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보고 개궁상

다들 밤을 비롯한 제수거리들을 사는 냉장고 앞에서 나는 이 작고 볼품없는 라임을 발견하고는 혼자 쓸데없이 말도 안되는 감회에 휩싸였다. 그냥 말도 안되는 개궁상이었다.

이제는 옛날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그 시절, 내 냉장고 야채칸에는 언제나 라임이 있었다. 레몬보다는 언제나 살짝 더 달콤한 느낌이 나는 라임을 좋아했다. 질이 좋은 건 아니었지만 다섯 개에 채 1달러도 안 해서 언제나 별 부담이 없기도 했다. 그래서 돌아오고 난 뒤 라임이 보물처럼 귀하다는 걸 알고는 꽤나 심각하게 실의를 느끼기도 했다. 이제는 포기하고 살던 와중이었다. 개당 천원 꼴이었지만 아낌없이 여덟 개나 질렀다.

그러나 그저 반가운 마음에 사기에 이 라임은 썩 좋은 상태는 아니다. 레몬도 아닌데 색이 노랗고 크기도 굉장히 작다. 그래서 혹시 키 라임이 아닐까 생각해봤는데, 미국산이라는 걸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키 라임은 조금 더 시고 향도 강하고 껍질도 얇다고 한다. 나도 항상 그냥 라임을 쓰느라 키 라임은 거의 써보지 않았고, 다만 플로리다의 키 웨스트에 놀러 갔을때 그 동네의 명물이라는 키 라임 파이만 열심히 먹고 왔다. 그러나 진실을 밝히자면, 그 동네의 호도과자 격인 키 라임 파이의 원료는 브라질에서 건너온다고 들은 바 있다. 그 동네에도 자라기는 하지만 파이에 쓸만큼 대량으로 자라지는 않는다고 한다.

채 영글지도 않은 느낌이지만 어쨌거나 귀한 라임으로 뭘 할까 좀 생각해봐야 되겠다. 일단 파히타 만들어 먹는 생각을 했는데, 그러러면 토티야도 직접 만들어야 하고, 아무래도 사워 크림도 직접 발효를 시켜야 할 것 같은데다가 요즘 토마토도 별 맛이 없고, 고수는 또 어디에서 사며…

아무래도 괜히 샀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개궁상만 떨고 제자리에 두고 올 걸. 너무 비싸서 보드카에 넣기에는 좀 아깝다. 모히토를 만들자니 민트 사는 것도 귀찮고….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by bluexmas | 2011/02/03 01:48 | Taste | 트랙백 | 덧글(16)

 Commented by 올시즌 at 2011/02/03 01:53 

한국에선 라임이 정말 귀하더래죠^^

옛적에 바에서 데킬라 마시는데 라임이 없어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실란트로 그득히 올린 타코와 파히따, 그리고 라임과 코로나….참 좋은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2/05 00:03

그렇죠. 코로나를 비롯한 멕시코 맥주는 솔직히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런 미국화된 멕시코 음식 맛있죠… 진짜 멕시코 음식은 아니라고들 하더라구요.

 Commented by cleo at 2011/02/03 02:03 

애플 ‘민트’라면.. 우리집 화분에 있는데..-.-

날도 추운데 ‘모히토’ 마실려면 좀 썰렁하지 않나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2/05 00:03

애플민트도 좋지요~ 어차피 썰렁하니까 뭐 상관없습니다^^

 Commented at 2011/02/03 02:4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2/05 00:04

것도 좋네요. 그냥 라임파이 만들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게 가장 라임을 존중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네요.

 Commented by 루아 at 2011/02/03 07:26 

그러고 보니…진짜 다들 고수는 어디서 공수하시는지? 라임은 마트에서 본 적이 있고, 토티야야 귀찮아도 만들어 먹음 되는데…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2/05 00:04

아, 고수는 백화점에는 언제나 있고 마트에 가고 종종 있어요. 그래도 귀찮은 건 귀찮은거라서요…

 Commented by 펠로우 at 2011/02/03 22:05 

전 일본드러머 아키라 짐보의 [라임 파이]란 앨범을 갖고있는데, 어떤 건진 모르겠지만…파이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2/05 00:05

네 아무래도 파이가 최고죠^^ 멕시코 음식에 쓸 게 아니라면요. 플로리다식 라임파이 만들어보려 합니다~

 Commented by 푸디 at 2011/02/04 05:11 

사워크림도 직접 발효 ㅋㅋㅋ

고수는 이마트에서 본 기억이 나네요. 요새 백화점 지하 코너에 가도 조금씩 파는 것 같구요. 여튼 한국서 라임 구하기 차암 힘들죠…맛있는 거 해 드시길!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2/05 00:05

믿거나 말거나 예전에 시도해봤습니다. 상온에서도 되거든요. 요거트 제조기도 있구요. 우리나라 유일의 사워크림인 덴마크 사워크림은 사실 요거트라서요…

 Commented by Suzy Q at 2011/02/04 12:52 

베트남갔더니 쌀국수에도 당연히 라임을 넣어먹더군요. ㅎㅎ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2/05 00:05

심지어 미국에서도 라임을 미친 듯이 주죠… 미국 쌀국수는 고기가 국수보다 더 많아요-_-

 Commented by 사바욘의_단_울휀스 at 2011/02/04 19:04 

제가 써본바로 키 라임은 좀더 작고 더 원형에 가까운 녀석으로 알고 있는데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2/05 00:07

맞습니다. 이 라임은 하도 열악해서 키라임이라고 착각하기 쉽겠더라구요. 보통 키라임은 더 작고 만져보면 껍질이 얇다는 걸 금방 느낄 수 있죠^^ 플로리다 키라임파이는 꽤 맛있습니다. 머랭 잔뜩 올려서 구우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