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의 낮술(20)-저렴한 돼지 안심 구이
정말 오랜만에 올리는 낮술 시리즈. 그동안 주말 낮술을 잘 안 마셨다.
동물의 고기=근육이라고 쳤을때, 운동을 많이 한 부위는 질긴 대신 깊은 맛이 있고 그 반대의 부위는 반대로 부드러운 대신 깊은 맛은 없다. 게다가 운동을 많이 하지 않는 부위의 근육은 오랜 조리시간에 버티지 못한다. 지방이 없어서 수분이 금방 날아가버리고 뻣뻣해진다.
소나 돼지 모두에서 ‘tenderloin’이라 불리는 안심이 바로 후자의 대표적인 부위이다. 소의 텐더로인은 사실 엄청나게 비싸지만, 돼지의 그것은 가장 싼 부위에 속한다. 이번에 쓴 고기는 롯데마트에서 1,480원/100g이었는데 강남의 백화점 같은 곳에서도 2,000원 안쪽이었다. 압구정 현대백화점에서 3,980원/100g짜리 비싼 삽겹살을 사다 먹었던 걸 생각하면 정말 싸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이 부위를 카레나 장조림용이라고 딱지를 붙여서 파는데, 개인적으로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래 끓이는 고기는 지방도 좀 있어야 뻣뻣해지지 않는다. 게다가 장조림같은 경우 양념이 배게 오랫동안 끓여서 결대로 쪽쪽 찢어 내라고 하는데, 그래봐야 질기고 퍽퍽하며 물기가 없는 고기를 먹게될 뿐이다. 텐더로인은 짧은 시간동안 조리한 다음, 결의 반대로 1~1.5cm정도 두께로 썰어먹는게 좋다.
아메리카스 테스트 키친에서 텐더로인 레시피를 찾아봤는데, 그 가운데 가장 손쉬운 것이 겉을 팬에 지지고 마무리는 오븐에서 하는 것이었다.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요즘 돼지는 기름기가 적어서 그야말로 돼지맛이 좀 딸리는 편이다. 그래서 보통 염지를 많이 하는데, 이 레시피는 그럴 필요가 없다. 조리 한 시간 전에 냉장고에서 꺼내 넉넉한 소금(고기가 300~400g일때 반 작은술 정도)과 후추로 간한다. 물론 고기를 상온에 두어야 지질때 온도차가 적어서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팬에 기름을 두 큰술 정도 두르고, 각 면을 3분 정도 지져준다. 그 사이 오븐을 200도로 예열한다. 고기를 다 지지면 베이킹 팬에 옮겨 오븐에 넣는다. 10~16정도 굽는다. 목표 온도는 오븐에서 꺼냈을때 57도인데, 10분 정도 휴식시켰을때 62도까지 올라간다는 걸 전제로 한다. 닭가슴살이나 돼지 안심 모두 안 익을까봐 걱정해서 결국 퍽퍽할때까지 오래 익히게 되는데, 그러지 않아도 된다. 내 오븐에서는 13분만에 목표 온도까지 올라갔다.
고기를 굽는 동안 소스를 준비한다. 잘 익히면 고기가 부드럽기는 하지만 아주 깊은 맛이 있지는 않으므로 소스는 필수이다. 고기를 지질때 바닥에 남은 “fond”를 바탕으로 소스를 만들라고는 하는데, 기름기가 너무 없는 부위이므로 남는 것도 없다. 어쨌든 사과와 파인애플 간 것, 먹던 포도주, 양파를 바탕으로 과일 소스를 만들었다. 텐더로인도 거의 백지 같은 맛을 가지고 있으므로 소스는 정말 원하는 대로 만들어 곁들일 수 있다. 사천풍 중화소스도 괜찮고, 돼지불고기에 쓰는 달고 매운 고추장 소스도 잘 어울릴 것이다. 포도주를 넣었더니 소스의 색깔이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다.
감자와 양파를 굽고, 단지 싸기 때문에 산 빨간 양배추로 만든 샐러드, 달지 않기 때문에 그냥 먹기는 좀 뭐한 복숭아를 구워 곁들였다.
술은 언젠가부터 있었던 피노 누와. 고기를 생각하면 피노 누와는 손쉬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 by bluexmas | 2010/10/13 12:05 | Taste | 트랙백 | 덧글(12)
낮술 마셔본 지가 언제인지 ㅠ_ㅠ
구운 복숭아의 거뭇거뭇 탄 부위가 특히 더 매력적
혼자서 원하는 걸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건 참 건강하고 좋은 호사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