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이 펜은 좀 이상하다. 분명 우리나라에서 만드는데 찾을 수는 없다. 처음 돌아왔을때 큰 문구점 등등을 돌아다니며 수소문하고 인터넷도 뒤져보았지만 비슷한 것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쓰던 걸 아껴가며 3년 동안 대체품을 찾았는데 실패했고, 결국 최근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한 다스를 들였다. 행복했다. 진작 이렇게 할 걸 싶었다. 처음 회사에 문구 창고에서 이 펜을 찾았을때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었다. 회사에서는 까만색과 빨간색만 쓰기에 파란색은 따로 사서 쓰기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이 펜은 내 손글씨를 책임져왔다. 종종 회사에 로비를 해서 파란색 또한 들여놓으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뭐 손에 넣고자 하면 어떻게든 가능했을텐데 어느 정도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은 건, 그런 자질구레한 것들까지 아쉬워해봐야 여기에서의 삶이 더 피곤해질 뿐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떤 기억은 그냥 그 존재 자체를 애써 무시한채 산다. 고통도 마찬가지다. 물론 애써 무시 또는 외면하는데는 더 많은 노력이 든다. 어떤 상황에는 덮어놓고 그냥 손해가 최선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머리를 묶고 일을 시작해야 되는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냥 멍하니 앉아만 있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실패 또는 그에 바탕한 어떤 종류의 악감정과도 싸우고 싶지 않아, 조금이라도 원인제공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에게는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는 요즘이다. 원망만큼 소모적인 감정도 없지만, 어떤 경우에는 정말 원망 말고는 답이 없다. 그럴 때는 일단 뚜껑을 닫아야 아무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는다.
# by bluexmas | 2012/06/05 02:49 | Life | 트랙백 | 덧글(14)
bluexmas님은 글씨가 너무 이쁘셔서 악필인 저는 부러울 따름입니다……
항상 만년필이라고 생각해왔었는데…
디자인이 확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