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만 해댔지

일이 막바지로 접어드니까 다른 글은 도저히 올릴 수 없다. 머릿 속에는 온통 ‘과연 잘 끝낼 수 있을까+김치가 떨어졌는데+담그려니 고추가루도 없군+그러나 본가 가기는 귀찮다’로만 가득할 뿐이다. 게다가 복잡한 국내정세와 세계 평화까지 생각하면 아아…

그래서 오늘도 잡담만 해댔지.

1. 발로 딸기 타르트를 만들어보고 그만하면 계절의 뒤안길로 주저하며 사라지는 딸기를 위한 송별식치고는 괜찮았다고 생각했는데, 어젠가 어디에서 딸기 젤리 조리법을 찾고서는 ‘아 이걸 마지막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딸기 한층을 깔고 그 위에 오렌지를 깔고 또 뭔가 한 층을 더 만들어서 3층 젤리… 그러나 일단 마트에는 딸기가 아예 없었다. 어디 시장에라도 가서 뒤져봐야 되나? 사실은 젤리를 진짜 좋아하는데 안 만들어본지 너무 오래됐다. 액체라면 어떤 거라도 ‘저거 젤리로 만들어보면 무슨 느낌일까’라는 생각을 한다. 막걸리 젤리 같은 거 어떨까… 어째 운도 맞는데.

2. 새벽에 바다 건너에서 벌어지는 야구 낮경기를 보면서 일을 했는데, 선발투수가 급 난조를 보이더니 2회도 채 지나기 전에 점수는 8:0. 그만 보고 잠이나 잘까 생각했지만 지는 경기도 즐기면서 볼 수 있어야 진정한 대인배 겸 야구팬이라는 생각에 그냥 대강 보면서 일을 했더니 7회까지 9:3. 원정팀이 너무 긴장을 풀었는지 실책이 속출해서, 이거 잘 하면 이상한 경기 한 번 보겠네-라는 예감으로 버텼더니 무려 9회에 끝내기 대타 만루홈런을 비롯해 일곱점을 따라붙어서 10:9로 역전승. 이런 경기 이기는 게 원래 되는 팀이라는 길조인데, 올해 좀 되려나… 아침에 혼자 책상에 앉아서 흥분하다가 잠을 못 잤다.

3.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더니 별로 할 얘기가 없기는 하다. 게다가 낮에는 계속 잤다.

4. 오늘은 저녁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딱 10분 봤는데 더 볼 수가 없었다. 모 방송국 뉴스의 월드컵 응원가 관련 기사는 그 가운데 압권.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노래 가운데 하나가 윤@현 밴드의 월드컵 응원가. 크@잉 넛이 부른 응권가는 그래도 좋았다. 정말 다들 그렇게 축구를 사랑하냐고…그냥 그걸로 현실을 잠시 잊고 싶은 건 아니고? 물론 축구 사랑을 비웃고 싶은 건 절대 아니고. 좋아한다는데.

5. 직접 얼굴 보고 하지 않은 의사소통에서는 오해의 소지가 역시 많고, 나는 좀 옹졸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싫은 건 싫다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평소에 말 안하고 사는 건 아니지만…

6. 몇 달 동안 계속해서 나를 화나게 만드는 일이 몇 가지 있다. 가장 기분 나쁜 상황은, 누군가 화가 났는데 나는 그 이유조차 짐작을 할 수 없을 때이다. 나의 잘못인 건 어쩌면 상관이 없다. 그걸 인정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게 대체 뭔지조차 감을 잡을 수가 없는 게 진짜 문제다.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안 하고를 따지기 이전에, 적어도 원인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뭐 그게 의미없다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나이 먹고서 이익이 얽히지 않은 인간관계를 새로 만드는 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7. 왜 사람을 만나기 싫을까 생각해보면, 이유는 한 가지: 침묵이 어색한 걸 못 참아서 이말저말 막 하면 나중에 기분이 나쁘니까.

8. 모니터 앞에 앉아 있으면 땀이 나기 시작하는 걸 보면 여름인 모양. 내 모니터는 엄청난 발열체다. 큰 LCD는 다 이런가?

9. 어제도 잠깐 한우를 살까 망설이다가 생각한 건데, 물론 다른 모든 기회비용이 얽힌 것들이 그렇기는 하겠지만 정말 한우가 호주산에 비해 적어도 세 배 이상의 만족을 주나?

10. 다시 한 번 메일을 읽어보니 미국에서 준다는 수표는 내 은퇴자금 깬 것의 자투리였다. 우리사주 이익 분배 따위가 아니고… 그건 10년 되기 전에는 의미가 없다고 알고 있고 그때가 되어도 나 같은 애들한테는 별로… 문제는 어떻게 이 수표를 현금화하냐는 건데(그래봐야 20달러 정도지만, 그래도 한 푼이 아쉬운데), 수표를 우리나라로 보내달라고 해서 이서를 하고 입금표와 함께 다시 미국의 친구 누군가에게 보내 내 대신 입금해달라고 하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이 무슨 비효율적인… 그래도 돈인데. 사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 리베이트도 300불 가까이 있는데, 이건 8월 말까지 미국 코스트코에 가서 돈으로 바꿔야 한다. 하와이라도 가야 되나…? 그 돈이면 조금 보태서 아이패드 살 수 있을텐데.

11. 어제 본 새끼 고양이들 사진을 찍으러 갈 생각이었는데 자느라 못 갔다. 내일도 있으려나… 계속 눈 앞에 아른거린다T_T

 by bluexmas | 2010/05/21 22:38 | Life | 트랙백 | 덧글(24)

 Commented by JuNe at 2010/05/21 23:13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거야 말리지 않겠지만 안 좋아한다고 ㅁㄱㄴ 취급받는 게 불쾌해서 8년전에는 빨간색 비슷한 티셔츠도 안입고 다녔던 생각이 문득 났어요. 8년전인가 4년전의 가장 무시무시한 광고는 어디더라? sk였나 그랬는데 새로 태어난 아기가 나오면서 지금 ****만명째 붉은악마가 태어났습니다 하는데 아니 거기서 난 빼줘, 싶었다지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6/06 00:08

오오 저도 좀 빼주세요. 신경쓰고 싶지 않습니다…

 Commented by ra at 2010/05/21 23:46 

축구는 좋아하지 않지만 월드컵은 좋아하는거죠. 그게 쪼꼼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축구 좋아하는 척 하는거 아닐까요…;; 아닌가? 이기고 지는거. 특히 나라 이름 달고 하는건 흥미로와요. 저도 잘 모르는 애국의 피가 흐르나봐요. 에잇,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6/06 00:08

사실 흥미롭기야 하지요. 그냥 마케팅이 싫은거라고나 할까요…?

 Commented by 봄이와 at 2010/05/22 00:18 

새끼 고양이 사진 보고싶어요. 내일도 있었으면 좋겠지만…그럼 그녀석들이 내일까지도 갈곳없이 있다는 뜻이니까 흠..꼭 있길바랄순 없겠네요 ;ㅅ;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6/06 00:09

이 글 쓴지도 벌써 한참 되어서 가보니 고양이가 없더라구요. 좋은 집사들 만났나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해피다다 at 2010/05/22 00:42 

7번 동감 또 동감입니다…어색하게 하기 싫어서 이말 저말 했다가 얼마나 후회하는지…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6/06 00:09

아예 사람을 안 만나는 것도 방법인데 좋은 방법은 아니지요ㅠㅠㅠ

 Commented by 잠자는코알라 at 2010/05/22 01:07 

6번같은경우 저는 진짜 소심해서 왜그러냐구, 나땜에 화났냐고 미안하다고 제가 먼저 이야기해버립니다; 마음같아서는 무시하고 싶은데.. ㅠㅠ

사람 만나면 초면에 어색하고 그러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막 주워섬기는데요; 그러고 나면 물론 집에 와서까지 계속 기분좋은적도 있지만.. 그야말로 너무 말을 많이 해서 힘빠지고 기분이 콱 나빠질 때가 있더라고요. -_-;;

새끼 고양이 너무 이쁠 것 같아요. ㅠㅠ 그래도 날이 춥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6/06 00:09

앗 그럼 지는 거에요 ㅜㅜㅜ 우리 모두 철면피가 되어야지요.

 Commented at 2010/05/22 01:4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6/06 00:10

아, 저도 알아봐야 될 것 같아요. 어떻게 되나… 그때 오실거면 뭔가 일이 좀 있을 것도 같은데요?

 Commented by 푸켓몬스터 at 2010/05/22 09:54 

사람에 따라서는 한우가 세 배 이상의 만족을 주기도 할것같아요

명품 사는것과 비슷한거 아닐까요?

물론 맛 자체만 따지자면… 으음…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6/06 00:10

그렇죠 명품과 비슷한 건데 기본적으로는… 그 맛이라는 게… 으음.

 Commented by 히라케 at 2010/05/22 11:17 

9. 저는 거의 소고기를 먹지않지만 국끓이거나 할때만 하나로마트 한우를 사용하는데요..

이상하게 호주산을 쓰면 감칠맛이 덜한 것 같더군요 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6/06 00:11

아, 혹시 양지를 쓰신다면… 기름기 너무 없는 양지는 퍽퍽하기만 할 뿐 맛이 없으니… 저도 국은 한우로도 끓여보기도 해요. 그래도 맛은 좀 알고 싶거든요.

 Commented by 홈요리튜나 at 2010/05/22 15:16 

헉…저도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정보가 너무 유출되는 느낌이라 나중에 후회해요

사고 나면 비싼 가격에 세 배 이상의 불만족이-_-;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6/06 00:12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게 참 쉽지 않은데 말은 저 혼자 하는 느낌이… 아 한우는 우리 문화 유산이라는데 세 배 이상의 불만족을 준다면 정말…T_T

 Commented at 2010/05/22 15:5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6/06 00:12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는데 잘 지내고 계시죠?

 Commented by 풍금소리 at 2010/05/22 16:17 

그냥 마구 노는 것도,마구 쉬는 것도 때론 필요할 것 같아요.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껄껄껄.

월드컵 응원가는 “Schwarz und Weiss”도 신나요.

아디*스 츄리닝도 사서 입었더랬어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6/06 00:13

그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삶이 팍팍한데 예능프로그램도 좀 보고 월드컵에도 열광하고 그래야죠.

 Commented at 2010/05/22 19:2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6/06 00:14

그래도 찾아보고 후회하는 게 안 찾아보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삶이라는 게 후회 덩어린데 그래도 덜 괴롭게 줄일 수 있는 건 줄여봐야죠. 쉽지는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