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덕분에
날씨 가 너무 좋아서 그러기에 조금 미안한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냥 남의 살을 먹으러 갔다. 오늘 먹은 남의 살도 남의 살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도 그럭저럭 즐겁게 먹었다. 그리고는 모처에 있는 제과점에서 기교라고는 참으로 부리지 않은 오페라를 먹었다.
오븐 1 그제 저녁때 통화를 해서, 사겠으니 입금 정보를 달라고 했다. 다음 날 오전에 주시겠다고 했다. 소식이 없었다. 오늘 아침, 나가기 전에 온라인으로 송금하면 좋을 것 같아 문자를 보냈다. “바로” 보내드린다는 답을 받았다. 문자는 오지 않았다. 염창역 플랫폼에서 직행을 기다리는데 그제서야 문자가 왔다. 나의 “바로”는 길어야 15분인데, 그분의 “바로”는 한 시간인 모양이었다. 볼일을 보고 송금을 한 뒤 문자를 보내서 언제 가져다 주실 거냐고 물었다. 내일 오시겠다는 답이 왔다. 내가 답을 하지 않았더니 다시 묻는 문자가 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분은 내 이름도 모르고, 강서구 말고는 어디에 사는지도 모른다. 이건 지금 뭔가.
오븐 2 솔직히 나의 마음은 착잡하다. 그 돈이면 블링블링한 시계 따위를 사면 남 보기에 있어보일… 아니 솔직히 그냥 쟁여두고 싶은 돈인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오븐을 산다. 뭔가 웃긴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어쨌든 산다. 사야만 한다.
이마트 드디어 동네 이마트에 갈 시간을 냈다. 아니 사실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닌데 귀찮아서… 오늘도 커피를 마시다가 날씨가 좋으니 다시 시내에 나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동네로 돌아왔다. 사실은 시내에 들러 명함을 맡기고 왔어야 되는데… 증미역 바로 앞에 있는 이마트는 참으로 거대하다, 오산에 있던 것에 비하면. 그래도 크림은 어째 눈에 띄지 않았다. 유제품 코너를 기웃거리는데 모 방송국에서 뉴스 취재를 하고 있었다. 집에 와서 보니 9시 뉴스에 나오더라. 모 유업에서 포르말린 성분이 있는 사료를 젖소에게 먹였다는 기사였다. 혹시나 해서 들여다봤지만 나는 머리 한 올도 나오지 않았다. 작년에 책을 내고 DMB프로그램을 위해 미장원에 들러서 머리를 다듬고 드라이까지 했으나 편집되어 나오지 않은 뒤, 어째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미는데 욕심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때 내가 인터뷰를 너무 못해서 편집된 걸까. 그래도 NG없이 한 번에 갔는데. 하긴 돌아보면 딱히 책의 성격과 맞지 않는 느낌이기는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차가 없기 때문에 절제 안 하고 다 사면 분명히 집에 못 들고 간다는 위기의식을 품고 최대한 자제해서 담았다. 봉지 두 개에 딱 들고 올만큼이었다. 이만큼만 사서 먹고 살아야 한다. 대만산 꽁치 세 마리에 1,200원이어서 사려 했는데 해동된 거라고 해서 다시 냉동할 수 없어 사지 않았다. 장보는 동안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여고생 마을버스 4번을 타고 돌아오는데, 급히 내리던 여고생이 내 발을 밟고 봉지 하나를 찼다. 덕분에 봉지가 자빠져서 물건들이 쏟아졌다. 여고생은 줍는 척을 하다가 버스가 정류장에 서자 내렸다. 사라지는 발걸음보다 ‘어떡해! 어떡해!’가 더 크게 들렸다. 정말 어떻게 해야 될 사람은 나 아니냐? 쭈그리고 앉아서 황급히 집어 담고 다음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걸어오는데 아 젠장 무슨 소년가장 내지는 궁상맞은 홀아비같은 느낌이 살짝 들었다. 두 보따리나 사들고 들어왔지만 저녁은 있던 것들로만 때웠다.
왕자행거 평민 또는 천민행거가 되고 싶으십니까? 아니 뭐 농담이다. 아무래도 정리에 필요할 것 같아 대량 구매했는데 목욕탕용의 상자가 젖어서 찢어진 걸 택배사의 테이프로 붙여 보냈다는 걸 알았다. 택배사 잘못 같은데, 내일 전화해봐야 할 듯. 이런 거 모두 귀찮다. 돈은 시간이다. 내 돈 좀 빼앗아가지 마라 제발 좀. 지금도 그렇게 넉넉하지 못하다.
# by bluexmas | 2011/04/29 01:05 | Life | 트랙백 | 덧글(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