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보람찬 하루
어제 늦게 자서 조금 늦게 일어나기는 했지만, 패닉에 빠지지 않고 내일 마감인 일을 하며 세탁기를 네 번이나 돌려 그동안 밀렸던 빨래를 다 끝냈다. 그리고 저녁에는 재활용 쓰레기의 대부분을 내다 버렸다. 이 글을 쓰며 또 보드카를 쪽쪽 빨면서 며칠 동안 못 쓰던 모 음식점 관련 글과 다른 일 가운데 어떤 걸 완전히 지쳐버릴 때까지 할까 생각하고 있다. 아, 오래된 얼음을 넣었더니 보드카에서 비린내가 난다-_-;;;
(잠시 얼음을 체로 걸러내고 왔다. 으웩)
사진은 오랜만에 빤, 아끼는 셔츠 두 장. 2년 전인가 회사에서 더 이상 타이를 매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제이크루의 셔츠를 거의 20장 정도 사들였다. 쌓이는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푼 수준… 정가가 60불에 가까운 것들을 가격이 떨어지고 떨어져서 15~20불일때까지 기다렸다가 산 것들이다. 왼쪽의 셔츠를 은행원들이 입는 분위기라고 해서 bank stripe라고 한다던가? 어쨌든 가장 좋아하는 셔츠다. 타이를 맬 때에는 얼굴형 때문에 그런지 옆으로 퍼진 스프레드 컬러를 좋아하지만, 매지 않는다면 언제나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 버튼 다운을 좋아한다. 옛날옛적에 입던 습관이 있어서 그런지 세로 줄무늬도 굵은 건 입지 않게 된다. 저런 셔츠들 대부분이 양놈들 사이즈라서 다 맞아도 목 단추는 채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 안 다니면 일을 하는 시간과 안 하는 시간의 구분이 모호해져서 언제나 일을 하거나 언제나 일을 안 하게 되는데, 나는 솔직히 그것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 많은 회사들이 야근을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고, 낮에는 수업듣고 밤에는 과제하는, 늙은 학생 노릇을 오랫동안 해서 그런지 오히려 밤에 손놓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더 이상하다. 노는 것과 일하는 것의 구분이, 나에게는 좀 무의미하다. 어떤 순간에는 어디엔가 가서 뭘 먹는 것도 나에게는 일의 영역에 속하니까. 사람을 만나는 것도 사실 대부분 그렇다. 한편으로 즐기기는 하지만, 정말 놀기 위해서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나에게는 별로 없다. 친한 친구 둘도 안 만난지 오래되었다. 한 녀석은 1년 동안 못 만났는데, 얼마전 아주 간만에 연락을 해서 서로 “만나야지~”라고 했으나 바쁜지 그 뒤로 소식이 없다. 바빠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처자식도 없고 비교적 일정에 융통성이 있는 나는 그냥 잠자코 있는다. 때가 되면 만나게 되겠지 뭐. 그러나 모든 것에 때가 있는 것도 아니기는 하다…
…요즘은 계속 나는 왜 이럴까, 에 대해서 생각한다. 답을 알기는 너무나도 잘 아는데 그걸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아무도 나에게 반올림해서 10년 가까이 살았던 동네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는다. 그 땅이 생각나는지, 거기에서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생각나지 않는지… 물어보지 않아서 나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야기하지 않게 되어서 생각하지도 않게 된다. 그건 사실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감상에 젖지 않을테니까. 그러나 내가 말하지 않는다고 느끼지 않는 건 아니잖아.
얼마 전에, 회사에서 친하게 지냈던 아줌마 직원한테 메일을 받았다. 남편이 다녔던 학교의 명예교수였는데 두 학긴가 스튜디오에 크리틱을 들어와서 남편도 알고 부인도 알고 뭐 그런 사이였다(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예전에 쓴 적이 있는 것 같다-). 같이 잘려서 동병상련 비슷한 감정도 있는데, 근 1년 동안 연락이 없다가 정말 딱 한 줄이었나, ‘Is this still your address? Let me know and I will write more. It would be great to hear how you are. I miss you.’ 어쩌구 하는, 아주 짧은 메일을 받았다. 그걸 받고 내가 또 반가움에 살짝 북받쳐 올라 바로 답메일을 쓰지 않았겠나… 길게 쓰려다가 참고 참아서, 지극히 일상적인 답장인 것처럼(nonchalant라면 맞을라나?)… 나는 그 땅을 떠난지 1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습관처럼 남아있는 그 나라의 과장법을 써서 ‘I am so happy to hear from you!’라고 우리나라에서는 잘 쓰지도 않는 느낌표까지 섞어서 답장을 보냈으나 그 뒤로 그녀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
참고로 이메일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는 이 땅으로 돌아온 뒤 거의 대부분의 쓸데없는 사람들의 메일주소를 스팸처리했다.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은데 궁금한척 하고 싶지도 않고, 아침에 일어나서 부시럭부시럭 메일을 확인했는데 ‘아 이런저런 시험교재를 구하는데, 니들 가지고 있어?’와 같은 내용의, 그때 회사에서 같이 잘린 사람들로부터 온 메일을 읽는 게 정말 너무너무나도 싫었다. 이제 그 사람들하고 나 사이에는 연결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 사실은 그래서 기뻤지,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으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요즘 나는, 기본적으로 얽혀있어야만 하는 것들에도 참을성을 발휘하지 못해서 내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마셨어야죠. 나는 뭔가 얻고 싶어서 그런 행동을 취했던 것도 아니었다니까요. 보고 있으면 괴로와요, 보고 있으면 괴롭다니까…
아아, 내 컴퓨터인데도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노래가 나온다. 나는 요즘 모르는 노래가 너무 고프다. 아까 인기가요프로그램에서 어떤 여가수를 봤는데, 어라? 이런 노래가 좋게 들리네, 라는 생각이 들어 놀라서 검색을 해봤더니 예전과는 좀 많이 다른 얼굴이더라-_-;;; 그래서 예쁘다고 생각하는 이면에 무엇인가 걸리는 느낌이 있었던 것이겠지. 맛있다고 생각해서 꿀떡꿀떡 넘긴 아이스크림의 뒷맛이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미지근한 보드카도 썩 나쁘지는 않다. 두 병이 되었으니 한 병은 냉동실에 넣어놓아야 되겠네…레몬이 떨어져서 오늘밤의 보드카는 75점, 내일 점심은 삼선 간짜장. 트위터 해도 블로그는 멀쩡하게 굴릴 자신이 있다니까. 내가 삼고 있는 기준은 고작 거기까지 미쳤다고 기뻐하는 뭐 그런 게 아니거든.
# by bluexmas | 2010/05/10 00:53 | Life | 트랙백 | 덧글(16)
진짜 동감해요. 한국어로 쓰면 오글거리고 낯뜨거울 대사들이 자연스럽게 말해지는 그거;!
비린내 나는 보드카는..
히레 보드카가 되나요? (도망)
비공개 덧글입니다.
맨날 모이면 소개팅남과 맞선남 흉보는 그런 친구들이라도, 있을때가 좋은거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