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46-나이키 위런 서울 2011
기록으로 상 받을 실력은 없지만, 바보짓으로 1등을 뽑는다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그런 하루였다.
오늘 아침까지 거의 24시간을 내리 잤다. 점심까지는 깨어나서 뭔가를 주워 먹었지만, 저녁은 건너 뛴 채로 길고 긴 잠을 잤다. 육체적으로도 피곤하기는 했지만 거의 80%이상 정신적인 피곤함 때문이었다. 금요일은 여러모로 참 재수없는 날이었다.
정말 영영 잘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이 달리기도 그렇고, 집이 너무 개판인데 특히 개수대가 썩어가고 있어서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정신을 차려 설거지도 하고 빠워 런치도 만들어 먹고 짐을 꼼꼼하게 챙겨 느긋하게 광화문 광장으로 나갔더니… 짐 실은 트럭이 떠나고 있는 거다. 세 시까지 오라는 공지의 이유를 읽어보지 않은 채로 무시했는데 알고 보니 그때까지 와서 짐을 맡겨야만 한다는 것. 출발을 25분 정도 남겨놓고 10초간 고민하다가 롯데백화점으로 뛰었다. 한창 지하층이 공사중이라 간신히 찾아 짐을 맡기고 다시 또 출발지점까지 뛰어 오느라 정말 워밍업만은 평소보다 넉넉하게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달리기 후 골인지점인 여의도에서 약속이 있어 을지로로 돌아와 다시 짐을 찾고 또 여의도나 어딘가로 이동을 해야 한다는 점이… 진지하게 짐을 들고 뛸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럼 걸어서도 완주하기 힘들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2009년부터 3년 연속 이 행사에 참여하는데, 올해는 정말 안 뛰는 사람이 많더라. 작년에도 정말 채 1km도 못 가서 걷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좀 보았는데, 이번엔 아예 처음부터 걷기로 작정한 사람들도 많았다. 이런 달리기는 이제 꽤 해 본 터라 보통 2km정도까지 사람들을 피해 가면 나아지는데, 이번엔 4km까지도 상태가 전혀 나아지지 않아 체력소모가 심했다. 어떤 방식으로 즐기든 사실 나는 이래라저래라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그룹별로 나눠 놓기까지 한 상태에서 A그룹에 신청-설사 다른 그룹이 먼저 마감되어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해서 걸어주시면 정말 헤치고 뛰기가 너무 힘들다. 솔직히 2만원에 이런 티셔츠 주는 것만으로 만족이니 그냥 데이트나 하시던가. 무슨 손수건 같은 걸로 서로를 연결해놓고 끝까지 걷는 커플같은 님들은 대단히 미안한 얘기지만 민폐라는 딱지를 주저없이 붙여드릴 수 밖에 없다. 님들 태어나서 연애 처음 해보셨나연? 참 티내지 못해 안달이군염… 누군가는 좋은 옷이나 차 산 거 자랑하는 것처럼 애인 자랑하는 재미에 세상을 살기도 하겠지. 아니면 애인한테 좋은 옷 입혀놓고 차 태워서 자랑하던가…
그래서 달리기는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어차피 이건 나와의 싸움인데 방해꾼이 너무 많은 상황이랄까?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이 정도 코스를 만들어주는 것은 높이 사는데 사람이 끝까지도 너무 걸리적거려 달리기가 잘 안 됐으니까. 하긴, 그냥 티셔츠나 먹고 떨어지던가 여자 달고 와서 커플샷이나 찍으면서 놀면 되는데 거기에서 기록 정해놓고 거기에 맞추겠다고 안달하는 나 같은 인간이 오히려 불쌍한 것인지도? 어쨌든, 마지막에는 어떻게든 한 시간 안에 들어오려고 안간힘을 써서 간신히 맞추기는 했으나 신발은 가볍다는 측면에서는 도움이, 그렇기 때문에 지지가 약하다는 측면에서는 해가 된다는 걸 10km까지 뛰어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 by bluexmas | 2011/10/24 00:11 | Life | 트랙백 | 덧글(16)
악조건에서 고생하셨습니다^^
여기중 한명이신가요.ㅎ
고생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