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식 쿠키와 음식 꼰대
강남역 근방에서 새로 문을 열었다는 쿠키집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먹으면 마늘향을 고지라처럼 뿜어대는 강남교자가 점심이었던지라 디저트를 찾고 있는 와중이었다. 시식을 한다기에 일단 줄을 서보았다. ‘영국 어딘가에서 재료를 그대로 수입해 들여와서 무게를 달아 판다’고 했다. 단위 무게당 가격 이런 건 자세히 쓰기 싫은데, 하여간 큰 쿠키 한 개에 대략 3~4천원대였다. 시식을 하기 위해 기다리면서 진열장을 들여다보았다. 열가지가 될까말까한 쿠키가 있었는데, 모두 퍼지다가 만 느낌이었다. 이런 종류의 쿠키도 레시피상으로는 사실 간단한 편인데, 구워보면 예상보다도 굉장히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된다. 적당히 퍼지면서 표면이 갈라지고, 또한 형태가 잡혀야 하는데 어떤 경우-특히 쇼트닝-에는 너무 퍼져버리고, 또 많은 경우 이상적인 경우보다 덜 퍼지면서 반죽의 수분이 너무 많이 남는다. 같은 양의 버터를 쓰더라도 상온에 두었다가 크림화하는 것과, 완전히 녹여 액체를 만들어 더하는 경우의 결과가 꽤 다르다. 반죽에 들어가는 공기의 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집에서 쓰는, 온도가 균일하게 유지 안 되는 가스 오븐의 경우라면 반죽을 냉동했는지, 아니면 냉장고에 잠시 식혔는지 만들자마자 구웠는지에 따라 또 달라진다. 나는 철저한 아마추어 베이커지만, 이 정도는 알만큼 같은 쿠키를 구워보았다.
쿠키 한 입을 시식하기 위해서 기다릴 시간보다 살짝 더 오래 기다려 사진의 쿠키 1/10쪽을 받았는데, 이 정도라면 내부는 덜 익은 것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였다. 먹어보아도 역시 마찬가지. 쿠키를 나눠주는 직원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상태’를 추구한다고 말했는데 이건 그냥 속이 눅눅한 정도였다. 게다가 높이와 지름을 생각한다면 이 쿠키는 분명히 덜 구워진 것이라고 하는게 맞는 상황이었다.
사실 단순한 문제도 아니지만, 쿠키가 퍼지고 말고의 상황 말고도 따져야 할 요소는 얼마든지 많다. 이를테면 초콜릿칩 같은 부재료를 넣을 경우, 그 부재료가 등분하는 각각의 반죽에도 등분되어야 하며, 또한 쿠키 표면으로 드러나야만 한다.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더 먹음직스러워보이기 때문이다. 설사 등분이 되었다고 해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쿠키는 팔리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쿠키를 굽다보면 반드시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단계에도 이른다.
예를 들어 이 쿠키가 그냥 적당하거나 아니면 아예 질이 낮은 재료를 써서 천원에 판다거나 하는 종류였다면 시식이든 뭐든 이런 걸 따질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시위하듯 무게로 달아 개당 3~4,000원에 팔아야 하는 것이라면 내가 겪은 것보다는 나은 상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황이 이쯤 되면 비판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조차 무의미해지고, 나는 지금 비판을 목표로 하고 있지도 않다. 한 조각 시식하고 그야말로 뭐 남는다고, 아니면 남의 장사에 뭐 찬물을 끼얹겠다고 한 시간씩 걸려 글을 쓰겠나? 그러나 이러한 경향이 문제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가장 손쉽게 택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재료의 업그레이드다. ‘유기농’과 같이 반 검증된(혹은 아닌데도 그렇다고 믿는) 형용사를 붙이면 먹히기도 잘 먹힌다. 그러나 재료의 업그레이드 자체가 모든 음식 분야에서 품질을 자동 보장해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예를 들어 카르파치오라면 그냥 좋은 생선, 좋은 올리브기름을 얻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재료의 물성이 반드시 변화하는 베이킹의 경우는 성공까지 채 절반도 이르지 못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후의 과정이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기농 밀가루를 써서 빵을 굽는다고 해도 발효를 못하면 맛이 없고, 위의 쿠키도 마찬가지다. 반복을 통한 시행착오로 얻는 노하우가 없이 재료만으로는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그 노하우는 심지어 누가 전수해준다고 해도 그대로 흡수가 안되고, 반드시 자신만의 시간을 들여 체득해야만 하는 것이다.
진짜 재수없게 말하자면, 나는 그냥 안 먹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음식의 가격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재료가 고급이기 때문에 그저 고급이라고 믿고 소비하는 사람도 계속해서 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향평준화 뿐이다. 아니, 이 상황은 하향평준화보다 더 지독할 것이다. 돈을 내면 적어도 낸 만큼의 가치는 얻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사는 건 음식 재료를 수단으로 삼은 고급 기술의 산물이지, 고급 재료 그 자체가 절대 아니다. 내가 지금 지나치게 걱정하고 사는 건가, 아니면 우리는 정말 심각한 상황에 놓인 건가? 이제는 그것마저 헛갈린다. 정말 그냥 전자였으면 좋겠다. 내가 그냥 기우에 젖은 ‘음식 꼰대’였으면 좋겠다.
# by bluexmas | 2011/12/06 23:32 | Taste | 트랙백 | 핑백(1) | 덧글(13)
Linked at 시식 쿠키와 음식 꼰대 | A.. at 2011/12/07 05:01
… 갈린다. 정말 그냥 전자였으면 좋겠다. 내가 그냥 기우에 젖은 ‘음식 꼰대’였으면 좋겠다. tag : 쿠키, 꼰대 The Note of Thirty Something Posted on December 6, 2011 by acousticlife. This entry was posted in Rssx01 … more
사실 일부 고급스러워 보이는 프랜차이즈점에서는, 브랜드 이름을 믿고 좀 생각없이 장사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일부… 옷이라던지 등에서 가격에 붙는 ‘브랜드 값’이 음식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고요.
그 브랜드 명성에 걸맞는 맛을 좀 찾아줬으면 좋겠습니다.
…본문이랑 상관없지만 어쩐지 시식글을 보니 생각이ㅠㅠ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