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뜬금없는 시뮬라크르

왜 <북촌방향>이 보고 싶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우리 영화를 잘 못 본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자면 좀 기니까 일단 넘어가기로 하자. 그래도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은 보았다. 사촌누나와 함께 성당을 다녔다는 추상미의 “안에 싸지마 나 애 배기 싫어(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뭐 이런)”가 뜬금없게도 애절하게 기억에 남는, 뭐 그런 영화였다(이런 거 애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려나? 왜, 어떤 여자의 일생은 원하지 않은 임신에 의해 전혀 다른 길로 빠지기도 하고 뭐 그런…;;;).

요즘 사람들에게 잘 팔리는 “인문학” 또는 “철학(둘 다 큰 따옴표에 둘러 싼 이유는…)” 따위는 #도 모르는데, 이상하게도 이 영화를 보면서 ‘시뮬라크르’가 자꾸 떠올랐다. ‘시뮬라크르라는’ 뒤에 ‘단어’ 나 ‘개념’ 따위와 같이 정의 내리는 명칭을 붙이지 않은 건, 솔직히 시뮬라크르가 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어디에선가 주워들었지만 내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입에 담지 않는 그 무엇들 가운데 하나라는 의미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그거가 맞는지 보려고 위키피디아와 네이버를 좀 뒤져 읽어보았다. 모르면 배워야지, 영양가 없이 아는 척하지 말고.

일단 나는 제목에 붙은 그 ‘방향’이라는 꼬리표부터가 의심스러웠다. 왜 하필 ‘방향’일까? 인터넷을 뒤지면 혹시 감독이 이에 대해 뭐라고 언급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고 나는 그냥 혼자서 억측처럼 이 방향이라는 단어가 북촌이 아닌, 북촌에 무한수렴하도록 흡사하지만 북촌이 (의도적으로) 아닌 공간적 배경이라고 생각했다. 북촌에 너무나도 익숙한 사람이라면 언뜻언뜻 볼 수 있는 이미지의 조각들과 제목을 가지고도 영화가 북촌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별로 그럴 수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들을 너무 가깝게 비추기 때문이다. 몇몇 익숙한 골목과 간판들이 보이지만, 그 정도로 가까운 시선의 카메라로 볼 수 있는 북촌과 카메라를 어딘가 높은 곳에서 비춰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기와지붕들 한 눈에 보여주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나는 후자가 훨씬 더 북촌 같다고 생각하는데 감독은 일부러 그러한 장면 담기를 회피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모든 디테일을 자세히 기억할 수 없어, 어쩌면 이런 장면이 나왔는데 내가 못 짚은 것일 수도 있다…).

카메라는 공간적 배경 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가까이 비춘다. 물론 나는 카메라나 뭐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데, 사람을 비추는 카메라의 시점이나 화각 같은 것이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다고 느꼈다. 특히 그 술집에서 되풀이해 벌어지는 대화 장면에서 더 가까이 비추고자 할때, 카메라는 의도적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꿀럭, 하고 움직이는 척 움직인다. 카메라가 원래 역할을 담당하는 ‘beholder’의 시선이라면, 정말 그렇게 ‘꿀럭’하고 움직일까? 어째 나는 이 모든 것들이 전부 의도적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까이 비추는 것은 단지 카메라 뿐만이 아니다. 대화를 통해서 드러’내’는, 혹은 비추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사람들이 흔히 영화 속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서 보다 더 일상생활과 가까워보이고,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일상과 더 멀어보인다. 거기에 되풀이는 그러한 느낌을 더욱 강화시킨다. 막말로 질려서 똑바로 쳐다보기가 싫어지는데, 그쯤되면 (개인적으로는) 직시하기 싫다는 측면에서 영화 밖의 삶과 같다는 느낌이 들어버린다. 징글징글하다.

돈과 맞바꿀 수 있는 모든 것들에 있어 가장 극단적인 평가 준거는 ‘돈값은 하더냐?’가 될텐데, 그의 영화라고는 이제 딱 두 편 본 나에게 이 영화가 보여주는 장면들은 전부 ‘이게 정말 돈값은 하는 것일까?’라는 의심을 품게 만든다. 영화는 꼭 현실같지만, 무한수렴으로 현실같기만 할 뿐 현실은 될 수 없다. 그렇게 의도적으로 닮게만 하려는 시도 속에서 현실은 되려 낯설어지고, 궁극적으로는 영화가 된다. ‘이 영화가 돈값하는 경험일까?’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조차 계획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변에 앉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막 웃던데 그걸 알아서 웃었던 것일까? 나에게는 별로 웃기지 않던데;;

 by bluexmas | 2011/10/28 00:49 | Movie | 트랙백 | 핑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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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ed by gvw at 2011/10/28 01:11 

simulacra 라고 쓰고 국어로는 시뮬라크르라고 읽는 거였던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10/28 01:15

앗;;;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잘 모르는데 개쪽팔뻔 했네요;;; (이미 많이 팔았으려나 ㅠㅠ)

 Commented by sasac at 2011/10/28 09:53 

^^

그 ‘쪽’ 제가 다 샀습니다.

시뮬라르크”이렇게 쓰셨나요?..그렇담 저랑 비슷한 증상이네요. ‘크’를 뒤로 보내야 맘이 편해지는 병이 있달까요..반다이크, 라다크,,,,이렇게.

잘 지내시지요?(^^)

 Commented at 2011/10/2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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