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물이 해낼 수 있을까
사진도 찍어서 올리고 싶지만 이 새벽에 무슨 봄나물 사진이냐… 사진을 찍으려면 햇살을 받게 해 놓아야지 안 그러면 봄나물에게 죄 짓는 격일듯.
강남역에서 시작되어 고속터미널(신세계)-가로수길-압구정-낙원상가-인사동-삼청동-안국동을 찍는 동선의 마지막은 남대문이었다. 안 차던 시계들 전지나 갈아서 찰까 해서… 그동안 차던 시계를 지난 번에 병원에서 한 신체검사를 위해 풀어 놓았다가 잃어버렸다. 그 시계는 몇 번이고 잃어버릴 뻔 한 건데, 그냥 그대로 사라져도 되고 또 어느 한 편으로는 사라져줬으면 바랬던 거라서 별로 아쉽지 않았다. 대신 다른 시계들이 몇 개 있어서 그걸 차고 다니기 위해 남대문에 들렀던 것이다. 기차시간에 맞추려고 아둥바둥했는데 막상 아저씨가 시계를 손보는 사이에 모바일 프로그램으로 표를 사려니 막 탈 수 있는 건 표가 없어서, 그냥 40분 뒤에 출발하는 다음 차의 표를 사고 조금 느긋하게 남대문 시장에서 봄나물을 샀다. 봄이 가기 전에 두릅을 사다가 쇠고기랑 샐러드를 만들어 먹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있기는 했는데, 정작 그 자리에서 뭔가를 샀던 이유는 버스를 남대문 시장 앞에서 내렸을 때 지하도 입구에서 할머니가 파는 죽순이었다. 죽순도 먹고 싶었던터라 사실 바로 샀어야 되는데 쓸데없이 머뭇거리느라 그냥 지나쳤고, 시계를 다 고치고 나서 다시 돌아가려니 너무 멀어서 포기하고 그냥 남대문 시장에서 두릅을 닮은 엄나무순과 그 옆에 있는 돌미나리를 샀다. 두릅과 비슷하다면 쓴맛이 돌텐데, 그럼 기름기가 있는 고기와도 잘 어울릴 거라는 생각에 서울역까지 걸어와 롯데마트에서 국산 아닌 걸로만 쇠고기를 샀다. 기름기가 많은 차돌박이가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찾지 못했다. 관자를 봤는데 역시 머뭇거리다 안 샀더니 집에 와서 계속 생각이 났다. 안 먹은지도 오래 되었는데…
몸이 그냥 그래서 마음도 그런 건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굉장히 저조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저조함이 나의 에너지 아니었던가. 배부르고 편하면 맺히지 않고, 맺히지 않으면 일 안 한다. 아니, 못한다. 그러니까 사실은 계속 저조해야만 한다. 그래서 진도가 안 나가던 일들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래도 우울한 몸과 마음은 좀 달래야만 할 것 같다. 봄나물이 해낼 수 있을까. 나는 도움이 필요한데.
# by bluexmas | 2010/05/01 01:57 | Life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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