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멀쩡하고 평범했던 하루
잠을 잘 못 자서 정오께까지 널부러져 있던 걸 빼면 그래도 꽤나 멀쩡하고 평범한 하루였다. 정신이 없었지만 차려보려고 애쓰다가 단백질 가루를 먹고 힘이 솟아나 오후 시간에 일을 했다. 이사와서 처음으로 빨래를 돌리려는데 세제를 찾을 수 없었다. 부랴부랴 바로 앞 가게에 뛰어나갔는데, 계산대의 여자가 혼자 사느냐고 물었다. 악의는 없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무신경함에는 신경이 쓰였다. 사생활을 물어보지 않고도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은 그렇지 않은 방법보다도 많다. 다만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어쨌든 세제를 사와서 빨래를 돌렸다. 마르는 동안 한강을 굽어볼 수 있는 빤쓰라니, 거참 빤스팔자치고는 상팔자라고 생각했다.
점점 퇴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달리기를 했다. 강을 보고 달리는 건 생각보다 엄청 지루하다. 계속해서 직선주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너무 작은 존재처럼 느껴진다. 어차피 재미있자고 하는 건 아니니 꾹 참고 달렸다. 늘 선유도쪽으로 달렸는데, 이번에는 가양대교쪽으로 달렸다. 안양천도 시도해보았으나 냄새가 심해서 포기했다. 멀리에서 다리를 건너는 열차가 있길래, 뭔지 궁금해서 거기까지 쭉 달렸다. 밑에서 올려다보았지만 어디로 가는 열차인지 그 표기를 읽을 수 없었다. 집에 와서야 그게 홍대입구를 지나는 공항철도라는 걸 알았다. 정리가 끝나면 공항에 가서 하루 종일 있다 와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김포, 하루는 인천 뭐 이런 식으로. 물론 도시락은 꼭 싸갈 것이다. 요즘은 여행갈 처지가 되지 못하니 그냥 대리 만족 내지는 비행기 구경 정도만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싸구려 블루투스 키보드를 샀으니 이젠 무겁게 넷북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게 어디에 앉아서 쭉 글을 쓸 무엇인가가 빨리 생겼으면 좋겠다. 요즘은 정말,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기다리고 있다. 모든 것들이 함께 출발선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네가 먼저 가면 그 다음에 내가…라면서 팔꿈치로 서로 찌르고 있다. 하나만이라도 치고 나오면 이 지루한 삶이 좀 나아질텐데. 내가 성질이 급해서 그런지, 잘 못 기다린다.
어쨌든, 정말 여행 한 번 떠날 때가 되기는 했다. 그렇지만 당분간은 아마 떠나지 못할 것이다. 가야 되는데.
바람을 등져서 그런지, 열차를 보고 오는 길은 조금 더 수월했다. 오는 길에 만만한 헬스클럽을 찾아보았으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간단하게 먹고 소파에 누워 내내 빈둥거렸다.
# by bluexmas | 2011/04/28 00:36 | Lif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