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진상으로 만든 음식점(1)-오산의 일식집
한달 쯤 전이었나? 경기도 모처에서 지독한 파스타를 먹었다. 나는 이 파스타를 먹고 정말 오랜만에 극심한 분노에 시달려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그건 그 음식점이 단지 음식을 못 만들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만들면 못 만든 음식이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못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속아 넘어가겠지-라는 생각을 뒤에 깔아놓고서(이 주제에 대해서는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파스타집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 다시 자세히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사실은 마감이 닥쳐서 이런 글 쓸 시간이 없는데;;;;).
밖에서 음식을 먹다 보면 맛이 없는 걸 먹을 수도 없다. 어쩌면 거의 대부분 맛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음식은 솔직하게 맛이 없고, 또 어떤 음식은 속여가면서 맛이 없다. 차라리 솔직하게 맛없는 음식은 괜찮다. 돈이 좀 아까워도 웃어 넘어가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성격이 개같아서 그런지 나는, 뻔히 알면서 그렇게밖에 못 만드는 음식에 분노한다. 그런 음식점들에 대해서도 글을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방금 어버이날을 맞아 가족이 함께 모여 먹은 저녁이 개판이어서 아주 오랜만에 제대로 된 보름달을 맞은 늑대인간처럼 진상이 되어 식당 주인에게 독설을 뿜어대고서는 이런 글도 써야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단, 맛있는 음식 맛있다고 쓰면서도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혹시라도 가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 음식점에 대해 나쁘게 써서 사람들이 가지 않게 되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에 음식점의 이름 따위는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다. 뭐 오산에 누가 살겠냐만…
역시나 밖에서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가 어려운 이 동네 오산에서 그나마 괜찮게 음식을 내오는 일식집이 하나 있었다. 예전에 친구와 저녁을 먹은 적이 있는데 4만원짜리가 질이며 양도 괜찮았고, 부모님도 예전에 여러번 맛있게 드셨다고 해서, 무려 일주일 전에 저녁 예약을 해 두었다. 뭐 얼마나 줘야 되는지 모르지만 종업원에게 돈도 조금 쥐어주고 잘 해달라고 그랬는데, 어머니를 위해 가져다 달라는 뜨거운 차부터 늦기 시작한다. 으음…곧 음식이 깔리는데, 예전에 먹었던 구성이 아니다. 곰곰히 뜯어보니 예전에 내왔던 회라든가 이런 것들을 줄이고, 대신 자질구레하고 비싸지 않은 생선 구이며 조림과 같은 것으로 잔머리를 써서 바꿔, 신경쓰지 않고 먹는 사람들이라면 그냥 먹는 정도로 만족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를테면 생선회도 두 접시로 나눠서 기름기 적은 것, 많은 것이 따로 나왔는데 무엇인지도 잘 모를 흰살-물론 난 어쨌거나 잘 모르니까 그렇다쳐도-이 한접시 나오고, 가운데는 얼음이 씹힐까 말까한 싸구려 느낌의 싼 참치와 안 먹어도 그만인 전복이 한 조각씩 나오고 말았다. 물론 어버이날이니까 밀려드는 손님이 끊기는 서비스는 그냥 기본이라 말할 필요도 없었다. 보니까 부부가 음식 만들고 계산받고, 거기에 여자 한 명이 전체를 맡는, 그래서 사람이 많으면 일손이 딸릴 수 밖에 없는 그런 구조였다. 뭐 거기까지는 내가 신경 쓸 바가 아니지만, 적어도 예전에 먹었던 정도라면 짜증날 일은 없었을텐데 너무 잔머리를 굴려 코스를 바꿔 원가를 줄이려는 티가 났다. 그러다가 거의 끝에 초밥이 나왔는데, 기억하기로 그때도 초밥이 변변치 않았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도 아니고 먹는데 와사비를 너무 많이 써서 가족들 모두 코에서 불이…T_T 아무래도 얘기를 해야 되겠다 싶어 사람을 불러 접시를 내보냈는데, 마지막으로 알밥이 나올 때까지 안 나오다가 접시에 남았던 네쪽이 그대로 돌아왔다. 웬만하면 귀찮아서라도 아무말 하지 않으려 했는데, 네 명 먹으라고 김치 딸랑 한 토막 나온데에 어머니가 쌓였던 불만을 토로하자 여자 종업원은 ‘아니 나는 음식 만드는 사람도 아닌데’라는 드립을 치기 시작했고, 디저트로 얼마나 대단한 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안 먹어도 배가 불러져서 일어나 계산을 하려는데 정말 정신이 없었는지 한 사람분을 적게 계산해서는 결재해달라고 내미는 게 아닌가… 사실 이 경기도 시골구석에서 4만원이라면 물가-아니면 부동산 임대료-를 생각해 볼때 서울에서 5만원 이상은 하는 것이 틀림없고, 차를 30분만 몰고 수원으로 가도 5만원이면 양을 떠나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애초에 그럴 계획이었던 것을 부모님 모시고 멀리 가기 싫어서 계획을 바꾸었던 것인데 그 절반 값도 못하는 수준의 음식에 계산을 잘못했다니 얼씨구나 좋다하고 부르는 대로 긁어주고 나왔어야 되겠지만 그거 모른 척 아끼느니 제대로 다 내고 싫은소리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계산 잘못한 걸 수정하고 여자주인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곧 건너편에서 남편이라는 작자가 ‘음식에 불만이 있다면 만든 사람이 나니까 나한테 얘기하라’고 전투의 메시지를 건넸는데, 부모님이 말려서 일단 가게를 나왔다. 그러나 돈까지 다 제대로 내놓고 하고 개판인 음식을 먹었는데 하고 싶은 말도 못 하면 소화도 안 될 것 같아서, 일단 부모님을 보내놓고 다시 가게로 돌아와 이딴 식으로 잔머리 굴려서 코스 바꿔놓고 아닌 척 하지 말라는 식의 이야기를 건네주었다. 음식을 만드는 남자는, 대부분의 음식 못 만드는 사람들이 간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지적했을때 치는 예의 ‘그게 내 입맛이다’라는 드립 아니면 실드를 쳤지만 내가 기억하기로 그런 초밥은 아무리 싸구려라도 먹어본 적도 없고, 예전에 먹었던 것도 그 정도로 맵지 않았기 때문에 웃기는 소리 작작하라고 맞받아쳐주었다. 거기에 남자는 ‘이렇게 와서 얘기하면 영업방해’라고 나에게 위협성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나는 ‘그러려면 경찰을 부르시지’라고 대꾸해주고 그따위로 장사해서 얼마나 오래가는지 보자고, 부드러운 격려의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보내고 가게를 나섰다.
뭐 어쨌거나 내 돈 그만큼 썼으니 이건 어떻게 보아도 내가 진 싸움이 아닐까 싶다…T_T 17만원 아깝다T_T 그냥 계산 잘못했을 때 못 이기는 척 긁어주고 나올 걸 그랬나… 그러나 돈 안 내려고, 또는 뭔가 더 얻어 내려는 것처럼 보이려고 진상 떨고 싶지는 않다. 대신 내 피같은 돈을 먹었는데 그따위 음식을 내놓고 속이려 들었다면, 적어도 악담 몇 마디 정도 들을 각오는 하셨어야지. 게다가 이건 오늘 저녁 겪었던 개같은 음식 및 서비스의 그저 일부에 불과하다. 그거 다 쓰기도 귀찮다.
# by bluexmas | 2010/05/08 23:01 | Taste | 트랙백 | 덧글(16)
처음 간 것도 아니고, 한번 방문해 본 음식점의 메뉴구성이 달라졌다니 정말 황당했겠군요. 저희 가족은 행사 있을때 어지간하면 근방 뷔페에 갑니다;; 큰 실패는 없어서요..
의미있는 자리가 망쳐져서 화나셨겠어요! 어우
그 뒤에라도 즐거운 자리되셨기를 🙂
그런 저를 질질 끌고 나오는 남편-_-;;;; 그냥 다시 안 오면 되지 뭐하러 싫은 소리 하냐고..
그 말도 맞긴 한데 왠지 억울하고 열받고 고쳐주고싶고.
참고로 저희 동네에서는 톰*라 라는 파스타 집이 더럽게 맛없고 더럽게 불친절 한데 손님 미어 터진답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