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죄 없는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비밀 없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비밀을 만들지 않고 살려고 하면 오히려 삶이 더 피곤해진다. 어떻게 보면 비밀이라는 게 삶의 노폐물 같은 것, 즉 살아있다는 사실의 반증이라고 생각하니까. 살아 있지 않으면 배설하지 않는다. 뭐 비밀은 배설하지 않기 때문에 비밀이겠지만…  비밀을 오랫동안 배설하지 못하면 쌓여 괴로와져서 배설의 유혹에 시달리게 되는데, 그걸 그렇게 권장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아닌 이상에야 배설에는 화장실 대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밀을 배설하겠다는 건 바로 그 사람에게 고통의 일부를 소유권 이전하겠다는 의도가 되는데, 이게 부담이 되지 않는 관계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화장실에서도 배설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쓰는 물이 얼만데.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비밀을 알면 최소한 호기심 충족 차원에서라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비밀을 캐내기 위해 목을 매기도 하는데, 어떤 비밀은 모르고 사는 편이 낫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러는 거다. 때로 누군가의 어떤 비밀은 그동안 보아왔던 세상을 전혀 다른 것으로 보이도록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비밀을 쌓아두는 것만으로 다른 사람에게 배려한다. 그러나 대부분 그럴 수 있다는 사실조차 믿지 않는다. 어차피 짧은 삶인데 모든 것을 다 알고 살 수는 없고, 어떤 건 정말 알 필요가 없지만 알아차리고 나면 늦는다. 그때 후회해도 소용없다.

 by bluexmas | 2010/07/07 00:25 |  | 트랙백 | 덧글(8)

 Commented by 딸기쇼트케이크 at 2010/07/07 01:11 

종종 모르는 것이 약이다 라는 옛 말씀에는 많은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7/10 00:55

그러게요. 몰라서 행복할 수 있다면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지 않나 싶습니다…

 Commented by 숙성식빵 at 2010/07/07 01:37 

많은 공포영화들이 그 주제를 말하기 위해 필름을 할애하고 있지만 그것이 꼭 영화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는 쉽지 않지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7/10 00:55

알고 난 다음 대가를 혹독하게 치뤄보지 않아서 그러는지도 모를 일이죠…

 Commented by 안녕학점 at 2010/07/07 01:45 

끄덕끄덕. 두 문단이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비밀에 대한 bluexmas님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7/10 00:56

아, 저는 공교롭게도 저 주제에 대해 글을 은근히 자주 씁니다…

 Commented by 롸씨 at 2010/07/08 14:36 

공공연한 비밀, 이란 게 생각나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7/10 00:56

그건 약간 똥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없는 게 낫다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