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앞]청키면가-음식의 원형에 대한 회의

외국음식의 경우, 그 원형이 얼마나 지켜진 채로 들어오는지가 늘 가장 큰 관심사이다. 그렇다고해서 ‘퓨전’음식을 싫어하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우리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라는 핑게로 퓨전 아닌 병신을 만들어 버린 음식이 너무 많아서 퓨전이라는 방법론을 적용하는 주체에 믿음을 주지 못할 뿐이다. 그 얘기는 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으니 접고…

최근에 홍대 앞에 문을 연 <청키면가>는 그러한 측면에서 마케팅의 핵심을 찾았다.  홍콩에서 먹던 그대로의 맛을 재현하려 애썼다는 점을 내세운 것이다. 곁들이로 먹는 야채도 직접 길렀으며, 현재는 40년 전통의 조리사가 주방을 지키고 있다. 그때문인지 그 크지 않은 가게에서 탕면 한 그릇 먹기가 아직은 그리 쉽지 않다. 문닫기 30분 전에 들렀는데도 10분 정도 기다려야만 했다. 완탕수교면 큰 것(9,500)과 카이란 작은 것(3,000)을 시켰다.

곧 음식이 나왔다. 몇 년전 홍콩에 잠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현지를 아주 잘 아는 사람의 가이드에 이끌려 이것저것 많이 먹기는 했지만, 어디에서 뭘 먹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하지만 음식이 풍기는 맛은 홍콩이든 어디든 가지 않았더라도 원형에 가까운, 또는 그 맛을 살리려는 의지를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흡사 사발면의 면발과도 같은 면은 그 정도로 꼬들꼬들해야 굵기와 국물의 온도로 인해 먹기 전에 불지 않을테고, 새우는 많이 익혔다는 느낌-그 새우냄새, 낯이 익었다. 파리에서 먹었던 테이크 아웃에서…-이었지만  완탕도 부들부들했다. 보통 도가니나 소 힘줄, 족과 같이 콜라겐/젤라틴이 많은 부위는 우리나라 곰탕집에서도 너무 익혀 곰치 껍질처럼 흐물거리거나, 아예 기분 나쁠 정도로 씹히도록 조리하는 등, 최적의 식감을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거의 완벽하게 익힌 상태였다. 곁들이로 나온 카이란 또한, 어떤 야채인가에 상관없이 살짝 아삭함이 느껴지도록 굉장히 잘 삶은, 혹은 데친 것이었다(우리나라 조리의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 overcook 인데, 특히 야채류가 심하다. 닭고기나 돼지고기도 사실 별 나을 것 없지만…).

자, 이렇게 모든 것이 ‘아 정말 노력해서 원형에 가까운 맛을 내 보려 했구나’라는 분위기를 팍팍 풍기는 가운데, 그 분위기를 너무 풍겨서 결국 균형이 깨뜨리는 요인이 있었다. 바로 국물이었다. 탕면이 나오자마자 한 입 넣었는데 아, 이건 그냥 조미료 국물이었다. 워낙 조미료 든 음식을 안 먹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 정도로 조미료를 넣은 음식을 만나본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미국에서 먹던 쌀국수에도 정말 화학조미료가 장난 아니게 많이 들어 있었는데, 달달한게 딱 그 국물맛이었다. 먹고 나와 수 노래방 모퉁이를 돌자 혀가 온통 코팅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중국음식을 먹으면서 조미료를 안 먹는 건 거의 피할 수 없다. 그건 많은 밑재료들이 기본적으로 가공제품이고, 그 안에 조미료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여경옥의 중국음식 레시피를 보면 ‘치킨 파우다’라는 재료가 나오는데, 이것도 사실 MSG이다. 굴소스? 다를 바 없다.  물론 이태원의 대한각처럼 자랑스럽게 ‘MSG를 넣지 않습니다’라고 내세우면서 장사하는 집도 있지만, 이런 집들은 극소수일테니 어느 정도는 조미료 먹을 것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나 청키면가의 국물은 그 정도를 넘어선 것이었다.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이 정도의 조미료라면 다시 먹으러 올 일은 없겠지’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정말 드물게, 이런 경우 음식의 원형에 대한 회의를 품게 된다. 나머지 요소들의 조리 상태를 보았을때 분명 대강 만드는 음식이 아닌데, 이렇게 습관적으로 조미료를 넣어 전체의 균형을 깨뜨리는 경우에도 이 원형을 그대로 인정해주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날 저녁 내내 생각해보았지만, 딱히 시원스러운 답은 얻을 수 없었다. 한두 번 경험의 차원에서라면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일상적인 식사를 위해서라면 선택하지 않을 것 같다. 옛날 방식 그대로 설렁탕을 만들었는데 조미료를 듬뿍 넣었다면, 그 음식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만약 김치라면? 아니면 원래 이 정도로 조미료를 넣지 않는데, 우리나라 입맛에 맞춰 더 많이 넣은 것일까? 그도 아니면 내가 워낙 조미료를 안 먹어서 정도 이상으로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일까?-_-

다음 방문을 망설이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가격대이다. 처음 탕면이 나왔을때, 작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물어보았다. 양이 적다고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 정도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웬만해서 가격대에 의문제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음식의 맥락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12,500원을 들였지만 성인 남자의 한 끼니로는 택도 없는 양이라면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야채도 시켰지만, 배를 불리는데 도움을 주는 음식은 당연히 아니었다. 사실 이런 종류의 탕면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개념의 식사라기 보다는 길거리 음식으로서 간식에 가까운 요깃거리 아닌가? 물론 그러한 음식이라도 들여오는 과정이나 재료의 조달, 또는 음식 값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임대료등을 포함하면 이 정도의 가격이 될 수 있다고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머리의 문제고, 배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이만큼 글을 쓸 정도의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청키면가의 음식이 의미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조미료만은 정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아, 나만 그랬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중국식 젓가락으로 단면이 반원인 카이란 줄기 집어 먹기 정말 어려웠다.

 by bluexmas | 2011/04/12 08:18 | Taste | 트랙백 | 핑백(1)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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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ed at 2011/04/12 08:5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4/16 00:28

네 팬더 익스프레스도 멋지죠… 그런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열악한 것 같아요.

 Commented at 2011/04/12 09:0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4/16 00:28

그래서 인스턴트 카레를 더 이상 안 사 먹어요. 귀찮더라도 그냥 루 만들어서 하는 수 밖에 없겠더라구요.

 Commented by 달산 at 2011/04/12 09:58 

음….저는 몇 년전에 홍콩에서 먹었던 완탕면과 거의 비슷한 맛이라고 느꼈는데요.^^; 홍콩에서 먹었을 때 역시 조미료 맛을 강하게 느꼈던터라;;;-_-;;

현지에서 무슨 대회에서 무슨 상을 탔다는 완탕집에 가 봐도 우리나라 밥집 같은 느낌이고(오픈주방이긴 하지만;;) 심지어 합석도 망설이지 않더라고요. 평일에 갔더니 직장인들이 점심 먹으러 바글바글-_-;; 을지로 밥집 같은 분위기랄까요. 거기에서도 완탕만으로는 양이 적은지 다들 서브 메뉴를 같이 시켜서 드시더라고요.

문제는 맛은 똑같은데 가격은 대략 2.5배라는 거..-_-;;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4/16 00:28

그러게요. 가격이 참 그렇죠? 물론 이해 못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2.5배라면 참…

 Commented by 러움 at 2011/04/12 10:42 

이로써 제가 조미료를 전혀 구별하지 못하는 혀라는걸 알았습니다;;;;

저는 물탄 식초같은 그 냄새가;ㅠㅠ 안에 꽉 차서 힘들었던거 빼고는 조미료는 잘 몰랐거든요. 집에선 엄마한테 조미료 넣지 말라고 난리를 피우면서도 사실 구별을 못했다니 슬퍼요;

양은 공감합니다. 여자들은 잘 모르겠는데 남자들은 확실히 부족할거 같더군요.

처음에 큰거라고 나온거 보고 꽤 놀랐었어요. 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4/16 00:29

그러게요 양이 엄청나지요? 그래도 뭐 장사는 잘 되겠지요…

 Commented at 2011/04/12 14:4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4/16 00:29

네 감사합니다. 제가 두 사람 이상은 음식을 먹으러 가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맛있어보이니 뭐라도 먹으러 가고 싶습니다.

 Commented by  at 2011/04/12 17:57 

요새 포스팅이 많이 보여서 가보고 싶었어요.

이름이 왠지 ‘청키면가…’ ‘정키면가…’ 청키, 정키 때문에

처음에 장난치는 줄 알았다능 -_-;;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4/16 00:29

그러게요 정키면가일지도 몰라요. 조미료 정키;

 Commented by 대건 at 2011/04/12 17:58 

올라왔군요. 맛이야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이긴 하지만, 양은 확실히 적더군요.

‘소’ 는 정말 예전 육개장 사발면 사이즈 정도 되어 보이더라구요.

‘대’ 도 그렇게 크지 않구요…

그래도 담에 기회가 되면 한 번 정도 더 가보고 싶기는 합니다.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4/16 00:30

네 음식을 성의없게 만드는 건 아니죠. 오히려 조미료를 좀 덜 넣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Commented at 2011/04/14 00:1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4/16 00:31

그러게요. 국물을 보면 빛깔도 사실 그냥 고기로 만든 느낌은 아닙니다.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해주지는 않겠죠. 조미료가 실로 엄청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