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뒤의 낮술(18)-‘수제’피자 3종 세트
솔직히 요즘 버거 같은데 붙어나오는 ‘수제’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 이유는 1)손으로 음식 안 만드나? 2)왠지 ‘수제’라는 말은 ‘폭탄’과 같은 것들과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왜 ‘손으로 만든’은 안 되나, 다섯 글자라서?
어쨌든, 오랜만에 피자를 구웠다. 뉴욕타임즈의 피자 관련 기사를 읽었더니 먹고 싶어진 것이다. 역시 ‘수제’인 토마토소스도 냉동실에서 꺼내 놓았지만 피자라면 입닥치고 반죽이 생명, 오랫동안 발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길래, 마감을 달리고 있는 밤 꾸역꾸역 반죽-믹서로 5분, 다시 손으로 6분 정도 반죽했다-을 만들어 두 시간 정도 상온에서 발표를 시키고, 냉장고에 밤새 넣어놓았다가 그 다음날 아침에 꺼내놓았다. 피자를 굽기 두 시간 전에 대강 모양을 잡고 휴식시켰다. 무쇠 팬에 구우려다가 그냥 화분 받침을 오랜만에 넣고 오븐의 온도를 끝까지 올려 30분 정도, 충분히 예열시킨 뒤 12분 동안 구웠다.
피자라면 기본인 마르게리타. 겉은 바삭바삭하면서 약간 씹는 맛이 있지만 속은 살짝 ‘크리미’한 느낌(뉴욕타임즈의 표현을 빌자면;;;), 자화자찬 따위는 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까지 만들었던 반죽 가운데 가장 괜찮은 느낌-발효를 끝낸 뒤 손으로 만졌을 때도 그랬다-이었다. 단면을 보니 공기방울이, 그래도 제대로 발효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다음은 스테이크와 발사믹 식초에 조린 양파. 이탈리아 사정은 잘 모르겠는데 미국에서는 언젠가부터 날계란을 올려서 익히는 게 유행이라고 해서 한 번 시도해보았다. 12분 동안 굽는다면 계란을 깨 놓았다가 8~10분째에 얹어주면 된다. 사진의 피자에서는 2분 동안 익혔는데, 노른자는 괜찮지만 흰자는 조금 더 익혔서도 괜찮을 뻔했다. 흰자도 그렇지만 살짝 덜 익은 노른자가 소스 역할을 해서, 뭐 이런 맛에 계란을 얹어서 먹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 피자는 피@헛 같은데서 먹을 수 있는 치즈크러스트 흉내를 낸답시고 모짜렐라를 반죽 가장자리에 얹고 한 번 접어서 구운 것이었는데, 피자의 양이 적어서 큰 효과는 없었다. 스트링치즈라면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은 반죽이 남아서 빵 대신 먹으려고 구운 피자 비앙카(또는 그걸 닮으려는 무엇인가;;;). 남은 치즈와 허브 프로방스 바닷소금 을 뿌려 구웠다. 느낌은 어째 피자보다는 난 같았다.
술은 있던 싸구려 두 병을 땄는데 예전에도 올렸던 것들이라 딱히 더 언급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다섯 번은 마신 듯한 저렴한 론 한 병과 14,000원짜리 G7 리저르바였다. 90%의 완성도였지만 마감을 넘긴 걸 자축하며 먹고 마셨다. 밤새워 일하고 피자 구워서 낮술 마시는 인생.
# by bluexmas | 2010/05/26 10:29 | Taste | 트랙백 | 덧글(23)
늘 구경하다보면 신통방통하신분이라는 생각만..
비공개 덧글입니다.
비공개 덧글입니다.
비공개 덧글입니다.
마감 수고하셨습니다~^^
노란게 설마 노른자일까.. 싶었는데 정말 노른자군요. 모두 다 맛있어보여요. ^^
블루마스님이 만드신 피자를 보니 굳이 다른 피자집 안 가셔도 될거 같은데요? 정말 감탄만 합니다 항상//
블루마스님 요리는 공사판에서 일하는 근육미남자같은 느낌이예요 비유 되게 이상하네요
인위적이지 않은 멋집이란 그런거예요..헬스장근육남은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bluexmas님 하고 살고 싶네요
음식 사진을 볼 때마다 느낌 🙂
피자 크기가 앙증맞네요. 귀여워요. 보통 피자의 한 조각 크기는 너무 커서 (라기 보다는 칼로리의 압박에T_T) 안먹는 데 요건 먹고 싶어지네요. 이 정도의 크기면 칼로리 압박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거 같아요 ! 계란 익힌 피자 궁금해요 궁금해요 ! 저도 그렇게 만들어 먹어보고싶은데 엄두가 안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