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 한 밤의 케이크 폭식 총정리(2)
1편을 올릴 때에는 2편도 금방 올리리라 마음 먹었었는데, 너무 늦어졌다. 그러니 입닥치고 빨리 달려보자.
오사카에서의 마지막 밤, 기후현으로 여행을 갔다 오다가 다시 고베에 들러 저녁을 먹고, 또 한 번 다이마루 백화점에 들러 케이크를 한 보따리 사가지고 왔다. 이날은 마카롱을 케이크 폭식의 전채처럼 먹었다. 마카롱을 파는 가게는 딱 한 군데 밖에 없어서 오히려 좀 이상한 느낌이었다. 케이크 가게가 그렇게 많다면 마카롱도 여기저기에서 팔아야 할 것 같은데… <Glamourdise>라는, 어떻게 지었는지 알 수 없는 이름을 가진 이 가게 역시 외국인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는지 누군가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적어도 열 다섯 종류는 되었던 것 같은 마카롱들 가운데 아즈키(팥), 피스타치오, 그리고 미소를 택했다.
미소는 호기심에 집어든 것인데 짠맛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달고 짠맛이 한꺼번에 자리잡고 있는 디저트를 좋아하기도 하고), 미소 특유의 그 찐득거림이 크림에 깊이 배어있어 마카롱이라면 덕목처럼 지녀야할 산뜻함이나 폭신폭신함과 반하는 느낌이었다.피스타치오는 맛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역시 다신 피스타치오를 붙여놓는 건 식감 면에서 멀쩡한 케이크 위에 생아몬드를 올리는 것만큼이나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따지고 보니 아즈키가 개중 가장 나았던 것 같다. 식감에 대해서 언급했지만, 맛만 놓고 보면 별로 나무랄 데는 없었다.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모셨던 피에르 에르메님의 마카롱보다는 옅고, 우리나라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것보다는 진했다.
그럼, 다시 케이크 폭식으로 돌입해서…C3라는 가게의 티라미스와 오렌지 치즈 무스. 처음에는 오렌지 치즈 무스가 너무 맛있어 보여 그것만 사려고 했으나, 일본에 왔는데 티라미스를 안 먹어보는 것도 좀 섭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티라미스는 사실 대부분이 일본 스타일이니까. 여기에서 일본 스타일이라는 건 커피에 적신 레이디핑거보다 초콜렛 비스퀴(스폰지?시트?)에 깔루아를 써서 맛도 맛이지만 식감이 더 마스카르포네의 부드러움과 궤를 같이한다. 거기에 깔루아라는 술을 더하면 그 기름진 느낌이 한층 더하게 된다. 커다란 베이킹 팬 같은데에 만들어놓고 꽤 후하게 담아준다. 담겨 있는 걸 보니 안 먹어볼 수가 없었다. 코코아 가루로 쓴맛을 조금 더했으면 진한 맛을 조금 덜어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렌지 치즈 무스는 크러스트에 치즈 무스, 그 위에 오렌지 젤리와 오렌지 조각으로 마무리한 것인데, 바닥의 크러스트가 좀 딱딱했지만 무스는 부드러웠고 오렌지 조각은 딸기보다도 촉촉했다(당연한건가-_-;;;). 가장 맛있게 먹었던 케이크 가운데 하나였다.
그 다음은 <igrekplus>의 딸기케이크(prince라고 불러야 하나? 메모해놓은 것을 보니 치즈무스였던듯). 대부분의 케이크가게에서 딸기쓰는 방법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데, 그건 정말 최상급의 딸기를 가장 제철에, 또한 가장 잘 익었을때 쓰는 경우가 아니라면 딸기 자체가 대부분 사람들이 케이크와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바라는 정도보다 딱딱하기 때문에 그대로 케이크에 쓰는 것이 식감 면에서 긍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에서 이 케이크의 딸기는 샴보르 같은데 절였는지 적당히 물기가 있었고, 향이 더해져 전체적으로 한 단계 더 복잡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무스까지 먹었을때 조금 질척거리는 감도 있었지만 그래도 뻑뻑하거나 푸석푸석한 것보다는 내 취향에 더 잘 맞는다.
다음은 <Henri Charpentier>의 딸기 크레이프 케이크. 무슨 한정이나 특집으로 마련한 것인지, 이 가게에서는 봄소풍 비슷한 주제로 만든 재미있는 케이크들을 팔고 있었다. 이 크레이프 케이크를 무슨 계란말이와 같은 음식처럼 만들었듯, 햄버거나 핫도그처럼 생겼으나 케이크인 것들이 시리즈로 있었다(이런 걸 transmogrification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젠 먹은지 좀 된데다가 메모를 워낙 날림으로 해놓아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부드러운 크레이프에 딸기잼, 또는 퓨레와 같은 것으로 속을 채우고, 한편으로는 바삭거리는 웨이퍼스 같은 것도 넣어 식감의 대조를 주었다. 이 여행에서 먹었던 케이크 가운데 최고였는데, 왜 이거 하나만 먹고 말았을까 생각해보니 그 시간에 케이크가 거의 다 떨어졌던 것 같다. 그래도 몇 개 남은 것들이 있었는데 더 사다 먹지 않은게 아쉽다.
마지막으로는 그 전날에도 먹었던 <아 라 깡빠뉴>의 크렘 카라멜. 푸딩같은 종류를 안 먹은데다가 컵이 예뻐서 그야말로 갑자기 사게 되었다(번호는 4와 7). 카라멜은 카라멜이라기보다 젤리이고, 푸딩에서는 알코올의 기운이 살짝 올라왔다. 일본이라면 뭐 이런 것들은 너무 잘 만드니까, 불만을 느낄 수 없는 맛이었다.
이것으로 고베 다이마루 백화점 출신 케이크 폭식을 두 번에 나눠 정리했다. 포스팅을 오랫동안 안했는데 다음에는 뭘 올려야 할지 생각중이다. 지금 후보는 1)먹었던 나머지들 2)오사카의 프렌치 3)돌아와서 영접한 피에르 에르메님 이다.
참, 여기 올린 사진들 가운데 몇몇을 이스트와르 당쥬에 기증했는데 벽에 걸릴지 안 걸릴지는 잘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이 글을 통해 반드시 언급해야 될 것이 있다. 이렇게 케이크를 한보따리씩 두 번 사면서, 무엇보다도 이들이 가지고 있는 케이크 관련 infrastructure에 놀랐다. 케이크에 인프라스트럭쳐라니 너무 거창한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포장에 들어가는 얼음팩의 디자인이나, 케이크가 속에서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하는 종이 같은 것만 봐도, 이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에 걸쳐 이러한 것들을 발전시켜왔는지 대강 짐작이 간다. 대부분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느니만큼, 집에 들고갈 때까지 모양이 망가지지 않는 포장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한편으로 굉장히 중요한 과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것들이 요즘처럼 환경에 민감한 시대에 역행하는 것은 아니냐는 점이다. 먼 옛날, 초등학교 시절 만들기 시간에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사던 두꺼운 도화지와 같은 재료로 만든 포장재들이 재활용이 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설사 재활용이 된다고 해도, 그렇게 많은 포장재가 케이크 한 두쪽을 위해 희생되는 것이 요즘의 추세와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 by bluexmas | 2010/04/20 10:37 | Taste | 트랙백 | 덧글(32)
마지막 말씀은 절반은 공감 절반은 눈물이 나는 이야기네요. 으으 얼음팩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만원 전철속에 휩쓸리더라도 들고 있는 사람조차 모를 정도로 상자가 찌부러져서 케이크를 잃어버리는 일은 안 생기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 왜 이렇게 중도가 어려운걸까요. -_ㅜ
ㅠ_ㅠ… 맛있겠네요….
대체로 일본가게들이 섬세한 게 조각케잌 살때 ‘댁(숙소)까지 몇분 걸리느냐’ 물어보더군요. 제가 운이 좋아서 그랬는지, 후쿠오카 여행때 길거리의 눈에 띄는 케잌가게서 대강 구매한 것도 맛있었습니다~
그나저나 마지막 코멘트는 심히 공감이 가는 바입니다. 최근에 집에 주르륵 축하할 일이 좀 있어서 케이크를 사오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선물을 받기도 했는데, 그 케이크 상자들의 포장이 여간이 아니더라구요. 케익 포장이 허술한 편인 한국에서도 이러니.. 일본에서는 좀더 심할 것으로 생각되긴 합니다. 개인적으로 빵집에서 포장지 가져가면 재활용하고, 갯수대로 도장찍어서 서비스 주는 시스템을 바라는 바입니다만.. 쩝; (화장품 브랜드 중에는 비슷한 시스템을 갖추기도 했죠. 그 돌려받은 케이스를 어떻게 재활용하는지는 좀 궁금하지만요..)
전체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데코..남이 만들어 준 디저트 먹고 싶어요ㅠ.ㅠ
Dia님, 와사비 마카롱도 있어요. 말차맛이나 팥맛이나 검은깨맛 까지는 예상했는데 와사비는 확실히 충격이더라고요;; 고베의 파티셰리였던 것 같은데 보자마자 돌아섰던 기억이 나네요..;;
참, 불쑥 덧글 달으셔도 괜찮습니다^^
윗 분이 와사비 말씀하시니 와사비 마카롱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 듭니다
케익 말고 뭐 드셨는지도 궁금하니 1) 드셨던 나머지들 한 표요!+_+
C3의 티라미스도 맛있구요. 앙리샤르팡티에의 피크닉 시리즈 중에서 먹어본 건 오페라 버거랑 파니니 모양 케이크 였는데 저것도 맛있어 보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