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으로 장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옆 벽 알림판의 구 문화강좌 안내문에 시선이 미쳤다. 무슨 교수의 강의라는데 제목이 ‘운명을 바꾸는 #가지 거시기’ 란다. 끝없는 격무에 반 졸고 있다가 잠에서 화들짝 깨어났다. 운명이라니! 운명을 바꾸는 거시기라니! 신도 아닌데 어떻게 운명을 바꾸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또 그걸 사람들이 정말 진지하게 듣는단 말인가?! ‘파스타 한 그릇이라도 좀 제대로 먹을 수 없을까요 뿌잉뿌잉’해도 나는 아직도 정체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무슨 게시판에서 ‘내면이 비뚤어진 인간’이라느니 ‘다른 사람 다 좋다는데 저 사람만 맛없다고 말한다 이상하다’라고 비난받을만큼 냉혹한 현실인데 운명을, 그것도 바꾸는 법에 대해 말하는데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니 그것 참 놀랄 노자였다.
아니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운명보다 파스타를 사람들이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반증일지도 모르니 나 또한 저런 비난을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일지도… 조금 더 생각해보면 진짜 아이러니한 사실은 따로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진짜 운명을 바꾸는 사람은 남의 운명 바꾸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 장본인 아니냐는 것. 강의료 이런 게 제법 짭짤하니까… 말장난을 좀 했는데 어쨌든 운명 운운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 by bluexmas | 2012/06/19 23:43 | Life | 트랙백 | 덧글(4)
요새 운명을 바꾸는 ~~~라는게 책이나 강좌로 자주 보이는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뭔가 변화를 원하지만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 감도 못 잡고 있는걸 노리고 애매모호하지만 그럴싸한 운명이란 단어로 포장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떡밥으로는 참 그럴싸한 떡밥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