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역]정미소-집밥보다 더 집밥 같은

검증되지 않은 <집밥의 힘>

지난 주에 이 곳, <정미소>에서 저녁을 먹고 글을 쓰려던 참에 SBS에서 <집밥의 힘>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타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미소에서 먹은 한 끼니가 밖에서 사먹을 수 있는 음식 가운데에는 정말 가장 집밥의 느낌에 가깝다는, 아니 어찌 보면 요즘 집에서 먹을 수 있는 집밥보다 더 집밥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다큐멘타리를 보고 한데 묶어 글을 쓰려 했으나 막상 찾아 보니 채 10분을 지켜보기가 힘들었다.

일단 내가 보았던 부분까지만 놓고 본다면 다큐멘타리는, 집에서 해 먹는 음식이 육체적인 건강은 물론, 그로 인해 정신적인 건강도 북돋아주어 애들이 공부도 잘 하게 되고, 폭력적인 성향도 줄어든다… 그러므로 집에서 밥을 해 먹는 것이 좋다 라고 가뜩이나 집에서 밥 안 먹는 사람들을 계몽하려는 것 같다. 그 취지 자체는 좋고 나도 공감한다. 그러나 다큐멘타리가 펼치고 있는 논리에는 두 가지의 헛점이 있다.

그 첫 번째는, 요즘 재료 생산의 현실을 냉정하게 고려해볼 때 시장에서 재료를 사다가 단지 집에서 음식을 만든다고 해서 그게 육체며 정신에 원하는 만큼 이롭게 작용할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파는 음식이나 인스턴트, 패스트 푸드 등을 먹는 것보다 나을 수 있겠지만, 다큐멘타리에서 정말 순진하다고 생각할 만큼 제시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검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바로 그 검증의 문제인데, SBS는 이런 종류의 다큐멘타리를 내보내면서 정확하게 의학 또는 과학적인 검증이 되지 않은 내용을 내보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내용이 불러올 파장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 가장 좋은 예가 산당 임지호가 출연하는 <방랑식객>이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 미리 밝히자면, 나는 이 프로그램을 아주 즐겁게 보았고, 그가 오랜 경험을 통해 체득한 식재료나 그 재료들이 가져올 수 있는 효능에 대해 전혀 터무니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런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의 차원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그러한 내용을 공중파 방송에서 주제삼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내보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그가 제시하는 방법은 누군가에게는 효능이 있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없거나 아니면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그러한 내용이 보다 더 신빙성을 가지려면 그에 따른 의학적,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방송의 의무라고 생각하는데, 프로그램에서는 그러한 내용이 전혀 없었고 따라서 나는 그걸 보며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의 부모나 이런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보고 무작정 따라해보다가 소기의 성과를 얻지 못할 경우, 그 책임은 누가 질까 상당히 궁금하게 생각했다.

거기에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간간이 보이는 작은 결함들이 또한 다큐멘타리의 신빙성을 깎아 먹기도 한다. 예를 들어 조민기 가족이 먹는다고 죽 늘어놓은 음식들 가운데 아침 시리얼로 가장 유명한 K모 기업의 ‘@루트 룹스’가 있던데 설탕 많이 들어가고 영양가 없는 시리얼을 까면 맨 처음 나오는 것이 바로 K모사 제품 아닌가? 아니면 미국에 가서 살면 살이 찌고 여드름이 난다는 6남매 중 유학중인 딸의 인터뷰 역시 너무 ‘나이브’하다. 물론 어느 정도 하향 평준화 된 음식 탓일 수도 있겠지만(대학 카페테리아의 저질 음식과 같은 것들), 그건 어느 정도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일텐데 그걸 전부 시스템의 탓으로 돌리는 건 설득력이 없고, 게다가 그게 집밥을 먹여 키워 애들을 모두 좋은 학교에 보냈다고 하는 집의 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 정도로 집에서 음식에 대한 분별력을 키웠다면 아프리카 오지가 아니라면 자신의 몸이 원하는 음식을 찾아 먹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 <집밥의 힘>이라는 다큐멘타리를 고작 10분 남짓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물론 프로그램을 끝까지 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성급하게 따지고 드는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조금 더 인내심이 생겨 끝까지 프로그램을 다 보았는데 내가 잘못 생각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글을 또 올리도록 하겠다.

<정미소>와 집밥

그래서, 대체 집밥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 때문에 집밥이라는 것의 개념이 그 의미를 많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비싼 물가와 맞물려 저비용, 고효율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욕구 때문에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의 수준은 낮아졌고,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를, 바쁜 사람들을 위한 인스턴트 및 패스트 푸드의 범람으로 사람들은 음식 만들기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엇인가 있어 보이는 음식’을 만드는 데는 예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그냥 평범한 식생활-가장 우리나라스러운 음식으로?-을 위한 음식을 만드는 데는 예전만큼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아마 이러한 현실을 조목조목 따져본 뒤, 그 반대의 상황만을 종합한다면 아마 그게 집밥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합정역에서 양화진 공영 주차장 가는 길의,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안 지나다니는 길에 있는 <정미소>는 그런 의미에서 따져볼 때 요즘 집에서 먹을 수 있는 밥보다 더 집밥스러운 음식을 낸다. 전부 비빔밥인 메뉴 가운데 버섯비빔밥을 코스(10,000)로 주문해보았다. 전채며 후식까지 다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어떤 음식이 나오는지, 또 그 음식의 구성이 어떤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전채격으로 나온 음식은 게맛살을 마요네즈에 버무려 밀전병에 싼 것이었는데, 일단 굉장히 잘 부친 밀전병이 인상적이었다. 아직 글을 올리지 못했지만 <초록 바구니>에서 맛보았던 밀전병도 맛있었지만, 야들야들함이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나가는 빈대떡이나 부침개들을 보면 대부분 튀겼다고 해도 괜찮을 정도로 기름을 많이 써서 부쳐내는데, 이런 것들은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전병에 싸인 게맛살 무침도 맛은 있었지만, 게맛살과 같은 재료에 향미증진제와 같은 것들이 들어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주방장이 모든 장을 직접 보고, 일체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는 컨셉트를 가진 집에서 이런 재료를 쓰는 것이 옥의 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건 어쩌면 식당의 잘못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묵이나 햄, 이런 육가공품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조미료 안 쓴 제품을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재료나 샐러드 드레싱과 같은 것들을 한식 상차림에 들이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예전에 어느 한정식 집에서도, 모든 음식들이 전부 조미료 없이 맛있었지만 샐러드 드레싱이나 머스터드에 든 조미료 때문에 전체적인 균형이 깨지는 것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바닥에 깔린 건 매실의 단맛이 두드러지는 소스였는데, 살짝 자극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마요네즈나 밀전병에 액센트를 주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비빔밥은 실로 단촐했다. 몇 가지 버섯을 볶고 빨간 양배추와 샐러리 등을 곁들인 뒤 양념 고추장을 함께 내는, 아주 상식적인 수준이었는데 그 와중에 재료의 신선함이 돋보였다. 물론 내가 조리를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팽이버섯만 한 가지만 해도 볶거나 찌개에 넣거나 상관없이 질겨서 무슨 맛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 비빔밥에 든 버섯들은 굉장히 부드러웠다. 또한 빨간 양배추도 싱싱했고, 무엇보다 샐러리 줄기는 하나도 질기지 않고, 달았으며 즙도 많았다. 고추장 역시 요즘 추세 때문인지 좀 매운 느낌이었지만, 무엇보다 달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단맛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비빕밥이니 밥이 가장 중요할텐데, 온도로 보아 지은지 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찰기를 거의 잃지 않은 건 좋은 쌀을 써서 잘 지었다는 반증이었다. 참기름에 볶아 물을 부어 끓인 미역국도 다른 식당에서라면 참기름을 엄청 많이 넣어 진한 맛을 추구했을텐데 비빔밥을 먹다가 입을 가셔줄 정도로만 진한 느낌이었고, 반찬도 정갈했다.

후식은 떡과 방울토마토, 오미자차였는데 떡은 좀 단편이지만 맛은 있었다. 단가나 이런 것들이 어떻게 얽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밥의 후식이니 떡보다는 다른 종류의 한과 같은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그 경우라면 토마토를 굳이 안 내도 되지 않을까? 토마토도 맛은 있었지만 떡이나 오미자차와 어울리지는 않았다). 오미자차 또한 신맛이 두드러지지 않고 은은한 수준이었다.

한마디로 뭉뚱그려 표현하자면, 정미소의 음식은 심심하다. 그러므로 솔직히, 요즘 유행하는 맛을 생각해본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입맛에 매력적으로 느껴질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심심한 맛을 좋아하고, 따라서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을 때도 이러한 맛을 추구한다. 조미료 안 써 가면서 이런 식으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쉬울 것 같지만, 그 존재 자체를 모르는 성분이 든 식재료를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게 요즘 현실이다 보니 사실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니다. 별 것 아닌 음식을 만들 때에도 끊임없이 의식을 해야만 하는데, 그게 또 상당히 피곤하다. 어쨌든, 홍대 지역에서 딱히 먹고 싶은 것이 없을때 찾을 수도 있으며, 정말 집에서 밥을 먹고 난 다음처럼 속이 편안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은 건 하나의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글을 올렸던 <기린아>와 가격에서 아주 큰 차이가 없으니, 고르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가장 좋은 장소라고 생각한다.

참, 덧붙이자면 일하시는 분들 모두 친절했다.

 by bluexmas | 2010/07/20 16:20 | Taste | 트랙백 | 덧글(15)

 Commented at 2010/07/20 16:4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7/21 15:10

맛있더라구요. 저는 정말 외식을 안 하려는 사람이라서… 어제도 양꼬치 먹었는데 조금 후회했어요. 너무 대책없이 먹었거든요. 아예 집밥처럼 만들려면 정말 조미료 없이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Commented at 2010/07/20 16:5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7/21 15:10

저도 그런 백일몽을 가끔 꿉니다. 그러나 결론은 한식의 세계화는 지금 포맷으로는 불가능이라는 거죠…

 Commented by Mathilda at 2010/07/20 20:08 

오 정말 뭐랄까 단아하달까 정갈하달까 그런 분위기네요 (…) 하으앙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7/21 15:10

그런 분위기에 음식은 좀 심심하고 그렇더라구요. 괜찮았습니다.

 Commented by dunst at 2010/07/20 20:31 

생각하기 나름입니다만…전 집에서 저렇게 먹은 기억이 없어서 집밥처럼 보이진 않네요 ^^; 그냥 김치에 된장찌개가 저에겐 더집밥같은 느낌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7/21 15:11

제가 말한 건 저 음식 자체가 아니라 맛이나 재료 그런 것이었습니다. 김치나 된장찌개도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다른 음식이 되겠죠?

 Commented by 뉴론의작은공간 at 2010/07/20 21:50 

음식이 깔끔해보이네염.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7/21 15:11

그렇죠?

 Commented by 나름 at 2010/07/20 21:56 

집밥….제가 생각하는 집밥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군요…며칠묵은 된장찌개or김치찌개에 다른 반찬 한두가지 곁들여서 먹는게 제 기준의 집밥..-_-;;;;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7/21 15:11

뭐 저도 별 다를바 없습니다만 dunst님께 드린 덧글을 참조하시면 될 것 같네요.

 Commented by 롸씨 at 2010/07/21 13:36 

아이구 배고파 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7/21 15:11

밥을 드셔야죠 ㅠㅠㅠ

 Commented by 홈요리튜나 at 2010/07/21 16:49 

저기 담겨져 있는 반찬들도 전부 쉐킷하면 진정 집밥이네요 맛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