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찌개의 저녁

계속 잤다. 이대로 자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아서 일어난 게 여섯 시쯤이었다. 입에는 점심에 먹었던 파스타의 맛이 남아 있었다. 주말 내내 먹고 싶은 게 없었다. 만들어 먹고 싶은 게 없다고 말해야 되나? 짜파게티를 끓였는데 먹다가 토할 것 같아서 남겼다. 냉장고에 남아있는 소세지를 처리하려고 구웠는데 역시 먹다가 토할뻔했다.  그런 나 자신을 보고 있으려니 역겨워서 또한 토할뻔 했다. 밥을 먹고 싶지 않았으나 다른 것들 또한 딱히 먹고 싶지 않았다. 지난 주에 현미찹쌀을 사온 것이 실수였다. 한국사람의 틀을 벗으려는 건지 쫀득거리는 밥이 너무 거슬렸다. 짜파게티같이 느물느물한 것도 거슬렸다. 그래서 파스타를 생각해냈다. 꼬들거리는 건 좀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평소보다 더 못 만들었지만 그래도 일단 넘어가기는 했다. 마늘은 탔고 판체타는 기름이 너무 빠져 안 먹는 편이 나았다. 그러나 다 먹었다.

일어나서는 부랴부랴 청소를 했다. 청소라고 할 수 없는 청소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일종의 정신적인 영역에 걸치는 청소라고나 할까. 그것도 안하면 정말, “아 난 그것도 안 했어! 천하에 개쓰레기 같은 놈!”이라는 반응이 스멀스멀 나오면서 인격 분열이 일어난다. 청소를 마치고는 오랜만에 목욕을 했다. 그리고는 단 1초도 앉아 쉬지 않은 채 저녁 반찬을 만들었다. 구워 먹으려고 해동시켜놓은 고기 두 쪽이 있었는데, 딸린 입이 많아 불려야 하는 소년 가장의 컨셉트로 찌개를 끓였다. 된장과 고추장을 반씩 넣어 먼 옛날 산에서 취사가 허락되던 시절 즐겨 먹었던 등산찌개와 비슷한 분위기를 냈다. 시간이 없었으므로 감자는 전자렌지에서 반쯤 익혔다. 그럭저럭 먹을만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쫀득거리는 밥이 거슬렸고, 혓바늘이 방해요인으로 작용했다.

다 늦게 일을 시작했다. 감기가 아직 다 떨어지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내일은 예정에 없는 외출을 해야하는데, 영하 12도라고 한다. 나는 알고 보면 겨울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번 겨울은 참 만만치 않다. 봄 되면 여름 걱정하는 사람이 난데 겨울이라도 좀 너그럽게 지나주면 안 될까. 이번 겨울은 추운 것만 빼놓고는 힘들기가 참 여름 뺨 친다. 하긴, 이런 상태라면 봄이 오는 것도 뭐 반가울까 싶다. 이번 겨울은 참 숙제같다. 담임선생님은 점수에 짜셔서 숙제를 해도 좋은 점수는 웬만해서 잘 안 주신다고 하던데.

 by bluexmas | 2011/01/25 01:19 |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