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호텔]무궁화-……………..
도저히 긴 글을 쓸 짬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꾸준히 먹었지만 글은 올리지 못하고 있다. 순서대로라면 한참 뒤에서 기다려야 하지만, 배설의 차원에서라도 빨리 써서 내보내야 할 것 같아 무시하고 먼저 쓴다. 길게 쓰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그래도 다른 여느 블로그의 글들보다는 길 것이니, 끝까지 읽고 싶지 않은 분들을 위해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겠다. 이곳, 최악이다.
사실은 좀 기대를 했다. 그래도 몇 안 남은 호텔 한식당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 블로그로 탐색해봤는데, 느낌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주에 들렀다. 점심코스에서는 두 번째로 비싼 ‘목단(95,000+10/10)을 주문했다.
양식으로 치자면 아뮤즈 부시정도가 될 각종 말린 것들. 썩 뛰어나다고 할 수 없었지만 아주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아직도 쓰지 못하고 있는 ‘부티크 블루밍’의 말린 것들보다는 기름에 덜 쩔어 있었다. 물론 특색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이 정도 가격의 식당이라면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걸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일단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장 먼저 나온 전채. 오른쪽부터 말린 도토리묵의 월과채. 말린 도토리묵의 꼬들꼬들함과 한치, 호박 등등의 아삭거리는 식감의 대조는 좋았다. 하지만 많은 한식들이 그러하듯 초장부터 참기름에 너무 기대는 듯한 느낌이었다. 전채가 꼭 상큼해야 될 필요는 없지만, 이런 음식은 상큼한 게 좋을텐데 무거웠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옆의 두릅을 입에 넣자, 어째 내가 오늘 점심을 먹고 후회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무 맛도 향도 없는 두릅에서 물기가 찍-하고 흘러 나왔다. 야채의 맛과 색을 살리는데 데치는 것만큼 좋은 조리방법이 없다. 하지만 바로 찬물에 담가 조리를 멈춰 야채의 아삭거림을 살리고 또 그 이후에 물기를 빼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딸려있기 때문에 은근히 귀찮다. 그래서 집에서는 제대로 데치기 어렵다고 해도, 식당 주방에서라면 반드시 지켜줘야만 한다. 그러나 이 두릅은 그렇게 신경 써서 데친 느낌이 아니었다.
그 옆의 전복은 통과. 글 쓸 가치도 없었다. 꽃이 아까웠다.
다음은 들깨죽. 역시 글을 쓸 가치가 별로 없었다. 초장부터 느끼는 거지만, 간을 거의 안 했다고 싶을 정도로 싱거웠다. 합정역에서 홍대 쪽으로 가다 보면 <본향 바지락 칼국수>라는 집이 있는데, 칼국수는 안 먹어봤고 들깨 수제비는 몇 번 먹어봤는데, 육천원에 먹을 만하게 만들어 내온다. 호텔 한식당의 들깨죽이라는 게 그 육천원짜리보다 딱히 더 낫지 않았다. 딸려 나온 물김치는, 무 자체는 요즘은 은근히 찾기 힘든, 그 텁텁하다고도 할 수 있는 짠무의 느낌이라 반가웠다. 그러나 그런 맛의 무에 감각적인 국물을 섞어서 뭔가 상충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만드는 사람조차도 신경 안 썼을 거라는 데 오백원 걸겠지만…
사진의 접시를 가지고 나오면서 웨이트리스가 “<사시미> 나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얼씨구. 한식당인데 사시미라고 하는 게 과연 맞나? 아무래도 상관없다. 맛만 있으면 되잖아. 그러나 문제는 맛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마침 3주전과 지난주에 맛있는 문어 숙회를 먹었기 때문에 비교할 수도 있었다. 사장님이 직접 장을 봐서 삶아 내놓는 문어에 비하면 이 문어는 자전거 튜브 수준, 그러므로 통과. 어린 세대들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꺼벙이>의 고 길창덕 화백이 그린 <순악질 여사>라는 만화가 있다. 그야말로 한 악질 하는 마누란데, 남편이 늦게 술에 잔뜩 취해서 친구까지 끌고 들어오자 술안주로 자전거 튜브를 잘라 내 놓는다. 술에 취한 남편과 친구는 밤새 그걸 씹고 앉아 있다. 물론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못 삶은 것임에는 확실했다. 그 다음 광어회 또한 별로 논할 가치가 없었다. 가끔 이마트에서 사다먹는 회보다 못한 느낌이랄까. 그리고 마지막은 참치 육회라는데, 참기름+간장+설탕맛이었다. 물론 생선 또한 신선하지 않았다. 게다가 음식 대부분의 간이 밋밋한 수준인데, 이것만 두드러지게 짠 편이었다.
그리고 나온 음식은 이름하여 ‘삼합.’ 뭐든지 세 가지를 갖추면 삼합이 되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사실 진짜 삼합의 중심은 홍어 아닌가? 그걸 굴로 바꿔치기해놓고 삼합이라고 떡허니 부르는 나이브함이랄까 뻔뻔스러움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맛이 있었느냐면 모르겠지만, 맛도 없었다. 굴이 세 알인가 얹혀 있었는데, 또 이마트랑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거기에서 파는 굴보다 맛이 없었다. 참고로 나는 오늘도 점심에 그 굴을 먹었다. 고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가격을 생각했을 때 사람을 만족스럽게 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껍질이 없는 이유도 납득하기 힘들었다. 겉절이? 통과.
그리고 조기구이. 여기에서 나의 불만족이 폭발했다. 생선에 그야말로 간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싱싱한 느낌도 아니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회사로 치면 부장급 정도의 겉보기 등급을 지닌 스탭을 불러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분 왈, ‘간을 다 했고, <모던>하게 만들기 위해 소금 간을 약하게 하고 된장이나 간장을 쓴다. 집간장으로 무친 야채와 같이 드시면 간이 맞을 것이다’라며 나를 가르치려 들었다. 물론 ‘아 그럼 다시 내올까요’라는 이야기 같은 건 꺼내지도 않았다.
그렇게 쏟아지는 가르침에 바로 기가 죽어 나는, 이분들의 의도를 다시 파악하고자 생선을 계속 먹으려 애써보았다. 그러나 먹을 수 없었다. 일단 같이 내온 야채들이 간장과 어울린다고 할 수 없었다. 사실 간장은 독한 양념이라, 웬만한 야채는 바로 숨이 죽어 버린다. 비니그렛도 아니고 간장에 버무린 야채라… 취나물이면 모르겠지만. 주인공인 조기는 간도 안 되어 있지만, 나에게 가르침을 주신 분의 말씀을 따르자면 ‘팬 프라이’인데 사실 껍데기 쪽이 바삭하게 구워지지도 않은 것이었다. 1/3쯤 먹었으나 도저히 더 먹을 수가 없어 젓가락을 내려놓았더니, 정말 무섭게 접시를 치워가 버렸다. 물론 아무 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대망의 식사. 일단 치맛살 구이부터. 짜지 않게 간하는데 집착하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우리나라 음식의 추세에 충실한 단맛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이었고 이 고기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기는 무난했다고 쳐도, 위에 올린 튀긴 마늘편을 보면 무궁화가 얼마나 음식을 생각 없이 만드는지 알 수 있었다. 무조건 튀겨서 올리면 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사실 마늘은 조리하기 어려운 향신채다. 센 불에 올리면 금방 타버려 쓴맛이 나기 때문에, 그 맛을 기름에 내기 위한 온도와 타이밍 조절이 만만치 않다. 튀길 때도 마찬가지다. 너무 오래 튀기면 쓴맛이 나고, 기름을 제대로 빼지 않으면 눅눅해서 이 뒷면에 달라붙는다. 사진의 마늘편 튀김이 그랬다. 이건 10만원짜리 음식이었다.
밥은 한층 더 가관이었다. 풀기 없고 온기도 없는 맛없는 밥. 주문을 하고 코스가 이 시점까지 오는데 50분 정도가 흘렀다. 그 시간이라면 한 사람분의 밥을 돌솥에 안쳐서, 비빔밥에 맞는 온도로 식히는데 충분할 것이다. 10만원짜리 식사라면 그래야 되지 않을까? 그러나 내 앞에 놓인 밥은 모든 면에서 너무나도 성의가 없었다. 딸려 나온 국은 아귀 지리라고 해서, 대체 아귀로 국을 어떻게 끓였을까 싶어 식사까지 비빔밥으로 주문한 것이었다. 오래 끓여 퍽퍽해진 살은 동태라고 해도 모두들 그렇게 믿을만한 정도였다. 국물은 그냥 소금물이었다. 그 어느 반찬에도 손이 가지 않았다.
대망(大亡)의 후식. 호떡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 호떡이다. 기름에 쩐 호떡. 그리고 과일. 또 그리고 감흥 없는 무엇인가. 글이 아까워서 더 언급하지 않겠다.
모 계열사 행사가 있다고, 올라오는 ‘전용’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었다. 그 때문인지 내가 밥을 먹는 홀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도 직원들은 계속해서 우왕좌왕했다. 후식을 먹자마자 일어나 계산을 하려는데, 겉보기 등급이 매니저급인 직원이 허둥지둥 달려와 내 카드를 받았다. 그가 물었다. “맛있게 드셨습니까?” 나는 대답했다 “글쎄요, 실망스러웠는데요.” 사실 나는 그 전에 기회를 한 번 놓쳤다. 코스 중간 어딘가에서 웨이트리스가 그릇을 치우면서 “맛있게 드셨습니까?”라고 물었는데 조건반사처럼 “네”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나는 계속 긴장하고 있다가 원하던 대답을 날렸지만! 겉보기 등급이 매니저급인 직원은 ‘너 지금 뭐라고 그랬니?’의 분위기로 응대했다. 마치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아니 마치 내가 ‘맛있게 잘 먹었어요^^’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아예 내게 되묻지조차 않았다. 그래 뭐. 나는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식당을 떠났다.
음식이 맛없는 데는 대략 둘, 혹은 세 가지의 원인을 꼽을 수 있다. 별 것도 아니다. 재료와 조리솜씨이다. 솜씨가 없어도 재료가 좋으면 맛있을 수 있고, 솜씨가 좋으면 썩 좋지 않은 재료를 어느 정도 살려낼 수 있다. 그러나 재료가 좋지 않은데 잘 만들겠다는 의지, 즉 성의가 없으면 그 음식은 최악이 된다. 무궁화의 음식이 그러했다. 못 만들기도 못 만들었지만, 정말 재료가 지독하게 나빴다. 거기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이 정도만 해도 되겠지’라는 일종의 나이브한 거만함이 저변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더 짜증이 났다.
사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갔다. 음식이 맛있다면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예상 가능한 시각과 글의 컨셉트 등등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무궁화의 음식은 이 정도 길이 글의 거리가 될 만한 가치조차 없었다. 그냥 한마디로 말하면 ‘최악’ 바로 그 자체였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직업이 절반이 이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식당 총 지배인이든 주방장이든 롯데 그룹의 회장이든, 누군가 이야기를 들어줄만한 사람에게 편지를 써서 어떻게 이런 마인드로 음식을 낼 수 있느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 돈 돌려달라고 정중히 부탁하고도 싶었다.
어떤 식당들은 먹고 나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음식에 기가 막혀서 글을 써서 내온 소금 한 알갱이까지 씹어주고 싶어진다. 그러나 무궁화는 그 단계를 넘어섰다. 나는 지금 전혀 화가 나 있지 않다. 그냥 기만 막힌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되돌려서, 무궁화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는 내 양 싸대기를 갈겨 말려 돈 11만 얼마를 아끼도록 만들고 싶다. 혹시 땅을 파서 이 돈의 1/10이라도 나온다면 나는 내일부터 일을 전폐하고 땅을 파겠다. 꽃샘추위지만 그래도 얼어붙지는 않았을 테니 땅파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가 살면서 참 잘못된 결정을 많이 했지만 <무궁화>에 간 것만큼 최악의 결정은 없었다” 라고 말하며 <무궁화에 가서 먹은 점심의 충격을 죽을 때까지 떨쳐버리지 못한 찌질한 남자>라고 묘비명에 써달라고 할 생각이다.
글을 올리지 못했지만, <부티크 블루밍>과 무궁화는 음식의 질 면에서 어깨동무하는 수준이다. 다만 부티크 블루밍은 무궁화의 절반 수준이면 먹는다. 아직도 책을 못 받고 있는데 <W 코리아>에서 블로거에게 물어본 레스토랑 리스트 기사를 싣는다고 해서 나도 참여했다. 물론 나는 부티크 블루밍도 무궁화도 포함시키지 않았는데, 그 둘을 포함시키신 분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 원고 부탁을 받고 ‘아 한식당을 포함시키려면 무궁화도 가봐야 되는데…’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이 정도로, 가보기도 전부터 이 식당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나쁘기도 참 쉽지 않은데, 무궁화가 해냈다. 달래 우리나라 꽃이겠나? 아니, 달래가 우리나라 꽃이라는 이야기가 아니고…-_-
아, 이걸 빼먹을 뻔 했다. 다 먹고 나니까 “요지”를 가져오더라. 그것만큼은 정말 십만원 넘는 식사의 품격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만큼은. 아니, 어쩌면 그것만.
# by bluexmas | 2011/03/03 10:23 | Taste | 덧글(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