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에드워드 권, 프렌치 테크닉, 와플개그
1. 거 참 새해를 활기차게 여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셧다운 모드에 빠져 이틀을 쉬어야만 했다. 여행도 잘 갔다오고 그 뒤 일주일 동안 부지런 떨면서 잘 살았는데 그 뒤에 갑자기 잔고장이 나서 어쩔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너무 의욕이 앞서 운동이고 뭐고 너무 무리해서 한 것 때문은 아닌가 싶은데… 이제는 크든작든 마감을 하면 하루 이틀은 강제로라도 셧다운을 시켜서 좀 쉬어야 되는 건가 싶다. 내장과 근육이 동시에 잔고장을 일으키니 먹는 것은 물론 슬슬 재미를 붙이고 있던 운동도 못하게 되어 ‘셋백’의 여파가 좀 크다.
2. 동네 정형외과에서 간단한 물리치료를 받는데 카운터의 여직원이 ‘카톡’하느라 바빠서 카드 영수증을 거의 내던지더라. 화가 난다기 보다 그냥 귀여워서 웃었다;;; 사실 나는 카카오톡 깔지도 않았고 별 필요도 없는터라… 그 병원은 손님이 많이 와서 그런지 별로 친절하지 않다. 물리치료사들도 딱히 즐겁지 않게 오는 손님 따박따박 처리해서 내보낸다는 느낌을 온몸으로 풍겨준다. 원장이라는 의사선생은 친절한 편인데 웬만하면 가운을 좀 입으셨으면 좋겠다. 나는 제복을 입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제복을 입는 직업이며 그 제복 자체의 권위를 인정하고 싶은 사람이다.
3. 하루에 두 시간씩 쪼개서 멍청한 짓거리를 하는데 그걸 하고 나면 몸이 지키거나 정신이 너무 없어져서 한참 헤맨다. 오늘은 아주 늦게 그 일을 간신히 하고 집에 돌아가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지갑을 못찾아 잠시 패닉 모드에 빠졌다. 알고 보니 차값 계산하고 아무 생각없이 뒷주머니에 넣고는 못 찾고 있었다.
4. 어디나 닥쳐야 할 사람은 주절거리고 말해도 될만큼 아는 사람은 입을 다물고 있는 것 같다. 무지만큼 옥탄가 높은 연료가 없는 건가.
5. 나는 에드워드 권이라는 셰프에게 딱히 큰 믿음은 없는데, 그 존재 자체가 완전히 가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학력에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음식이 완전히 가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그건 음식을 먹어보면 안다. <트루맛쇼>의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서 비웃은 ‘캐비어 삼겹살’에 에드워드 권을 빗댔는데 그거야 말로 엉터리 논리이고 이미 한철 지난 자신의 영화를 더 부각시키기 위한 꼼수처럼 보일 뿐이다. 캐비아 삼겹살은 완전히 가짜지만 에드워드 권의 경우는 문제가 되는 학력을 완전히 들어낸다고 해도 그 밑천이 완전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음식에 그게 나타난다. 하긴 조리학교 출신이든 아니든 그 정도 한 직업을 가졌다면 그만큼은 해야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가 에스코피에나 앙또넹 카렘, 뭐 거기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다니엘 불뤼나 조엘 로뷰숑, 뭐 그것도 아니라면 고든 램지와 같은 존재처럼 인식되는 현실은 분명히 개그다. 그의 장점은 외국의 유행을 세련되게 재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거 자체만으로도 이 나라에서 먹히는 이유는 한다고 하지만 그것조차도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늘 똑같은 얘기다. 음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가 과대포장되었다는 사실 자체에는 나도 동의하지만 막말로 삼겹살 캐비아 수준의 가짜는 아니다.
6. 이렇게 쓰고 나니 1990년대 초반에 많은 사람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댄스 듀오 ‘밀리 바닐리’의 립싱크 사건이 떠오른다. 왜 그럴까?
7. 어디에선가 ‘프렌치의 테크닉이 떨어진다’ 운운하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그건 에드워드 권을 캐비아 삼겹살에 비하는 것보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논리, 아니 그건 정말 논리도 아니다. 나도 프렌치 퀴진에 대한 이해가 얕고 본토에서 뭐 제대로 먹어본 사람도 아닌데, 한마디로 말해서 재료의 손질이라는 건 그 재료를 해부학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동물로 따지면 고기는 결국 근육이고, 그 근육이며 뼈의 전체적인 관계를 이해해서 같은 재료라도 조리방법에 따라 다르게 손질하는 것이 가능해야만 한다. 그런 기본적인 이해가 프렌치 테크닉 안에 들어 있다. 아주 유명한 프렌치 셰프들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미국에서 미국놈들끼리 경쟁하는 <탑 셰프>에 종종 나오는 ‘나이프 스킬’ 챌린지를 보면 대강 감이 잡힌다. 아니면 프랑스 사람인 자크 페펭의 책 <La Technique>의 목차만 봐도 된다. 뭐 일본이 더 강하네마네 누군가 얘기하겠지만, 그건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각국의 음식 문화에 맞에 재료를 손질하는 방법으로 테크닉이 발달 또는 진화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8. 아, 그보다 훨씬 전에 보았던 ‘와플개그’도 생각난 김에 얘기해보자. 영향력 있는 어떤 분이 리에쥬식 와플을 이야기하면서 ‘반죽이 되서 포만감이 느껴진다’라는 이야기를 했던데, 만약 그게 정말 리에쥬식, 즉 이스트를 써서 발효한 반죽을 구운 와플이라면 그 반대일 확률이 높다. 뭐 그게 브뤼셀식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벨기에 와플은 베이킹 소다/파우더를 써서 부풀리므로 일종의 ‘퀵브레드’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퀵브레드의 반죽은 발효반죽보다 묽다. 공기방울의 기본 구조가 열이나 산을 만날 때까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발효 반죽은 이스트의 활동으로 인해 그 형태가 잡혀 있으므로 반죽이 막말로 되지만 같은 면적이라면 퀵브레드 반죽 와플보다 가벼워야만 하고, 또 그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 발효반죽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에 발효 풍미는 아예 고려하지도 않았다. 간단히 말하자면 같은 크기의 와플일 경우 발효반죽이 적은 중량을 먹는 셈이다. 케이크 도너츠와 이스트 도너츠의 차이도 똑같다. 이스트를 쓴 쪽이 훨씬 가벼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모르면 아무 말도 안 하거나 아는 만큼만 말하거나, 아니면 생각하고 찾아서 확인해보면 되는데 안 그러고도 권위를 얻는 게 참 신기할 따름.
# by bluexmas | 2012/01/20 02:08 | Life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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