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아 구웠닭

우연히 손에 넣은 치즈 한 덩어리을 잘 먹어보고 싶어 빵을 굽고, 같이 먹을 와인을 한 병 사고 나니 그것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아 고민 끝에 닭도 한 마리 굽게 되었다.

닭으로는 정말 오랜만에 음식을 만들어본다. 닭요리 잘 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 위축이 되어 손을 댈 수가 있어야지… 사실 내가 닭을 진짜 좋아하는지 그걸 모르겠다. 특히 우리나라의 다 크지 않은 닭. 닭냄새는 나지만 닭맛은 없다. 먹다 보면 이게 뭔가 싶다. 어쨌든, 처음으로 염지(brining)를 시도해보았다. 물 2리터에 굵은 소금 1컵, 설탕 1/4컵으로 염지액을 만들어 플라스틱 통에 넣고 닭을 한 시간 담근다. 어디에선가 시험을 했는데 소금과 설탕 이외의 향신료 등은 사실 맛에 영향을 못 미친단다.

원래 시도해보려는 레시피는 Modernist Cuisine의 것이었다. 콤비 오븐을 이용해서 아주 낮은 온도에서 구운 뒤, 마지막에 온도를 아주 높이 올려 껍질을 바삭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저 온도는 62, 최고 온도는 280도. 내 오븐으로는 60도는 가능하지만 최고 온도는 260도 까지 밖에 안 올라간다. 이 레시피는 사실 아주 복잡하다. 염지액을 만들어 담그는 것은 물론 닭가슴살에 따로 주사한 뒤, 냉장고에 걸어 이틀을 말린다. 그래야 마지막에 온도를 높이 올렸을때 껍질이 바삭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럴 시간도 없고 의지도 없으므로 약 한 시간 정도 베란다 빨랫대에 걸어 닭을 말렸다. 닭과 한강. 그림이 좋다. 원래 고리가 따로 있는데 찾을 수 없어 옷걸이로 응급조치.

닭이 작아서 다행스럽게도 오븐에 거의 딱 들어 맞는다. 가슴이 바닥에 닿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날개를 접어줘야 되는데 깜빡했다. 가슴살에 탐침을 꽂아 닭을 62도에서 굽는다. 목표 온도는 140도. 원래 레시피의 닭은 2kg대이므로 네 시간이 걸리지만, 내 닭은 그 반 밖에 무게가 나가지 않으므로 두 시간이 걸릴 거라 예상했다. 정말 딱 두 시간이 걸렸다. 마지막에 온도를 올렸는데 역시 수분 때문인지 생각만큼 바삭해지지는 않았다. 원래는 7분이라는데 약 12분 정도 태웠지만 별 효과가 없어 그 시점에서 멈췄다. 로즈마리를 튀긴 기름을 30분마다 한 번씩 발라주었다. 15분 쯤 식혔다가 토막냈다. 비디오를 찍었으나 올릴까 말까 고민중이다.


그래서 저녁을 차렸다. 닭에 콜라비 샐러드, 로즈마리-감자-양파-콜라비 구이 등. 간이 좀 강한 느낌이 들었지만 염지를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봐야 그 닭이 그 닭이므로 언제 또 만들어 먹을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간만에 이것저것 만들어 먹었다. 역시 만들어야 즐겁다.

 by bluexmas | 2012/02/09 15:16 | Taste | 트랙백 | 덧글(31)

 Commented by 애쉬 at 2012/02/09 15:24 

정성들여 조리하신 닭…죽어서도 행복했겠어요 (퍽)

북경오리를 현대화 시킨 방법 비슷하네요

잘 말려줬으면 생각하신 만큼 바삭한 껍질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네요^^

이 조리법 설명을 들어보니

끊임없이 뜨거운 기름을 퍼부으며 굽는 방법도 나름 의미가 있어보입니다.

겉에는 고열 속으로는 잔열만 전달되어 저온으로 굽히는 방법일 수 있겠네요

끼얹는 기름의 온도와 양을 조절하면 될 수있겠다 싶네요(물론 고난도 요리입니다…팔도 아플테고^^)

큐어링 할 때 향신료가 최종 품질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니… 의외네요

역시 실험이 중요하군요^^

 Commented by 애쉬 at 2012/02/09 15:25

아…그리고 ‘매달아 구웠닭’

어디 길 지나가다 간판에서 볼까 겁나네요 ㅎㅎㅎ

동네 닭집으로는 작명 센스 쵝오 ㅋ

제가 트럭에 닭 굽고 다니면 당장 저작권료 지불(?)하고 간판으로 달고 다니겠습니다 ㅎ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2/14 21:34

아마 이 레시피가 북경오리를 바탕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뜨거운 기름도 같은 역할을 하겠죠. 우리나라에 제대로 하는 북경오리집이 있던가요?

 Commented by 애쉬 at 2012/02/14 22:21

애쉬도 알고싶습니다아 ^0^

 Commented by 대건 at 2012/02/09 15:24 

저는 닭고기는 어떻게 요리해도 잘 먹는 편이긴 하지만,

이렇게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닭고기라면 더 맛있을것 같네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2/14 21:34

근데 좀 귀찮습니다^^;;

 Commented by 당고 at 2012/02/09 16:20 

악- 빵 터졌어요-

역시 센스 만점ㅎㅎㅎㅎㅎㅎㅎ 매달라 구웠닭 ㅎㅎㅎㅎㅎ 상표등록 해두셔야 하는 거 아닌지;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2/14 21:35

귀찮습니다 크크 제가 뭐 닭집 낼 건 아니니까요;;;

 Commented by 나는고양이 at 2012/02/09 16:31 

한강과 매달아구웠닭! 즐겁습니다. ㅎㅎ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2/14 21:35

닭이 강을 굽어봅니다…

 Commented by 또록디 at 2012/02/09 16:57 

우와…정말 맛있겠네요 ^^

먹고시퍼라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2/14 21:35

그냥 연습삼아 만들어 보았습니다^^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12/02/09 18:13 

제가 아는 그 염지 닭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매우 맛있어보입니다. ‘루웨이'(滷味)라는 방식과 비슷해 보여요. 저런 닭은 보통 여기서는 여기에 마늘 등 동양식 양념을 곁들이더군요. 비슷하게 오리도 굽는데, 그건 생 마늘줄기와 신맛나는 소스를 함께 먹더군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2/14 21:35

대만에는 대만 오리인가요?;;; 밀전병과 해선장, 파나 마늘대를 싸서 먹지요. 먹고 싶습니다.

 Commented by DLIVE at 2012/02/09 21:33 

으아..뭐하시는 분인지..

쵝오네요^^ 저도 음식관련 영화/만화/소설 다 좋아라해서

만들어 보고 프긴한데..막상 해보면..현실은 시궁창 ㅜㅜ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2/14 21:36

저는 뭐 그냥 밥 해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만들면 실망스런 경우가 참 많죠 ㅠㅠ

 Commented by 사바욘의_단_울휀스 at 2012/02/09 22:53 

중국인들이 오리 굽는 방식 비슷하군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2/14 21:36

네 그런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tertius at 2012/02/10 00:12 

덧글을 보니 북경 오리 떠올리신 분들이 많네요. 실은 저도 두 번째 사진에서 딱 “북경 오리 다루는 식으로 하신 건가?”하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껍질을 바삭하게 하려면 껍질이랑 살 부분을 어떤 방법으로든 분리해줘야 하는 것 같아요. 닭을 이틀이나 매달아 말리면 살에서도 어느 정도 수분이 빠지면서 껍질이랑 살이 분리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예 껍질과 살 사이에 손가락을 밀어 넣어 분리해라, 하는 요리법도 있던데 그건 크기도 작고 껍질도 얇은 우리나라 ‘영계’에 적용하기는 좀 무리한 방법인 듯하고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2/14 21:36

네 이 레시피도 그렇게 말하던데 귀찮아서 껍질과 분리는 안 했습니다. 밍차이가 북경오리를 할때 콤프레셔로 부풀리는 장면이 나오죠.

 Commented by delicat at 2012/02/10 01:35 

매달려 있는 닭의 그림자.. 숙연하면서도 왠지 웃겨서 혼자 밤에 빵터졌네요. 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2/14 21:37

네 닭이 강을 굽어보니 숙연하지요…;;;

 Commented by settler at 2012/02/10 08:13 

늘 생각하는 거지만 사진들 너무너무 좋아요. 한강을 내려다보는 닭그림자.

이런 거 미장센이라고 부르는 그런 거 아닌가용 -ㅁ- 최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2/14 21:37

히히 일종의 농담이죠;;; 달그림자(X), 닭그림자(O).

 Commented by 조나쓰 at 2012/02/10 10:24 

요리도 탐나고 상호도 욕심이 나는데요 ㅎㅎㅎ

정말 누군가가 상표 등록 나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2/14 21:37

천장에 열심히 매달아 구워줬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ed by hen at 2012/02/11 10:30 

도전해보고 싶네요. 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2/14 21:38

네 오븐이 있으면 가능합니다^^

 Commented by joowon at 2012/02/12 11:56 

저의 페이보릿 사진은 매달린 닭과 한강풍경이군요 ㅎㅎㅎ 저도 개인적으로 제일 감흥없는 고기는 닭. 특히 breast는 전혀.. 그렇지만 buttermilk류 사용해서 roast하거나 부들부들하게 튀긴 닭다리는 정말 맛있게 먹은 경험이 있습니다.

저번에 iron chef를 보는데 Ming Tsai과 Flay대결이었나…주재료가 오리였는데 Ming쪽에서 펌프를 사용해 껍질과 살 사이로 공기를 주입해서 분리 및 빵빵하게 부풀리더군요 -_-;

 Commented by bluexmas at 2012/02/14 21:38

네 그 대결 저도 기억하죠. 밍차이의 퓨전은 썩 좋아하지 않지만… 정말 오리를 빵빵하게 부풀리죠;;;

 Commented by jamie at 2012/04/04 22:04 

잘 읽고 갑니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