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롱의 “성자”, 피에르 에르메님 뒷북 영접기

이래저래 아직도 피에르 에르메님을 영접한 소감을 올리지 못했다. 다른 분도 아니고 마카롱의 성자님이신데 영접의 그 북받치는 감동을 진작 졸필로 담아내지 못한 건 전적으로 나의 불찰이라고 할 수 있다. 졸필로 언급하는 것조차 어째 누를 끼치는 듯한 기분인데 거기에다가 이렇게 늦게… 죄송한 줄 알면 더 잘 써야 되는데 나의 글이라는 게 아무리 성자님의 마카롱이라고 할 지라도 몇 개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아 쓰면서도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까놓고 말하자면, 나는 ‘아 이런 것이 피에르 에르메의 마카롱인 것 같구마잉’할 정도로 무엇인가를 잔뜩 사다 먹지 않았다. 기껏해야 마카롱 세 개, 장미향이 두드러지는 이스파한 세 개, 그리고 1000겹 이파리로도 모자라 “2000겹” 이라는 밀푀유(“million leaves”) 하나를 먹어봤을 뿐이다(그래서 총 비용 부가세 포함 33,000원). 솔직히 마카롱 세 개에 만 천원이라면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고, 비싸도 괜찮을지 모르나 과연 그렇게 들여오는 것이 그 정도 가격만큼의 대우를 해 줄 수 있는 것인지도 판가름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나는 만들기라면 모를까, 마카롱을 사먹는데에는 사실 큰 관심이 없는데 그건 이제는 마카롱이 너무나도 많이 퍼졌기 때문이다. 그냥 고르기가 귀찮다고나 할까? 대중화되는 것도 좋고 이런저런 곳에서 다양하게 나오는 것도 좋은데 일단 그 가격이 정말 정당화할만한 수준인지도,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것들이 그만큼 다양한지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많이 먹지도 않았으니 간단하게 느낌을 정리해보자면 세 가지 모두에서 맛의 켜(layer)를 만드는 솜씨가 아주 뛰어났다(아무렴 마카롱계의 피카소라는데… 내가 뭐라고 언급하기도 송구스러운 느낌이다-_-;;; 꿈에 에르메님이 나타나셔서 ‘겨우 삼만원 어치 먹고 내 작품 세계를 논하다니 건방진 놈! 이라고 꾸짖으며 죽을때까지 손으로 머랭 올리는 지옥에 보내시면 어쩌지T_T)). 다크초콜릿-커런트 마카롱을 예로 들자면, 다크초콜릿 자체만으로도 맛과 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 강한 초콜릿의 느낌이 거의 사라질 때쯤 꼬리를 물고 커런트의 향이 다가와서 그 맛의 여운이 작은 마카롱 하나에서 나오는 것치고는 굉장히 오래 갔다. 그리고 그러한 맛과 향의 매개체라고 할 수 있는 식감이 마카롱 그 특유의 약간 씹는 맛이 있지만 바삭한 껍데기와, 그와 대조되는 부드러운 크림에 나눠서 담김으로써 꽤나 다양한 느낌을 선사한다. 아무래도 비싸니까 고급스러운 팜플렛을 끼워주는데  딸기와 발사믹 식초, 레몬과 헤이질넛 프랄린 등의 조합을 보면 그러한 맛의 짝짓기가 (뻔한 이야기겠지만;;;) 철저한 계산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0겹 밀푀유의 경우도, 부스러지는 느낌의 패스트리와 바삭거리는 비스퀴(웨이퍼? 비스퀴 조콩드? 정확하게 명칭이 뭔지 모르겠다…-_-)에 아몬드 향에 단맛까지… 가격까지 생각해 보았을때 먹고 바로 눈물을 주르륵 흘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강한 맛의 조합은 인상적이었다.

‘이모션 이스파한’이었나? 밀푀유는 단맛이 강했다면, 이 디저트는 라즈베리 퓨레에서 나오는 신맛이 굉장히 강했다. 그 맛과 그 특유의 향으로 인해 호불호가 갈리던 장미향, 그리고 바삭한 머랭과자부터 젤라틴을 살짝 섞지 않았나 생각되는 크림, 그리고 라즈베리 퓨레로 이어지는, 아래로 내려갈 수록 조금씩 물렁물렁해지는 식감이 한데 어우러져 ‘아, 이런 식으로 강한 느낌의 디저트를 만드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정말 그저 맛이나 볼 정도로 밖에는 먹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이 에르메님의 디저트구나’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맛과 향, 그리고 식감의 조화를 어떤 식으로 고려하는가에 대한 실마리 정도는 조금 얻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우그게 단맛이든 신맛이든 하니면 어떤 향이든 굉장히 두드러지다 보니, 어떠한 이유에서 그런지는 몰라도 달지 않다 못해 대부분 심심한 케이크나 다른 디저트들이 어떤 생각이나 개념을 바탕으로 나왔는지 더 궁금해졌다. 지나치게 단맛만 두드러져도 균형이 맞지 않겠지만 그 반대로 너무 달지 않아 유제품이 지나치게 느끼하게 다가올 정도인 케이크 역시 디저트라는 음식의 본질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혹시, 그래야 덜 질려서 많이 먹게 될거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맛을 설정하는 것일까? 아닐 것 같은데…

가격이야 뭐 선을 보이는 상황이니까 그렇다고 치더라도(그러나 그 가격이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정도의 과대표장을 위한 것이라면 그리 달갑지는 않다. 포장의 낭비가 너무 심하지 않나?), 그런 가격에 팔면서 손님 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신라호텔 매장측의 준비 및 태도는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진열장 자체가 동선이 안 생기도록 놓여서 물건을 순서대로 고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다가, 계산대에도 사람들에게 줄을 서야 되는 방향 하나 제대로 제시해놓지 않아서 차례를 기다리면서도 계속 고급호텔에 드나들면서도 그만큼 교양은 없는 아줌마 및 할머니 손님에게 여러 번이나 새치기를 당해야만 했다. 우리나라 최고급 호텔들 가운데 하나고 무려 삼성 계열사라면 그런 것쯤은 조금 더 제대로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by bluexmas | 2010/05/11 14:39 | Taste | 트랙백 | 덧글(18)

 Commented by guss at 2010/05/11 14:40 

죽을때까지 손으로 머랭 올리는 지옥!!!

으악!! ㅋㅋ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5/18 03:50

크 행복할지도 모르죠 뭐^^ 근데 어차피 죽은 거라서 또 죽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Commented at 2010/05/11 14:4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5/18 03:51

저도 파리 한 번 가봐야 되겠네요. 라뒤레 마카롱 먹으러… 지난 주에 르쁘띠푸 마카롱 네 개 사왔는데한 개만 먹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들어있어요. 마카롱을 만들게 되면 초코파이만한거 만들어볼려구요^^

 Commented by 올시즌 at 2010/05/11 15:34 

아….아름답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5/18 03:51

네, 아무래도 대가님의 숨결이 어렸으니까요…

 Commented by JuNe at 2010/05/11 16:30 

죽을때까지 손으로 머랭 올리는 지옥이라니 생각만 해도 으덜덜… 에르메님 부디 자비를… 아니 그래도 영원히는 아니고 죽을 때까지만 올리면 되다니 그건 다행이라고 해야할까요;;;

그런 지옥은 생각만 해도 무섭습니다ㅠ_ㅠ;;;; 아니 저는 초기에 핸드믹서도 없이 간땡이가 부어서 믹서기로 어디 해볼까 싶어서(다시 생각해봐도 제가 좀 4차원 세계에서 놉니다;) 머랭내려다가 실패한 달걀들의 원혼에 떠밀려서 가게 될지도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5/18 03:52

근데 벌써 죽었잖아요…. 지옥에 간거면. 믹서로 머랭을 내려고 했다니 으음… 그 실험정신을 높이 사고 싶어요^^

 Commented at 2010/05/11 21:4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5/18 03:52

그렇게 먹어보면 또 맛도 알고 이런 것도 있구나 알게 되고… 좋은 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Commented by 유우롱 at 2010/05/11 22:08 

죽을 때까지 손으로 머랭을 올리는 지옥이라뇨 ㅋㅋㅋㅋ

근데 그 와중에 머랭올리다 한입한입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이건 좋은건가 안좋은건가 순간 헙?! 했어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5/18 03:52

단 계란 흰자만 먹으면 좀 질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네요^^

 Commented by Raye at 2010/05/11 22:34 

요리연구가가 정부훈장까지 받았으면, 대단한거 같은데요..그런데 궁금해서 들어가본 에르메씨의 홈페이지 사진 속 마카롱 색깔이 저 사진보다 더 화려하던데요. 그렇게 화려한 마카롱 색깔은 처음 봤어요. 프랑스에선 원래 디저트를 덜 달게 먹나보던데요.. 예전에 런던 꼬르동블루 다니던 아이가 연습용으로 만들어준 초코케익 먹어봤는데 덜 달았던 기억이 나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5/18 03:53

거기에서는 또 사진을 멋지게 찍었겠죠? 저도 며칠 전에 초코케이크 만들었는데…

 Commented by 봄이와 at 2010/05/12 00:32 

손으로 머랭올리는 지옥..에서 흠칫;;

여러가지 사연으로 결국은 피에르님의 잔치에 참석하지 못했던 슬픈 날이 떠오르는군요 ;ㅅ;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5/18 03:53

크 그 안타까운 사연이라니… 저도 마음이 아픈데요 ㅠㅠ

 Commented by 롸씨 at 2010/05/12 23:23 

프랑스 디자인 주얼리 N2 에서 마카롱 시리즈 주얼리를 선보이고 있더라구요.

어쩜… 마카롱은 먹기보담 눈으로 보기 좋은 거라는 걸 N2는 어찌 알았을꼬….요? 하하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5/18 03:53

아 그렇군요. 먹으면 좀 허무해지죠… 보고만 있으면 나을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