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절미의 단문장답-양지훈 셰프와의 인터뷰
지난 달에 올렸던 바로 그, 양지훈 셰프와 가졌던 인터뷰의 원문이다. 사진은 얼마 전 그의 새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참치로 만든 아뮤즈 부쉬. 책에 들어갈 사진을 찍을때 나도 몇 장 찍기는 했지만, 아무리 얼굴 내놓고 활동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내 맘대로 사진 찍어 올리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올리지 않기로 했다.
인터뷰라는 생선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네모난 중국식 식칼로 단숨에 머리와 꼬리를 내려친다. 그리고 남은 몸통만 추려, 접시에 담아 질문으로 내민다. 거두절미(去頭截尾), 인터뷰를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내내 했던 생각이었다. 질문은 짧을수록, 답은 길수록 좋다. 스스로를 ‘경상도 사나이’라고 일컫는데 주저함이 없는 양지훈 셰프를 만나 <무한도전>, 한식의 세계화처럼 다소 민감할 수도 있는 주제에 관해 솔직한 생각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섭외할 때, 인터뷰를 많이 한다고 그랬다. 그 인터뷰들에 만족하는가? 별로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인터뷰는 외국의 유명 셰프 밑에서 일한 경력 같은 것들을 위주로 물어본다. 예를 들자면 나는 피에르 가니에르의 레스토랑에서 일했지만, ‘chef de partie(고기, 생선 등 한 가지의 재료 또는 음식을 맡아 조리하는 쿡)’로 잠깐 일했을 뿐이고 나도 그런 부분을 강조하지 않는데, 언제나 인터뷰를 하면 그런 부분만 부각된다. 나는 경력이 길고 화려한 사람이 아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는 생각, 또는 철학과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런 인터뷰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블로그에서 ‘루카 511’을 소개하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상대적으로 맛에 대한 갈망이나 진취적인 성향 때문에 많은 양식 셰프들이 경상도 출신이다. 전라도 출신이라면 굳이 양식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없다’라는 내용이었다(참고로, 그의 고향은 부산이다). 맛에 대한 갈망보다는 지리적인 위치로 인한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바다를 면하고 있으니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기상이랄까, 언제라도 배를 타고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말하자면 어부의 기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해외, 특히 일본의 문물을 언제나 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는 것도 영향이 컸다. 집에서는 일본 방송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나의 경우라면, 그러한 점들이 한데 어우러졌다고 생각한다.
중간에 루카 511이 자리를 옮긴 것까지 포함하면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세 번째의 레스토랑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셰프들은 자주 자리를 옮긴다. 부침도 심하다 이유가 무엇인가? 아무래도 자본의 문제가 가장 두드러진다. 일단, 오너/셰프가 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가 자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뒷받침이 될 수 있는 자본과 자연스럽게 사업 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 자본의 구조가 많은 영향을 미친다. 레스토랑 사업에 들어가는 자본에는 무엇보다 지구력이 필요하다. 레스토랑이 자리를 잡는 데는 생각보다 긴 시간, 적어도 6개월은 걸리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는 참고 버텨줘야 한다. 그러나 지구력이 없는 자본이 바탕이 된다면 채 자리를 잡기 전에 사업성과를 놓고 오너와 셰프 사이에서 갈등이 생길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어떠한 자본이 레스토랑 사업과 짝을 이루는데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나? 위에서 언급한 지구력에, 파인 다이닝을 문화 사업의 한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자본이 가장 이상적이다. 파인 다이닝은 수익을 내기 힘든 사업이다. 가끔 음식 접시를 받아들고 의아해하는 손님들이 있다. 치르는 돈에 비해 그 대가가 빈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손님들이 치르는 돈은 단지 음식의 재료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월세부터 인건비, 심지어 보안서비스 비용까지, 다양한 측면의 ‘사업 유지비’가 포함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을 모두 고려한다면 샤넬과 손을 잡고 있는 알랭 뒤카스가 나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경우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소규모로 운영하는 수밖에 없다. 파인 다이닝의 수요층이 너무나 얇기 때문이다. 유지를 위한 이익 내기가 너무 어렵다.
<무한도전>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큰 그림을 보자면 한식의 세계화라는 명분이 작용했다. 정부에서는 그걸 위해 스타 셰프를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모교 지도교수의 추천을 통해 장태평 당시 농림수산부 장관이 검토, 다시 <무한도전>에 추천을 했다. 물론 처음에는 거절했다. 담당 PD가 찾아왔는데, 외국에 직접 나가서 현지인들을 만난다는 콘셉트가 좋아 출연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 결정에 만족하는가? 아무래도 삶의 전환점들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한 편으로는 후회한다. 나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고 당연히 음식으로 알려지고 또 인정받고 싶은데, 방송에 출연 이후로 그런 부분만 부각되기 때문이다. 유명해지는 건 좋다. 소위 말하는 ‘스타 셰프’도 필요하니까. 하지만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 때문에 대인배 또는 성격 좋은 셰프로만 부각되는 건 싫다. 심지어 일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쿡들 가운데도 내가 그럴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방송의 경우 조리에는 아마추어인 출연자들이 끝까지 안전하게 촬영을 마치도록 돕는 것이 내 임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친절하게 대한 것이다. 말하자면 셰프라기 보다는 멘토였다고 할까? 내 주방에서 나는 그와 다른 사람이다. 당연히 다른 셰프들처럼 화도 내고, 쿡들을 혼내기도 한다. 주방에서는 긴장해야 되기 때문이다. 비단 불과 칼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손님을 위해서다. 스테이크를 조리하려면 15분이 걸리는데, 13분쯤에 실수를 해서 다시 조리해야 한다면 결국 28분이 걸리게 된다. 그 사이에 손님은 화를 내거나, 갈 수도 있다. 그런 실수를 저지른 쿡에게 괜찮다고 이야기한다면, 그는 프로페셔널이 될 수 없다. 쿡들을 잘 가르치는 것도 셰프의 의무이다. 불과 칼이나 불 때문에 주방에서 긴장해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지휘자로서 셰프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한식의 세계화>, 차마 입에 담기도 진부한 질문이지만 답도 없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왜 한식의 세계화를 논하면 그 대상이 북미나 유럽이 되어야 할까? 가까운 동남아 사람들도 외국인이고, 그들도 당연히 세계화의 대상이다. 아시아 음식이 공유하는 특성이나, 한류의 인기를 고려한다면 그쪽 지역을 대상으로 우리 음식을 알리기에 아주 좋은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음식도 일본이 경제 발전을 이루고, 전자제품과 같은 것들로 그 나라와 문화가 알려지고, 문화의 일부로 음식이 자연스레 알려지게 되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외국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잘 모른다. <무한도전>촬영차 간 뉴욕에서도 많이 느꼈다. 우리는 아시아에서 상위계층에 속하는 나라 아닌가? 아시아에서 우리 음식이 널리 알려진다면, 그 힘을 업고 북미나 유럽으로도 훨씬 더 쉽게 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우리보다 못산다고 생각하는 아시아 국가들에도 우리 문화를 영유하는 계층이 있을 것이다. 그들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또한, 한식의 범주나 정통성을 정의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모든 문물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음식도 지금까지 외국의 영향을 받고 받아들이고 발전하는 과정을 거듭했다. 그렇게 따지만 한식의 울타리도 지금보다 더 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A’라는 접근방식을 따르면 한식의 범주에 들고, ‘B’를 따르면 아닌가? 그건 결국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분 못하는 경향과 일맥상통한다. 다양성을 보다 더 많이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떡볶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떡은 쫄깃거리거나(chewy) 달라붙는데(sticky), 이 둘 모두 목표로 하는 서양인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부정적인 식감이다. 이런 떡볶이를 굳이 정책까지 뒷받침해서 세계화를 추진해야 할까? 정책을 세우는 사람들의 이해가 너무 부족하고, 거드는 한식 전문가들도 너무 보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현지화를 좀 하면 어떤가? 사람들은 ‘캘리포니아 롤’을 미국 음식 아닌, 일본 음식으로 알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한식의 프리젠테이션과 같은 측면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존재에 대해서 대다수가 모르는 상황에서 문화적인 측면을 아무리 강조해봐야 딱히 효과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비단 내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음식 맛을 아는 서양 음식 셰프의 역할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나는 스스로를 프렌치 셰프라고 정의한 적이 없는데, 그건 나 또한 치즈 아닌 김치를 먹고 자랐기 때문이다.
지금 설명하는 접근 방법은 ‘한식의 재료+서양의 기술’로 들린다. 그 반대의 경우, 즉 ‘서양의 재료+한식의 기술’은 어떤가? 우리가 ‘신토불이’를 강조한다면, 한식의 진출대상이 되는 지역의 신토불이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몸에 우리 농산물이 가장 좋다면, 미국인의 몸에는 미국 땅에서 나는 농산물이 가장 좋은 것 아닐까? 그렇다면 그 땅에서 나는 재료를 써서 한식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같은 파라도 우리나라와 미국의 것이 조금씩 다른데, 각자의 특성을 이해하고 음식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땅의 사람들을 위한 음식 재료를 우리나라에서 들여오는 실정이다.
다른 셰프들의 레스토랑에 자주 가서 먹는지 궁금하다. 시간이 없어서 마음만큼 가지 못한다. 경쟁관계에 있어서 가지 않는 경우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서로 배울 점이 있다면 주고받을 수 있어야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독창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여태껏 일하다가 한계를 느끼면 외국에서 배워온다는 마음으로 나가곤 했다. 물론 배우는 건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다른 레스토랑에 더 많이 가보고 싶다. 물론, 그럴 경우 상당부분 알고 있는 기법 같은 것들보다는 재료의 사용과 같은 측면에 관심을 더 기울이게 된다. 나는 아직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배워야 한다. 그런 내 자신에 부끄럽지 않다.
‘한국 사람의 입맛’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나? 당연히 있고, 나도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그걸 좋아한다. 먹는 사람이 있어야 음식도 의미가 있기 때문에, 내 기준을 지키는 선에서 손님의 취향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외국에서 배우면서, 새로운 음식을 접하면 항상 우리나라 사람의 입맛이나 재료의 현실에 맞추는 방법부터 생각했다. 그래서 거듭 강조하지만, 나는 프렌치 스타일의 음식을 추구하지 않는다. 내 스타일, 양지훈의 스타일이 목표일 뿐이다. 그래야 내 음식으로 외국에 진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블로그를 통한 음식이나 레스토랑의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양함을 인정한다는 측면에서 받아들이려고 한다. 안 좋은 평가가 있다면 그 이유를 파악하고 개선하려고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너무 많이 영향 받지 않으려고도 한다. 물론 객관적인 시각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 레스토랑에 오지 마라’라는 반응을 보이고 싶지는 않다.
셰프로서 본인의 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빨리 배우는 센스를 가지고 있다. 외국의 주방에서 일할 때에도, 셰프의 도구나 재료 등의 배치(전문 용어로는 ‘mise en place’)를 유심히 보고 또 어떤 경우에는 사진을 찍어 두었다가 그대로 준비해두곤 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센스라는 건, 삶의 지혜와 같은 것이다. 이렇게 센스 있고, 착한 쿡들을 좋아한다. 음식 만들기에 자신이 있으므로, 같이 일하는 쿡들이 그런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건 내가 ‘커버’해 줄 수 있다. 음식을 잘 못한다고 생각하는 쿡일수록 더 많이 가르쳐주려고 한다. 한계가 엿보이면 안타깝기 때문이다.
위에서 더 배워야 한다고 그랬는데, 그렇다면 목표는 무엇인가? 미슐랭의 별을 받는 것이다. 언어 문제나 이런 것들로 현지의 미슐랭 레스토랑의 셰프가 된다는 생각을 쉽게 하지 못했다.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내 자신의 레스토랑을 꾸려서 별을 받는다면 같은 목표를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두절미의 단문단답(短文短答)
소금 “삶.”
칼 “소도구일 뿐. 없으면 손으로.”
불 “필수 불가결.”
엘 불리 “대단하고 신기하지만…… 장난치나?”
분자요리 “하고 싶지는 않지만 ‘쇼’도 필요하니까.”
페란 아드리아 “마음씨 좋은 아저씨.”
피에르 가니에르 “창의성, 색감.”
(요리)철학 “색. 물론 맛은 기본. 바로 나 자신.”
# by bluexmas | 2010/10/28 12:19 | Taste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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