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길]엘본 더 테이블-스테이크와 나머지 것들
어느 블로그 세계에서는 또 한바탕 난리가 난 것 같은 엘본 더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었다. 워낙 스테이크로 유명한 주방장이 하는 음식점(우연히 보게된 프로그램에서 그가 스테이크를 굽는 걸 보기도 했다)이라 처음에는 스테이크 숙성에 관한 글을 써서 엮을 생각을 했는데, 가고 싶은 다른 스테이크 집이 생긴 것도 있고 또 코스에서 한토막 나온 스테이크를 가지고 그런 이야기를 엮는 것도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 계획은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원래 코스를 먹으면 순서대로 나열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에는 그 대신 코스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고 사실은 이야기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스테이크 먼저, 그리고 나머지 것들을 나중에 늘어놓겠다.
스테이크
점심 코스 가운데에는 가장 비싼, 5만원짜리에서 고를 수 있는 고기는 립아이, 필레미뇽, 그리고 양고기였다. 주문을 받으시는 분께 물어보니 양은 좀 그렇고, 립아이와 필레미뇽 가운데에서는 립아이가 더 낫다고 했다. 그래서 입가심을 위한 셔벳을 먹고 기다리고 있는데 별로 기대도 하지 않은 음식점의 최 아무개 주방장이 불현듯 나타나 모든 사람의 이 음식점 글에서 볼 수 있는 예의 그 다섯 가지 소금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접시에 덜어주고 갔다. 녹차, 송로버섯, 페퍼민트…뭐 그렇다. 일부러 물어봤는데, 바탕이 되는 소금은 전라도 어느 지방(들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에서 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소금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듣고, 또 직접 앞에 놓고 했던 생각은 단 한 가지였다. 이렇게 소금에 섞은 다른 요소들이 정말 계획한 사람이 원하는 만큼의 효과를 스테이크 먹는데 불러올까? 스테이크를 기다리는 동안 소금을 찍어 맛을 보았는데, 스테이크를 한 조각 먹을때 필요한 만큼의 소금으로는 그게 녹차든 송로버섯이든 무엇이든 그 맛 또는 향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과연 이런 요소들이 어떤 향을 가지고 있나 궁금해서,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소금을 통째 들어 냄새를 맡아 보았는데, 그만큼이 모여있는 소금에서는 더한 재료의 향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한 움큼씩 모여 있다면 더한 재료의 향이 나겠지만, 손가락에 침을 묻혀 찍었을때 모이는 만큼의 양으로는 향을 느끼기가 힘들터… 게다가 입가심으로 나온 셔베트가 향이 아주 진한 로즈마리로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사실 미약한 향이나마 느낄 수 없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게 소금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스테이크가 나왔는데 사실 비싼 숙성 스테이크를 먹어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이게 정말 얼마나 숙성을 시킨 스테이크며 그 맛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은 전혀 없었지만, 적어도 익힌 정도(미디엄)으로 보아서는 제대로 잘 익힌 스테이크라는 느낌은 확실했다. 사실 외식해서 먹는 스테이크 대한 미련이 별로 없는터라 기대도 높지 않은데 정확하게 말하기는 조금 어려워도 숯불을 채워넣는 걸 보았던터라 숯불 그릴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그릴에서 구워낸 스테이크는 그 전에 먹었던 다른 음식들과 확연히 구별되었다. 곁들이로 나온 야채들도 딱 적당한 수준으로 익어서 맛있었다(특히 짭짤하게 간이 된 마늘). 물론 소스 따위는 필요 없었고 그게 녹차든 뭐든 소금만 있으면 맛있는 스테이크였다. 다만, 립아이라고 들었지만 그보다는 뉴욕스트립처럼 지방이 덜한 부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만 더 두꺼웠으면 좋았을 것 같다. 옆으로 넓지 않아도 좋으니 좀 두꺼운 고기의 겉면을 여유있게 지져서,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에는 붉은 색이 남아있는 스테이크를 먹고 싶다.
나머지 것들-음식
사실 3만8천원짜리 코스도 있었는데 굳이 5만원짜리를 선택한 이유는, 엘본의 주방장이 젤리나 거품과 같은 것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쓰지 않는 것들을 쓰는 걸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그런 걸 맛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디저트로 푸와그라 아이스크림과 인절미처럼 콩가루를 바른 마쉬멜로우가 있다는 사실 역시 한 몫 거들었다.
먼저 빵이 나왔는데, 미안하지만 이 빵은 음식 전체를 통틀어 가장 떨어진다는 느낌이었다. 왼쪽은 쌀을 넣었다는 “더치 브레드”와 치즈를 넣은 오징어 먹물빵이 나왔는데 일단 왜 쌀을 넣은 더치브레드여야 하고, 왜 오징어 먹물빵이어야 하는지 그걸 이해할 수가 없었다. 코스 전체를 먹는데 자리를 함께 한다고 가정한다면, 음식점의 빵은 그 코스 전체의 구성 음식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공통 분모를 아우를 수 있는 정도의 성질을 가지고 있거나 완전히 백지여야만 하는데, 이 빵들은 뭐랄까 “응 나는 더치브레드와 오징어 먹물빵을 만들어”라는 느낌으로 그냥 코스나 음식에 대한 생각이 없이 만든 빵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주방장의 다른 음식점인 ‘버거 프로젝트’에 가도 오징어 먹물빵에 버거가 나오는데, 정말 이 오징어 먹물이라는 것이 색깔 외에 음식의 맛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아니면 단지 색깔을 위해서 쓰는 것인지 나는 그걸 알고 싶었다. 이렇게 빵 자체의 컨셉트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맛을 보았는데, 음식점에서 만들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기억하기로 내가 갔던 곳들 가운데 직접 빵을 굽는 곳이 에오와 아마노 둘 뿐이었던 것 같다. 에오도 괜찮았고, 아마노는 뭐 훌륭한 수준이었고…), 음식보다도 질이 떨어지는 수준의 빵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빵을 먹었을 때 입에 남는 그 지방의 뒷맛이 말해주고 있었다. 게다가 사진에서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오징어 먹물빵에 든 치즈가 녹아나온 걸 보니 진짜 모짜렐라와는 거리가 먼 이마트형 모짜렐라던데, 안 넣어도 될 치즈를 왜 굳이 넣어서 빵의 질을 한층 더 떨어뜨리는 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타다키로 익힌 ‘와규’와 간장 에스퓨마의 샐러드는 얇게 저민 타다키 쇠고기 몇 조각과 상추만으로 충분히 괜찮았을 음식에 ‘에스푸마’를 얹어 순식간에 어디인지 모를 곳으로 가버린 전채였다. 그 이름이 낯설어 다시 물어보았던 ‘에스푸마’는 인터넷을 뒤져보니 무려 엘 불리의 페란 아드리아 명인 님께서 개발하신 기술로 한천이나 소이 레시틴 같은 겔화, 또는 안정화제를 액체에 섞은 뒤 산화질소 카트리지 같은 걸 끼워 쓰는 휘핑 크림 제조기에 넣어 쏜 것이라고. 그럼 이게 유크림은 아닐텐데, 일반적으로 불고기 양념이라고 할 수 있는 간장이나 생강 기본의 양념이 어떤 수단을 거쳐 이런 식감으로 탈바꿈하니 섬세한 쇠고기와 상추를 압도한다는 느낌이 너무 강했다. ‘에스퓨마’라는 걸 먹는 경험은 없어지겠지만, 이런 종류의 재료라면 그냥 간장과 식초를 바탕으로 한 간단한 드레싱 정도면 음식의 맛이 한결 더 살아나지 않았을까? 게다가 이런 식의 질감에 간장의 맛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건 하나의 완결된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라기 보다, 그냥 이런 걸 할 수 있다고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닐까 싶었다(버거 프로젝트의 사진에서도 저 에스푸마가 곁들이로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온 블루치즈 드레싱의 카펠리니(앤젤헤어?)는 결국 콩국수를 연상시키는 음식이었는데, 그 음식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블루치즈 드레싱이 개인의 취향에 맞고 안 맞고를 떠나 “음 이만하면 잘 만든 음식이네”라는 느낌을 주겠지만 코스 전체를 보았을 때에는 그 온도며 맛, 그리고 식감마저 조화로운 요소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 뒤에도 찬 셔베트가 입가심으로 나오는 상황이다 보니, 이걸 낸 의도가 궁금해졌다.
바로 그 셔베트(혹은 소르베?). 달고 시고 향기롭고… 괜찮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음에 나올 소금들을 생각해 보았을때 굳이 로즈마리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레몬으로만 만들었어도 훌륭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소르베가 아니던가. 젤리면 또 어땠을까?
마지막으로 후식. 푸와그라 아이스크림에 포트와인 소스. 그리고 인절미처럼 콩가루를 묻힌 마쉬멜로우. ‘푸와그라로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대’ 라는 것 자체로 화제가 되는 세상이 이제는 아니다 보니 호기심에서 시켜보기는 했지만 그 자체로 사람을 감탄시키는 요소는 없었다. 그냥 또 하나의 아이스크림이라고 느낄 정도? 푸와그라든 그냥 미나리든 뭐든, 어떤 재료를 썼는가에 상관없이 정말 맛있는 아이크스림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그에 반해 약간 신맛이 감도는 마쉬멜로우는 그 절묘한 질감이 이런 것을 잘 다루는 사람의 손길이 스쳐지나갔음을 느끼게 해 줄 정도로 훌륭했다. 폭신폭신한 식감이 그냥 물엿과 설탕만으로 만든 것 같지는 않고, 다른 “분자요리”에 들어가는 안정제 같은 것을 쓴 듯 싶었다. 두 가지를 놓고 보았을때, 전체적인 조화에 대한 고려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머지의 나머지 것들-음식 외의 것들
검정색 위주의 공간은 딱히 나쁜 느낌은 아니었고 셰프 테이블이라고 바에 앉아서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것은 즐겁기는 하지만, 그 긴 바의 딱 가운데에 혼자 앉아서 그걸 보고 있고 등 뒤로 손님들이 앉아 있다면 어째 느낌이 좀 불안해지기는 한다. 조리사들의 옷이나 까만색 위주의 접시 등등은 세련된 느낌이었으나 사실 개인적으로 까만색 접시는 식욕을 그리 돋우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게다가 무광이었다). 자리에 놓인 세련되었으나 약한 느낌의 나이프와 포크를 보고 디자인은 마음에 드나 제 기능을 할가 좀 의심을 했는데 썩 나쁜 편은 아니었다. 스테이크가 미디엄 이상이라면 써는데 힘이 잘 안 들어갈 수도 있을 듯.
결론
엘본 더 테이블에서 음식을 먹고 나면 정식당에서 그랬던 것과 조금은 비슷한 물음을 품을 수 밖에 없다. 무엇을 추구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그게 정말 음식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이런 것을 할 수 있다’라고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어진다. 에스푸마도 좋고 다섯 가지 소금도 좋고, 블루치즈 드레싱도 오징어 먹물을 빵에 넣는 것도 다 좋은데, 그게 단지 그렇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 음식을 먹는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나는 그걸 이해하기 조금 힘들었다. 게다가 스테이크와 다른 음식들 사이에는 모순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소스를 하나도 곁들이지 않고(물론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경향) 소금과 야채만 나와, 결과적으로는 단순함과 재료의 맛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느낄 수 있는 스테이크와 굳이 그럴 필요 없는 드레싱인 에스푸마를 곁들인 샐러드나 결과적으로는 콩국수의 치즈 버전인 블루치즈 드레싱의 카펠리니, 아니면 푸와그라를 넣었다고 이름으로는 말해도 맛으로는 말하지 않는 아이스크림과 같이 와 같이 필요 이상으로 복잡한 음식은 대체 어느 접점에서 만나는 걸까? 경험해보지 못한 스타일도, 쉽게 할 수 없는 테크닉도 모두모두 중요한 음식의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하나도 응축되어 음식이 되고, 또 그 음식을 먹는 경험이 되었을 때 중요한 건 하나의 스타일이나 테크닉이라기 보다는 뭉뚱그려진 경험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나는 먹어보지 못했지만 그 에스푸마를 발명하신 페란 아드리아 “선생” 이나 기타 다른 사람들이 선보이는 최신 경향의 음식이 만약 인정을 받는다면 그건 그 스타일이나 테크닉 자체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런 것들이 요소가 되어 선사하는 경험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이 엘본 더 테이블의 음식이 그러한 점까지 염두에 두고 짜였는지, 나는 그게 좀 궁금했다. 스테이크만을 놓고 본다면, 그리고 다른 음식들 역시도 조리의 기본기는 갖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한 점에서 조금 더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대로라면 스타일이나 테크닉이 낯설거나 뛰어나지 않아도 기본은 충분히 하는, 그란 구스토와 같은 집에서 파스타 한 접시를 먹는 편이 더 나은 경험이라는 생각을 가셔낼 수가 없다. 미식의 세계는 복잡한 요소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그래야 될 필요도 당연히 없다.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1. 다른 음식들의 수준에 비해 빵은 정말 수준 이하였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그건 다른 음식들이 어느 정도는 되었기 때문에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2. 그 셰프 테이블에 앉아 있다가 쓰는 크림을 보았는데 #일의 “휘핑크림” 이었다. 덴마크와 서울우유의 생크림을 빼놓고 저런 이름으로 나오는 크림들에는 분명히 무엇인가가 섞인 것으로 알고 있다. 크림이 들어가는 디저트도 없는데, 꼭 저런 크림을 5만원짜리 음식에 쓸 필요가 있는 걸까? 빵보다도 저런 크림을 쓴다는 사실에 더 실망스러웠다.
3. 커피는… 내가 커피를 시킨 것과 앉은 자리 바로 앞에 있는 냉장고에서 누군가 커피 봉다리를 꺼낸 것 사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궁금했다.
4. 언젠가도 했던 이야기인데, 나는 주방장이 식당에 없는 것에 반감이 없다. 그리고 매체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음식만 잘 나오면 된다. 그렇지만?
5. 네이버, 파워블로거
# by bluexmas | 2010/04/30 09:04 | Taste | 트랙백 | 덧글(22)
제 친구중에 그런 애가 있는데,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앨범을 통째로 들어야 제대로 된 하나를 들은 거 같다고 그러더라구요 곡간의 유기성이 있다나?
헙..마무리를 못하겠다. 그냥 그렇다구요……..ㅠㅠ
버거 쪽에 한정해보면 삼계탕맛 버거, 취나물 버거 같은건 장점도 있긴 합니다만..
거기서 먹은 스떼끼 벤또와 차이가 역시 많이 나는군요..^^;;
과거 테이스티나 지금 엘본이나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최 셰프님은 재미있는 걸 지르는 분인데, 분명 어떤 건 실패도 합니다. 실패를 감안하면서도 먹을 사람이 가야 할 집인데, 어떤 사람은 무조건 다 맛있다고 하죠. 어쨋든 전 블루마스님 같은 리뷰가 좋은 리뷰이고, 식당 발전과 다른 손님들에게 더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그리고 사실 무슨 글을 써도, 매체에 나오지 않는 한 셰프들이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현실이죠.
어쨌든 이 레스토랑 저는 한번 가보고 싶어졌어요. 의도가 궁금해지는게 많은 식당 재미있어 보여요.
1 Response
[…] 한국 음식 예능의 수준은 참혹하다. 스테이크에 맛 차이가 날리 없는 녹차 소금, 파래 소금 같은 걸 내놓는 셰프가 심사위원인 판국에 뭘 기대하겠는가. 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