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공원, 치과, 아이폰, 윤대녕 등등

1. 하늘공원에 갔다왔다. 하늘… 공원? 푸핫.

추석 연휴때부터 크고 작은 공원 열 군데 정도를 돌아다녔다. 원고는 그럭저럭 마무리를 향해 가는데, 사람들의 사진에서 보아왔던 하늘공원의 이미지가 조용하고 평화로와 보여 혹시라도 내가 놓치는 게 있을까 꾸역꾸역 갔다. 가보니 그럴 필요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연 공원이라고 되어 있는데 아저씨들 열심히 담배 피우시더라. 뭐 그것 때문에 실망한 건 아니었지만. 월드컵 경기장은 예전에 한 번 가봤었지만, 옛날 난지도는 15년만에 처음이었다. 운전면허를 거기에서 따서, 대학교 2학년때 몇 번 갔었다. 그때는 합정역에서 택시를 타고 가곤 했다.

2. 운전면허, 하니까 기억이 나는데, 처음에는 안산에서 시험을 시작했다. 필기는 한 번에 붙고, 실기도 코스는 한 번에 붙었는데 주행에서 떨어졌다. 수동으로 시험보던 시절, 언덕길에 올라갔다가 시동이 꺼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난지도로 시험장을 옮겨서 역시 주행을 한 번 더 떨어지고 세 번째에 붙었다. 처음 난지도에서 주행시험을 볼때, 합정역에서 택시 합승을 했는데, 같이 탄 남자는 아마 음주로 면허가 취소되어 다시 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그동안 차는 당연히 몰고 다녔죠.” 내 바로 앞에서 시험을 봤는데, 떨어졌다. 이봐요 아저씨, 그동안 운전 하셨다면서…

3. 다시 하늘 공원. 그때 난지도에서 보았던 쓰레기 산이 하늘공원이 된 줄은… 사실 몰랐다. 그래서 가스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널려있던 듯?

4. 어쩌면 마지막 시도였는지도?

5. 바로 이웃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은데, 옆집 아기 엄마는 나를 볼때마다 부럽다고 말한다. 자영업자라고 했더니 그런 것. 며칠 전에는 ‘우리 남편도 프리랜서라 집에서 일하면서 육아도 도우면 참 좋겠다’고 말하더라.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러면 아마 일은 못하게 될 것이다. 나가서 일하거나. 이런 건 참으로 민감한 주제이기는 한데, 어쨌거나 분명한 건, 자영업자도 회사원과 똑같은 강도로 똑같은 시간 일해야 먹고 살까 말까 하다. 개인적으로는 쥐꼬리만큼의 자유를 얻는 대신 더 많이 일해한다고 생각한다.

6. 오늘은 치과에 40분이나 늦었다. 15분 늦으니까 1번 요정님으로부터 바로 전화가 왔다. 무서웠다. 빨리 가려했으나 설상가상으로 길을 잘못 들어 더 늦었다. 게다가 혀도 오늘은 내 말을 안듣고 요동을 쳐서 모범환자의 체면을 구겼다 못난 혀 같으니라고.

7. 치과 치료를 마치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죽전 휴게소에 하이패스 카드를 충전하려 들렀다. 그런 김에 아예 점심도 해결할까 생각을 했는데 아침에 멀쩡하게 챙겨나온 카드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나오면서 잔돈을 바꿔야 할 일이 있어 집 앞 수퍼마켓에서 짜파게티를 하나 샀는데 그런 과정에서 흘린 모양. 갑자기 머리가 막 복잡해지면서 일시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일단 밥부터 먹어야지, 라고 생각하고 뚜레주르와 구내식당을 훑었으나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매점에 구운 계란은 없었다. 그래서 막 고민하는 사이에 식당 밖에서는 ‘무슨무슨 어린이 돕기’를 하는 가수가 공룡이 화석 되기 직전 시절의 풍요로움을 담은 노래를 아무런 느낌 없이 불렀고, 그 바로 뒤에서는 해병대 군복을 입은 아저씨가 하는 노점상이 튼 뽕짝이 경쟁하듯 흘러나왔다. 순간 나는 구내식당 밥을 먹을까 생각하고 쟁반을 들었는데, 그대로 창밖으로 날려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꾹 참고 다시 일단 카드를 충전하고, 거기에 있는 컴퓨터로 카드회사 번호를 찾아 차로 돌아와 전화를 걸어 일시 정지를 시키고 뚜레주르의 치킨랩을 사다 먹었다.

8. 근데 뭐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았지 병신같이;;;

9. 아이폰T_T

9-1. 근데 핸드폰이 잘 안 되면 문자도 잘 안 보내고, 전화도 잘 안 걸게 된다. 이건 어쩌면 좋은 일일지도…

10. 아, 아침에 서둘러 나가다가 결국 카메라 하나에 메모리카드도 안 끼워가지고 갔다.

11. 10을 고려해보면 나는 역시 병신같다.

12. 그래서 물어보았는데, 볶은 걸 들여올때 최대한 빠르면 하루 반이 걸린다고 한다. 그럼 별 문제 안 되는 것 아닌가?

13. 어제 전화기 대리점에 들러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그냥 나가려니 바뀌는 점원의 표정이라니.

14. 그런데 핸드폰 가게가 이제는 교회나 약국, 치킨집만큼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다 그렇게 장사가 되나…

15. 집에 돌아오는데 고속버스가 전용차선에 덩그라니 서 계셨다. 멋지다고 생각했다.

16. 다시 치과 얘긴데, 남는 돈이 많은데 빨리 쓰고 싶다면 치과 치료를 받으면 된다. 굳이 금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17. 윤대녕의 산문집을 스무쪽도 채 못 읽었는데, 그의 지난 소설집이 왜 그런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늙기 시작했다.

17-1. 물론 꼭 부정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사람은 자라야 한다. 40대가 되어서 20대의 감수성만을 보여주는 음악가들을 보면 괴롭다. 문학쪽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18. 나는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19. (마이크를 관중석쪽으로 돌린다/당신의 잡담으로 채워주세요).

19-1. (물론 가사를 까먹어서 그러는 건 아니구요;;;)

20, 집에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나는 지금 스스로 생각하기에 문제인 것들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지 잘 알고 있다. 손을 뻗어 버튼을 하나 누르면 된다. 그러나 왜 그걸 못하고 있나 따져보니까, 내가 같잖게도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아서 얻는 결핍을 장작으로 써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 그런데 ‘결핍을 얻다’라는 것 자체가 말이 되나?

 by bluexmas | 2010/10/09 02:00 | Life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당고 at 2010/10/09 12:15 

맞아요, 윤대녕은 늙어가고 있죠.

전 그 점이 좋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치과에서 혀는 정말, 처치 곤란이에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0/10 11:45

그런 변화가 나쁘지만은 않던데요. 오히려 다음 소설이 기대됩니다. 장편으로요. 혀는 토끼가 거북이 속일때 그랬든 떼어놓고 치과 가고 싶더라구요-_-

 Commented by 풍금소리 at 2010/10/09 23:34 

휴식이 필요한 시기가 온 것 아닐런지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10/10 11:45

저요? 오히려 더 많이 일하고 싶습니다… 휴식은 누구나 언제나 원하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