느냐만… 굉장히 아름다운 처자가 등장하시는데 맥켈란 빈티지를 머리에 놓고 너무도 빨리 영화 속 삶을 마감하셔서 좀 애처로웠다. 아름다우셨는데.
이후 집에 돌아와서 뒹굴다가 저녁 나절 또 외출했다. 새 운동복을 좀 사고 싶었다. 운동복을 주는 헬스클럽에 다니면서 운동복을 또 사려고 애쓰는 건 좀 사치같지만 더 웃기는 건 사려고 애써도 별 게 없다는 현실이… 운동하면서도 까맣거나 하얀 옷은 입고 싶지 않은데 정말 그것 밖에 없었다. 백화점 매장만 뒤져서 그 정도라 혹 명동에 가면 좀 나을까 생각도 했지만 뭐 굳이 일요일 저녁에 명동지옥에 스스로 몸을 던지고 싶지는 않아서 일단 퇴각했다. 평소 잘 걷지 않던 로댕갤러리(요즘 이름이 바뀌었나?) 쪽으로 걸어서 지하철을 타고 합정에서 내렸는데 홈플러스 입점을 반대하신다는 분들의 천막에서 응원가가 우렁차게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정작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귀담아 듣지 않았는데 그 와중에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를 들었다. 나는 직장인의 기분을 느껴보고자 억지로 월요병의 구실을 만들어 일하는 반백수인데 경제민주화가 뭘 뜻하는 것인지는 정말 알 길이 없더라. 나이 헛먹은거지. 요즘 너무 습하고 더워 짜증이 넘쳐나고 있었는데 좀 바람이 차가와진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참, 올 초에 열심히 시장에 다니다가 결국 그만뒀는데 그때 얻은 결론은 그거다. 시장은 마트의 대체품이 절대 아니라는 것. 전자는 그냥 물건만 사는 곳이고 후자는 딱히 긍정적이지는 않아도 일종의 문화공간이 되었다. 절대 먹고 싶지 않은 수준이지만 푸드코트에서 짬짜면 돈까스 나눠먹고 나같은 사람들 아킬레스건 겨냥하며 카트 질질 끌고 다니며 먹으나 마나한 탄산음료나 소주 등등 쑤셔 넣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일종의 여가활동으로 자리잡았다는 거다. 그걸 일요일에 문 닫으면 정말 사람들이 대신 시장에 가서 그런 활동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골목 상권도 재미있는게, 집 바로 앞에 있는 정말 목 좋은 수퍼마켓은 주인 내외도 친절하고 좁지만 물건도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그래서 뭔가 사러가도 마음이 하나도 안 불편하다. 하지만 좀 돌아다니다 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위치에 있는 곳에서는 33~62세 사이의 여성이 담요를 무릎에 얹어놓고 반쯤 눕다시피 앉아서는 뭔지도 모를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며 손님이 오는지 마는지 신경도 안 쓴다. 찾는 물건이 없어 물어봐도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한테 돈쓰고 싶지 않다.
# by bluexmas | 2012/10/29 01:41 | Life | 트랙백 | 덧글(10)
여튼 농산물 직거래(산지직배송)도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고, 말씀하신대로 시장 앞 큰 슈퍼마켓들도 있고-카드되고 배달되고…재래식 시장은 수산시장이나 도매시장처럼 뭔가 특화 되지 않는 이상 도태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거 같은데…..뭔가 해보겠다고 노력하는 건 좋지만 좀 효율적으로 할 수 없나 싶습니다. 하긴 효율적으로 재래시장 개선해보려면 돈 깨지겠져.-_-;
홈플과 재래시장의 연합! 같은경우라면 좋겠지만 5만년 후엔 가능할일 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