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식사빵” 시식기

어제의 글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이번 달 엘라 서울에 <빵맛도 모르면서>라는 글을 실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봐야 되는데 게으름 때문에 못 그런 빵집 몇군데를 기사 핑게로 채찍질해서 들러보았다. 먹은 빵들에 빵집들에 대한 짤막한 인상….라고 해봐야 사실 얼마 되지는 않는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1. 레트로 오븐

벌써 몇 달 전에 누군가에게 명함을 받은 적이 있는데, 광수체를 보고 뜨악했다. 편견이라면 편견이겠지만, 나는 광수체를 쓰는 가게를 믿지 않는다. 어쨌든 이 기사 청탁을 받았을때 가봐야 될 집 1순위로 꼽았는데, 뭐랄까 강남의 폴앤 폴리나였다. 빵도 딱 그만큼 밖에 없는데, 스콘과 같은 것들이 없어서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다. 통밀식빵은 절반인가 그보다 적은 비율로 통밀을 섞은 것인데, 식빵치고 바삭한 크러스트가 충격으로 다가왔다. 속살 또한 통밀을 섞은 것치고 촉촉했다. 그 옆은 치아바타인데, 부드럽고 촉촉한 것이 내가 생각하는 치아바타는 아니지만 잡맛이 섞이지 않고 잘 된 발효의 풍미만 있는, 훌륭한 빵이었다. 빵에 ‘담백하다’라는 형용사를 붙일 수 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이 빵에 붙이면 될 것 같다. 그 밖에 나머지 빵들도 시식을 해 봤는데 모두 훌륭했다. 빵이 맛있어서 광수체와 관련된 편견은 덜었지만, 오히려 진지하게 빵을 만드는 분위기로 미뤄볼때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쨌든 빵은 훌륭하시다.

2. 베키아 에 누보

그냥 김밥 사들고 도산공원으로 가다가 눈에 띄길래 들어가서 700원짜리 미니 바게트 하나 집어온 터라 먹어봤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또 그걸 먹어보면 대강 읽을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종지에 담은 맥 앤 치즈가 22,000원이던데, 직접 면 뽑나? 게다가 웬 맥 앤 치즈… 입 아프니 여기까지만.

3. 오븐과 주전자

후암동에 가려고 했더니 홍대,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찌모찌가 있는 쪽으로 이전했다고 해서 오히려 더 편하게 갈 수 있었다. 빵의 종류가 많았고 여러가지 시식을 하고 있어서 몇 종류를 집어 먹었는데 솔직히 더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그냥 나올 수 없고 또 맛은 봐야 할 것 같아서 ‘천일염으로 저온 숙성한 우리밀 바게트’를 하나 사왔다. 처음에는 그 아래의 폴앤폴리나 바게트에 비해볼때 크러스트는 더 질기고 속살은 덜 촉촉하다고 생각했으나, 이건 구워 낸 시간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정확한 비교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어쨌든 그 맛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상태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빵도 빵집마다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맛이 좀 있다.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느낌의 빵이었다.

4. 폴앤폴리나

오랜만에 다시 먹어봐야 된다고 생각했다. 오븐과 주전자의 바게트와 비교해본다면 일단 가장 두드러지는 건 크러스트의 카라멜화였다. ‘잘 구운 빵의 크러스트에서는 누룽지맛이 난다’라는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눈 적이 있다. 카라멜화 덕분으로 짙고 구수한 맛이 난다. 그런 반면 속살에는 수분이 남아 있어 적당히 촉촉하다. 수요가 많아서 예전보다 못하다느니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이야기를 붙여야 할 것 같다.

그 밖에 따로 먹었던 빵들.

5. 베이커스필드

강남역에 새로 생긴 곳인데… 그래서 점원들이 자리를 못잡아 그런지 사람이 아주 많지 않은데도 극도로 혼잡했다. 바게트 반쪽 썰어서 받기 위해 10분인가 기다렸다. 그 인상이 너무 강해서 그런지 빵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계산대에 자연발효빵이 왜 좋은가에 대해 잔뜩 적어서 붙여 놓았던데 그 원문이 뭔지 나도 좀 알고 싶다. 정말 자연발효빵에 건강의 측면에서 장점이 정말 있는지 뒤져보았지만 헛수고였기 때문이다. 다시 갈 것 같지는 않다.

6.

빵집의 이름을 언급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이런 빵 만드시면 곤란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통과.

뭐 내가 생기는 빵집마다 족족 갈 수는 없는 노릇인데, 나에게 가장 맛있는 빵인 폴앤폴리나와 레트로오븐만을 놓고 들여다보면 누구나 금방 찝어낼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1. 빵의 가짓수가 적고, 2. 쓸데없는 부재료/이름이 들어가거나 붙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두 집은 확실히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문제는 그 성공을 따라하는 집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빵집은 너무 많은 빵을 만들고 너무 화려하고 복잡한 이름을 붙이며 자연발효종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앞세운다. 단순하게 갈 용기가 없는지, 아니면 이것저것 다 빼고 정말 최소한의 재료로 기본적인 빵을 만들었을때 부족한 부분을 감출 수가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것 저런 것 다 따지고 나면 결국 결론은 그렇다. 만드는 사람도 그렇지만 진짜 먹는 사람들이 이런 현실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생각없이 받아들여서 분명히 손해보고 사는데 그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먹는 건 대부분 의지없이 만들어서 맛이 없는데 그걸 인정하기 싫으니까 ‘입맛은 주관적이다’,’음식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말로 정당화하며 산다.

 by bluexmas | 2011/07/26 10:37 | Taste | 트랙백 | 덧글(18)

 Commented by 삭후 at 2011/07/26 10:58 

OCTOBER 도 썩 괜찮은 것 같아요. 그 외에도 홍대 주변에 식사빵을 잘 만들어 내놓는

베이커리가 한 두곳 더 생겼다던데, 이름을 못 외웠네요.

어쩐지 이것 마저도 대세로 흘러가는 듯 해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7/29 00:50

처음 생기자마자 갔는데 너무 맛 없어서 그 뒤로 안 갔습니다. 좀 나아졌나요?

 Commented at 2011/07/26 13:0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7/29 00:51

최악입니다 ㅠㅠ

 Commented by 지네 at 2011/07/26 13:51 

아직 한 번 밖에 들르지 못했지만 상수역 근처에 퍼블리크라는 곳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괜찮았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7/29 00:51

블로그에 보시면 글 있습니다.

 Commented by 풍금소리 at 2011/07/26 19:39 

폴앤폴리나…빵맛 좋나요?

시간도 많은데 일부러 가서 사고 싶구만요.

프랑스 빵집 <PAUL>과 연관이 있는 것인지…

한가해 지시면 번개 한번 때려주세요.후훗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7/29 00:51

프랑스빵집 폴과는 상관 없구요… 번개는 제가 care하기 어려워서 할까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sf_girl at 2011/07/27 05:54 

광수체가 뭔가 해서 찾아보니까 그거군요. 과연 그렇군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7/29 00:51

네 그것입니다…

 Commented by 나녹 at 2011/07/27 13:19 

광수체 오랜만에 듣네요-_-+

저는 그냥 홀푸즈의 12 seeds라는 둥글넙적한 빵만 계속 먹고 있습니닷ㅋ 그리고 가끔 막 구워낸 바게뜨도 발견하면 곧잘 사네요. 말랑말랑한것이 지하철에서부터 막 뜯어먹게 됨;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7/29 00:51

홀푸즈 빵 좋죠. 빵을 뭐 구울 필요가 있겠습니까…

 Commented by vita at 2011/08/03 10:20 

더벨로도 식사빵이 괜찮을 것 같던데 드셔보셨는지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bluexmas님의 저 칼럼을 읽고 싶은데 엘라서울 8월호 맞지요?

구입전 혹시나 7월호일까봐 확인차 여쭤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8/03 10:28

네 8월호 맞습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불별 at 2011/08/17 13:48 

한남동 악쏘의 브뢰첸은 어떠실런지..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9/18 17:20

아이고 답글을 못 달았었네요;;; 악소는 어째 간다간다하면서 2년째 못가고 있네요… 말씀들은 김에 조만간 가봐야 되겠습니다^^

 Commented by elodie at 2011/09/18 15:24 

엘라서울에서 쓰신 글에 감명(?)받아, 블로그까지 오게 되었네요’ㅁ’ 인사가 늦었지만,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9/18 17:20

앗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당분간은 건축 관련 글이 나갈 예정이니 많이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