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불을 앞둔 중년 두꺼비
전자시대에 전자여권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만 할 것 같아 며칠 전 새로 만들었다. 사실은 작년부터 기획했던 일인데 인지대 55,000원을 여분으로 마련하기가 너무 어려워 지금까지 미룬 것이다. 생각 끝에 인지대용 적금 통장을 만들어 한 달에 3,000원씩 18개월을 붓고 나머지는 헌혈을 한 뒤 받은 영화표를 극장 앞에서 어린 대학생 커플에게 반값에 팔아서 충당했다(“삼촌이 요즘 좀 어려운데 도움…”). 그리고 나서야 여권 사진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나름 단골이라고 할 수 있는 단성사 뒷쪽의 사진관 건물 1층 김밥집에서 세 시간 동안 설거지를 해서 만원을 더 벌었다. 주인 아주머니가 김밥을 쌀 줄 알면 두 시간에 만원 준다고 했는데 내 손으로 싸 본적은 없고 해서 그냥 설거지로 갈음했다. 그렇게 해서 찍은 사진을 보니 곧 성불을 앞둔 중년 두꺼비 같이 볼은 터질 것 같은데 귀 뒤로 넘긴 머리는 내일 모레 시집가는 second tier 건설회사 상무님 비서처럼 참해서 얼굴이 화끈 달아 올랐다. 문제는 이 사진을 10년 동안 달고 해외 여행을 다녀야 한다는 건데…
거리로 따지면 강서구청이 훨씬 더 가깝지만 늘 다니는 동네라 성불을 앞둔 중년 두꺼비 같은 여권 사진을 소중히 품고 종로구청으로 향했다. 신청서까지 다 썼는데 공익으로 보이는 남자 직원이 너무나도 단호하게 쓰던 여권이 없이는 신청을 받을 수 없다고 해서(“외교 통상부 홈피에도 나와 있습니다!”) 좌절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챙긴 뒤 결국 강서구청으로 가서 신청을 마쳤다. 여권을 만드는데 사진은 고장 한 장 들어가니 다섯 장의 두꺼비 사진이 더 남았는데, 너무 좌절스러워 아직도 꺼내보지 못하고 있다. 남은 사진은 어디에 써야 되나. 그냥 2,000원에 한 장만 뽑아달라고 하고 설거지 30분만 할 걸.
# by bluexmas | 2011/10/31 00:17 | Life | 트랙백 | 덧글(4)
그래서 그전 여권을 버리지 못하고 있죠… 그 여권은 그래도 사람이었는데..ㅠㅠ;;
성불을 앞둔 중년 두꺼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