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용기로 살아야 한다고?
사람이 죽었다. 거기에다가 대고 “죽을 용기로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먼저, 그 얘기는 들을 수 없다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죽은 사람에게는 전혀 의미가 없다. 죽었는데 무슨 얘기를 들을 수 있겠나. 그렇다고 해서 잠재적으로 죽고 싶은 사람에게 과연 그런 말이 먹힐까? 별로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죽고 싶도록 마음먹는 원인을 어떻게 다룰까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야지, 그 원인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마치 약해서 그런 것처럼 다그치는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거다.
사람이 죽고 싶은 건 삶과 죽음의 상태가 역전되어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삶은 유한하고 죽음이 무한한데(그게 무엇이든 특정 종교관 사절), 삶의 고통이 영원처럼 느껴지다보니 삶 자체도 영원할 것 같고 그 부담이 커지는 나머지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은 상대적으로 순간인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것 아닌가? 어쨌든 삶과 죽음을 위한 용기가 따로따로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고 해도 그 둘이 호환가능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죽기살기로 달려드는 것”하고 “죽을 용기로 사는 것”은 다르다. 죽음이 안 두려워서 선택하는 게 아니잖아. 두려운데 어쩔 수 없으니까 선택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어쨌거나 살아 있지 않나. 그럼 된거잖아. 거기에다가 꼭 말을 보태고 싶을까. 죽음을 그냥 죽음으로 받아들이면 안되나. 거기에 해석을 붙이고 자신이 삶에 가지고 있는 의지를 투영해보고… 누군가의 불행을 안경삼아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확인해보는 것도 그 안경이 죽음인 경우에는 좀 적당히 했으면 좋겠다. 사람이 죽었잖아. 거기에 자꾸 쓸데없는 말을 붙여 뭐하나, 그냥 쓸데없기만 한데.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 by bluexmas | 2011/05/24 00:30 | Life | 트랙백 | 덧글(12)
비공개 덧글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이 죽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경우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