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아니면 맛? 충무김밥과 오미사 꿀빵
한동안(내 블로그질 기준에서, 하루에 적어도 글을 두 개는 쓰니까) 블로그를 닫거나 쉬다 보니 음식 관련 글이 좀 밀렸다. 그러나 우선, 지난 주에 갔다온 통영여행과 관련된 글을 먼저 올려보자.
다른 음식도 있겠지만, 통영에 가면 충무김밥과 오미사 꿀빵을 꼭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주워들었다. 그러나 그 음식들이 정말 음식으로서 맛이 있어 먹어봐야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 동네에서 일종의 컬트가 되었기 때문에 맛에 상관없이 먹어봐야 한다는 것인지, 솔직히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그렇다면 직접 먹어봐야 하는 법, 두 음식 모두 원조라고 하는 것과 아닌 것, 모두 지천에 널려 있었지만 정말 일부러 그 원조라고 하는 것들을 찾아 먹어 보았다. 바로 그것이 원조가 원조라는 이유로 여태껏 살아남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아무래도 젊은 처자보다는 할머니가 만들겠지만, 통영에서 살 수 있는 거의 모든 충무김밥은 할머니들이 만드는 것 같다. 그 원조라는 뚱보 할매 김밥집을 찾으려니 간판에 전부 ‘할머니’가 들어가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았으니까. 그 가운데에서 간신히 원조라는 김밥집을 찾았는데, 무엇보다 1인분에 4천원이지만 기본 2인분부터 판다는 이야기에 나는 솔직히 별로 반갑지 않았다. 그러려면 아예 가격표에 1인분 가격은 빼놓던가… 그래도 받아드니 밥의 따뜻한 기운이 느껴져서 기분이 좀 누그러들기는 했다.
어딘가 휴게소에서 먹을 계획으로 샀지만, 차를 몰다보니 멈추고 싶지 않아져서 결국 집에 돌아와 김밥을 먹게 되었다. 열어보니 반찬은 그렇다 쳐도, 밥의 양은 성인남자를 기준으로 할때 거의 1인분 정도의 수준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는 1인분 가격이 8천원인 셈. 거기에 반찬은 아낌없이 집어 먹었는데도 조금 남길 정도의 양이었다. 이런 식으로 해서 1인분은 안 팔고 2인분에는 8천원이라고 하는 것보다, 차라리 반찬을 조금 줄여서 기본 1인분에 6천원 정도로 팔고, 보다 적은 판매 단위를 더할 수 있는 식으로 팔면 소비자에게는 더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들이 불만으로 다가오기는 했지만, 음식 자체는 만족스러웠다. 작년인가, ‘충무깁밥이 음식이냐 ‘와 비슷한 뉘앙스의 글이 올라와서 잠시 논란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이 충무김밥이 엄연한 음식이고, 또 의외로 균형도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오징어와 어묵 무침도, 또 나박김치(혹은 석박지?) 모두 매운 맛이 두드러지는 반찬이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매운 편은 아닌데다가 매운 음식에서 흔히 벌어질 수 있는 간이 안 맞는 현상도 없었다. 어묵은 안 넣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맛이 없지는 않았고, 오징어도 해산물이 많이 나는 동네여서 그런지 신선하게 느껴졌으며, 적당한 정도로 삶아서 질기지 않았다. 그리고 김치 역시, 그런 종류의 김밥을 먹었을때 질리거나 목이 메는 정도를 상쇄해 줄 수 있을 정도로만 신맛이 돌도록, 적당하게 잘 익어 있었다. 김밥이니까 김이며 밥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데, 역시나 식어서 좀 뻑뻑하기는 했지만 김도, 쌀도 싸구려의 느낌은 없었고 밥도 잘 지은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포장도 그만하면 굉장히 세심하게 한 편이고, 포장재 역시 나름 신경을 쓴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원조랍시고 일부러 찾아가서 먹은 충무김밥은 돈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드는, 멀쩡하게 잘 만든 음식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파는 방식이 싫었지만, 8천원이 아주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에 비해 오미사 꿀빵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정확하게 이 꿀빵이라는 음식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좀 알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수요일에 찾아갔으나 휴일이라 문을 닫고, 다음 날 한 상자를 사서 먹어보고, 그 다음 날 선물하려고 아침 일찍 들러 두 상자를 더 사가지고 올라왔으니 어떻게 보면 나도 돈을 좀 쓴 편이지만(한 상자에 7천원), 이 꿀빵이라는 음식은 앞뒤 다 잘라내고 보면 사실 튀긴 도너츠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 빵이 도너츠이기 때문에 불만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도 지적한 것처럼 몇 십년 동안 이어 내려오고, 그래서 지방의 명물과 같은 대접을 받으며 누군가 와서 5만원 어치씩 사갈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밝히건데, 이 꿀빵 역시 맛이 아예 없는 편은 아니었다. 옛날옛적에 빵집에서 먹을 수 있었던, 주로 콩 앙금(이 빵의 앙금은 콩과 팥이 절반씩 섞여 있다. 팥은 맛을, 콩은 식감을 좌우한다는 느낌이 들었다)이 들어간 푸석한 도너츠와 굉장히 비슷한 맛이었다. 아마 거기에 설탕을 바르지 않고 물엿을 발랐더라면 거의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 물엿이다. 이름이 꿀빵이기는 해도, 이 빵에 꿀이라고는 조금도 들어가지 않는다. 물론 꿀값이 비싸니 여기에 어떻게 넣겠냐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면 과연 이 빵이 꿀빵일 수 있는지 현행법이나 규정이 어떻게 정하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이런 경우 꿀’맛’빵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내일쯤 식약청이든 소비자 보호원이든 전화를 걸어 한 번 물어볼 생각이다. 가게에 물어보았는데 꿀이 안 들어가지만 물엿이 들어가서 비슷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지었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게 이 가게가 문을 열었을 때부터라면 1963년이었을텐데,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 과연 지금도 이 빵이 꿀 없이도 그냥 꿀빵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솔직히 나는 물엿이 꿀빵이라는 음식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누군가는 그게 방부제 역할을 한다고 하더만, 단지 그것 때문에?). 내가 아는 그 물엿이라면 단맛이 거의 없을테니 설탕을 섞었을 것 같은데, 찐득하고 곧 딱딱하게 굳는 이 물엿은 꿀빵을 한입 물면 입술이나 이에 빵이 달라붙게 하고, 그렇지 않아도 푸석한 편인 꿀빵의 식감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는 껍데기를 더 딱딱하게 만드는 셈이니까. 빵에 바른 물엿은 곧 포장용기의 바닥에 고여 딱딱하게 굳고, 아예 용기채 냉동실에서 얼리면 빵끼리 달라붙기까지 해서 하나를 떼어내기가 정말 힘들어진다. 오늘도 하나를 떼어내서 먹으려다가 다른 하나를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는 참사가 벌어지고 말았다.
포장용기 이야기가 나와서 덧붙이자면, 냉동 보관하면 좋다고 써붙여 놓은 용기가 닫아도 틈이 생기는 것이라 냉동실에 넣어놓으면 결국 음식 냄새가 배일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감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빵이 따뜻한 상황에서 용기 안쪽에 물기가 생기지 말라고 그런 용기를 만든 듯한 의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이래서야 용기 그대로 냉동실에 넣기는 좀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냥 그렇고 그런 음식인데 왜 인기가 많으며 지방 명물 취급을 받는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 열린 주방에서 깨끗하게 만들고, 주인인 듯 보이는 분들도 친절해서 “아니 뭐 이딴 음식을 이렇게 힘들여서 먹어야 되나”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한 상자에 7천원이지만 결국 개당 7백원이면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니까. 그러나 이미 지방 특산물이라는 점에서, 경험치를 높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맛을 위한 음식으로 즐기기에 꿀빵은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부족하다는 느낌은 음식 자체의 존재를 부정하기 보다는 몇 가지를 다듬어서 더 나아질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면 또 전통이 변질되어서 사람들이 찾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려나…
사실, 맛이나 뭐 그런 것들보다 더 아쉬웠던 건 지방 명물이라는 꿀빵을 만드는 재료가, 그것도 우리나라 최고의 미식도시라고 알려진 동네를 나름 대표한다는 것이 거의 100% 수입재료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래야 단가가 맞을테니 왠지 지방 명물과 신토불이는 어딘가 모르게 연결되어 있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나 같은 수도권 거주인으로서는 단가 측면에서는 이해해도 정서 측면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올라올 때 천안 삼거리 휴게소에서 일부러 호도과자 한 상자를 사 봤는데 그것 역시 상황은 별로 다를 바 없었다.
그래도 오늘, 살찌기 쉬우니 먹지 않겠다는 다짐을 깨고 하나를 뜨겁게 데워 먹으면서 며칠 전에 다녀온 여행 생각을 했으니 어쩌면 이런 음식들의 참된 의미란 바로 그런 쪽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by bluexmas | 2010/04/19 08:34 | Taste | 트랙백 | 핑백(1) | 덧글(36)
Linked at The Note of Thir.. at 2013/02/27 12:40
… 싶은 느낌적 느낌이 가득하다. 강구안만 해도 두 집 걸러 한 집이 꿀빵집이 되었다(물론 나머지는 충무김밥집;; 결국 충무김밥-꿀빵-충무김밥-꿀빵… 인건가;;;). 이 글에서 언급했지만 소위 말하는 원조 꿀빵도 잘 만든 음식이라고 하기는 어려워 별 믿음이 없는데, 그래도 갈때마다 적어도 한 개는 먹어보게 된다. 작년 말에 갔을때 … more
나는 출근! 1등!
근데 통영이 미식도시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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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에 명동에서 먹은 충무김밥은 맛이 달랐던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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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황남빵 드셔 보셨나요? 황남빵은 어떻게 생각하실 지 궁금해요. 경주에서도 경주빵부터 시작해서 찰보리빵 등등 황남빵 비슷한 참 많은 빵들이 있는데 그래도 황남빵은 뭔가 차별성이 있긴 하더라구요 – 마찬가지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원재료는 차치하고서라도.
충무김밥 1인분 4000원은, 아마 김밥 가격의 마지노선인 게 아닐까요?:) 양이 더 많다해도 가격이 더 올라가면 ‘김밥 주제에!’ 하고 생각하게 되는 임계점. 2인분이 기본인 건 역시 좀 반칙이지만.
통영은 몇번 가긴 했지만 충무김밥은 충무 아닌 다른 데서 먹는 편이니까요.
예를 들어 부산에 있을 때도 부산극장 앞 충무김밥집이 줄서서 먹는 명가였지요.
지금은 없어졌을 확률 100프로지만…
꿀빵은…금시초문…맛따라 멋따라는 아무래도 제가 경제활동을 하게 되면서 하게 된 짓이니
찾아서 먹을 일은 없었지만 비슷한 아류작을 맛본 것으로 마감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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