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낮술(17)-봄나물 안주 두 가지와 갈비구이
주말에 낮술을 제대로 안 마신지 두 달쯤 되었나보다. 아주 오랜만에 올리는 낮술시리즈. 이번에는 토요일이 아니라 일요일에 마셨지만, 그래도 주말의 낮술이니 무효는 아닐 듯?
지난 금요일에 기차 시간을 때우려고 남대문 시장을 쏘다니다가 충동적으로 엄나무순과 돌미나리, 두 종류를 샀다. 미나리의 맛과 향이야 원래 알고 있었던 것이고, 엄나무순은 두릅과 비슷하다고 해서 대강 씁쓸한 맛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씁쓸한 건 일단 지방, 그러니까 고기랑 짝을 지워주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서울역 롯데마트에서 쇠고기를 좀 샀는데 미나리는 감이 잘 안 잡혔다. 처음에 생각했던 건 조개관자였는데 질이 썩 좋아보이지 않아 일단 제꼈다. 그리고 다음날 오산의 롯데마트에 가봤으나 예상했던 것처럼 관자는 없었는데 고둥과 우렁을 찾아서, 골뱅이 무침 비슷한 것이 생각나 한 팩씩 샀다. 둘다 북한산이었는데 고둥은 비싸고 우렁은 너무 싸서,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지 맛을 비교해보고 싶었다. 뜨거운 물에 데쳤는데 가격으로 예상했던 것처럼 우렁이 더 질긴 편이었다. 그러나 맛 역시 우렁이 조금 더 뚜렷한 느낌… 고둥은 질감도 부드럽지만 맛도 그런 느낌이었다. 가장자리가 없는 맛?
보통 이런 종류의 무침이라면 고추장 양념을 퍼부어서 떡칠하는 게 일반적인 방법론인데, 매운 것도 싫고 그렇게 고추장을 퍼부어봐야 재료의 맛이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레몬즙을 많이 넣고, 고추장은 조금만 섞어 양념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단맛을 좀 두드러지게 만들까 생각해서 설탕을 넣었으나 그냥 사과와 당근을 넉넉히 채쳐서 넣는 것으로 상큼한 느낌을 살리려고 했다. 딱딱한 우렁이 오히려 고추장 양념, 그리고 미나리와 더 잘 어울렸다.
바다를 건너온 빵인데, 자세한 소개는 다음 글에서.
같이 마신 술은 선물받았던 Wolfbrass Cuvee Brut. 이마트에서 리즐링과 소비뇽 블랑이 섞인 싸구려를 한 병 사다 놓았는데 이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달지 않고 거품도 있고… 고추장을 듬뿍 써서 맵게 만들었다면 더 단 걸 마셨어야 될지도 모르겠는데 이거면 충분했다.
엄나무순은 쇠고기 안창살과 함께 센 불에 볶았는데, 양파 넣는 걸 까먹고 너무 나중에 넣고 더 볶아서 숨이 좀 많이 죽었다. 균형을 맞추려고 레몬즙을 조금 넣었다. 먹어보니 나물의 숨이 너무 많이 죽은데다가, 고기 역시 볶기 보다는 따로 구워서 겉의 질감을 살려주는 게 나을 뻔했다.
같이 마신 술은 신촌 현대백화점 매장에서 산 메독. 얼마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4만원대였는데 절반 정도일때 샀던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그렇게 입자가 굵은 느낌은 아니었다. 음식 없이도 부담없이 마실 수 있을만한 정도라고나 할까?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갈비를 구워 먹었다. 미국에서 미국 고기를 이미 너무 많이 먹어 어차피 광우병에 걸렸다면 벌써 걸렸을 것 같아서 미국산을 시험 삼아 사 봤다. 뭐 맛은 그 맛…
# by bluexmas | 2010/05/05 08:59 | Taste | 트랙백 | 덧글(19)
고기먹고싶어요ㅠㅠ;
맛있겠군요…츄릅
어쩐지 채소는 정말 살짝 데쳐야 된다고 생각해버려서..쓴맛엔 역시 신맛으로 균형을…
고추장 범벅인 나물 무침은 나물맛이 아니라 고추장맛으로 먹는 것 같아서 저는 미나리를 돌돌 말아서 쌈장에 찍어 먹는 답니다. buexmas님처럼 요리 재주도 없고 그저 그저 生으로 먹습니다…. 아아… 이래서 과연 시집은 가겠냐는 걱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