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 순정-배종옥은 대체 언제 죽었대?
누가 이 드라마 이야기를 계속 하니까, 드라마를 좋아하느냐고 물어보더라. 별로 그렇지 않다. 대개 밥을 먹는 시간에 하는데 볼 게 없어서 틀어놓다가 1. 이청아가 나온다는 걸 알았고, 2. 배종옥의 정당화가 너무 훌륭해서 종종 보게 되었다(대사 참으로 훌륭했다.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지만;). 드문드문 봤는데, 마지막 주에는 안 보는 사이 배종옥도 죽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황당했다. 그러나 찾아보지는 않았다. 전개상 자살은 아니고, 착하게 좀 딸이랑 잘 살아보려는데 무슨 업보라도 쌓여서 그런 것처럼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죽은 뭐 그런 건 아닐까 짐작만 했다(이 글 다 쓰고 찾아보거나, 그것도 귀찮아서 안 할 확률이 높다). 마지막회 방영하던 금요일에도 밖에서 놀아서 보지 않았지만 뭐 뻔하지 않았을까.
뭐 솔직히 복잡한 출생의 비밀에 얽힌 드라마들을 (다만 줄거리 뿐으로라도) 너무 많이 봐서 솔직히 여기에 나오는 구성이 딱히 새삼스럽게 충격적일 것도 전혀 없었다. 다만 그걸 울궈먹는 방법에는 가다가다 나중에 짜증이 좀 나 버렸고, 그게 막판으로 갈 수록 챙겨보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솔직히 이 드라마를 끌고 나간 건 그 출생의 비밀로 엮은 막장이 아니라 그 막장의 핵심에 있는 배종옥의 연기라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 드라마는 그냥 그 비밀로만 어떻게 시청률좀 끌어보려고 하는 병신짝 났을 거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다. 그런 출생의 비밀에 형제 가운데 무능한 형, 마누라 죽은 것도 불쌍한데 치매 걸린 순돌이 아빠, 무슨 작가 지망생에 철 없는 딸내미에 음식에…태생이 클리셰인 우리나라 드라마에 또한 클리셰스러운 요소들을 죄다 묶었지만 결국 드라마를 보게 만든 건 배우 한 사람의 힘이라는 건 정말 배우에게는 축복, 작가에게는 저주가 아닐까 생각한다.
뭐 이런 어느 드라마에나 해당되는 이야기겠지만, 나는 우리나라 드라마-아니면 모든 드라마-의 막판 대화해와 해피엔딩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내가 그만큼 뒤틀린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텐데, 출생의 비밀 등등의 온갖 막장의 악쪽 비현실도 모자라 대화해와 해피엔딩 등등의 선쪽 비현실까지 동원해야 한다는 게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그 둘이 함께 맞부딪혀 만들어내는 현실과의 불협화음이 너무 고주파의 영역에 속해 있어서, 드라마를 보기가 너무 버겁다. 감정의 고막이 다 찢어져 버리거든. 나는 지금 ‘아아 너무 아름다운 삶 다 함께 행복하게 살아요오~’와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무슨 착한 드라마를 보자는 게 아니다. 그냥 막장이 너무 많아서 이제는 별 감흥없는 상상력 부재의 반증이라고 밖에 느낄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다. 대한민국 드라마에 막장의 꽃이 활짝 피었는데, 이게 화무십일홍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통 지지를 않네?
# by bluexmas | 2011/05/17 00:00 | Media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