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달에게 붙인 이름
1,700번째
‘이거’ 였던가? 아냐, ‘여기’였던 것 같다. 그가 쪽지를 내밀면서 했던 말이. 그야말로 ‘클래식’하게 접은 쪽지였다. 접고 난 양쪽 끝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내가 달에게 붙인 이름이야, 라고 했던가. 뭐 그런, 헤아리기 힘든 뜻을 가진 말이었다. 보는 앞에서 펼쳐보려하자, 그는 손목을 꼭 잡으며 제지했다. 고개도 두어번인가 가로저었다. 때가 오면 펼쳐보라는 의미였다. 언제? 물어보았지만,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그래서 나는 쪽지를 그대로 주민등록증 뒷칸에 집어넣었다. 보름달에서 1/4쯤이 덜찬 달이 뜬 밤,하늘은 그렇게 맑은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몇 달인가 지나서,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밤이었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데, 한동안 잊고 있던 쪽지 생각이 났다. 오랫동안 지갑에 들어 있던 덕분에 쪽지는 납작해져 있었다. 계속해서 만지작거리다가, 집까지 두 정거장을 남겨놓았을 때쯤 쪽지를 펼쳐보았다. 거기에는 광화문 우체국의 사서함 번호가 적혀있었다. 공교롭게도, 달이 꼭 그만큼 덜 차오른 밤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그때보다 더 맑았다. 버스 정류장 바로 뒤의 편의점에서 봉투와 우표를 사서는, 쪽지를 넣고 그 주소를 써 집 근처에 있는 우체통에 집어넣었다. 그 뒤로 그에게서 다시 연락이 오지 않았다. 물론 나도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 by bluexmas | 2010/09/11 12:41 | —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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