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녕-그러나 눈은 내리지 않았다
통영에서의 마지막 밤, 잠이 안와서 결국 소설집 <제비를 기르다>를 다 읽고야 말았다. 딱 그 한 권을 챙겨들고 내려간 길이었는데, 의외로 읽는, 그것도 다시 읽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런 소설집은 읽는데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이면 된다.
<대설주의보>를 읽는데, 그리고 다시 읽는데에는 딱 그만큼의 시간만 걸렸다. 서울을 오가는 기차며 지하철 안에서 한 번을 읽었고, 또 <제비를 기르다>를 다 보고 통영에서 올라와 또 서울을 오가는 기차며 지하철에서 한 번을 더 읽었다. 혹시라도 내가 놓치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다시 읽게 된 <제비를 기르다>가 그때보다도 더 다가왔기 때문에, 정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놓쳤다고 생각했던 몇몇 부분들이 있기는 했지만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책은, 미지근했다.
동어반복이지만, 또 말할 수 밖에 없다. 이제 나에게는 그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특별한 작가다. 내가 대학에 갓 들어갔던 1994년, 그의 첫 소설집이 나왔고 그 이후 15년 동안 나는 성인의 길을 그의 책과 함께 했다(고 살짝 과장과 감상을 더해 말하곤 한다). 그 이후에 나타나는 작가들에게 그에게 그러는 것만큼 정을 붙이지 못하는 건, 사실은 나의 잘못일지도 모른다. 노력을 안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공감할 수 없었다. 또한 그러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세계가 잘 돌아갈때 내가 잘못된 건 아닌가 스스로를 의심하는 것처럼. 어쨌거나 나에게 그만큼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작가는 지난 15년동안 나타나지 않았고, 그래서 그의 새 책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그렇기 때문에 미지근해도 반갑기는 하다. 어떤 면에서는 그냥 꾸준히 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우니까.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뭐 어떤 소설이 그렇지 않겠느냐만, 윤대녕의 소설은 ‘관계’와 ‘대화’에 그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관계는 물론, 사람들, 특히 남녀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그의 이야기 등장하는 남녀는 대부분 살짝 비틀린 필연의 요소가 더해진 우연을 통해 만난다. 얼핏 보면 정말 우연 이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런 공격을 받을까봐 의외로 개연성의 냄새가 짙은 연결고리 비슷한 것을 반드시 꼬리표처럼 달아놓는다고나 할까? 그렇게 엮인 사람들은 주로 대화를 통해 관계를 세밀하게 발전시켜 나가는데 그 대화의 방식 자체가 재미있다. 계속 읽다 보면 언제나 비슷한 느낌의, 책 날개에 붙어 있는 작가의 얼굴처럼 까질하게 뱉는 방식이다. 남자야 뭐 그렇다고 쳐도, 여자들도 대부분 남자에게 기별을 하거나 거리를 두는 것 같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한다. 거의 언제나, 똑바로 쳐다보지는 않지만 마음 속에 담고 있는 말을 끄집어 내는 것 그 자체에는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 같다. 아니면 그 전에 치이고 치어서 더 이상은 속마음을 감추거나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서 적극적인 공격을 통해 방어를 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내가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러한 관계와 대화가, 이상하게도 이번 소설집에서는 많이 약해졌다는 느낌이 자꾸만 든다. 아닐거라고 아닐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 그리고 그러한 느낌은 <제비를 기르다>를 보고 난 다음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졌다. 솔직히, <제비>를 다시 읽으면서 많이 놀랐다. 내용은 책을 펼치자마자 다 기억이 났지만, 그 관계가 이루어지거나 대화가 펼쳐지는 방식이 예전에 읽었을 때보다 더더욱 날이 서 있는 귀퉁이나 꺼끌꺼끌한 표면의 느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정말, 몇 번이나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무도 없는 펜션의 방에서 혼자 얼굴을 찌푸려야만 했다.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사실은 약해졌다기 보다 <대설주의보>에서는 재활용의 느낌이 많이 난다. 특히나 관계에서 그런 느낌이 심하고, 대화에서는 닳은 느낌이 많이 난다. 귀퉁이는 둥글고, 표면은 예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그래서 고백하건데, 나는 처음으로 그의 책에서 내 자신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질감을 느꼈다. 책의 뒷머리에 붙여놓은 말에서, 작가는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것이 무엇인지까지는 언급하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그냥 100% 순수한 어림짐작으로 그가 나이를 먹고 힘을 좀 빼면서 글을 쓰게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그렇다면 또 다음에는 어떤 글을 쓸까, 바로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그건 이번에 내가 느낀 이런 미지근함이 나의 판단착오라고 믿고 싶은 마음 50%에, 또한 만약 그의 작품세계가 달라진다면 과연 어떻게 될지 알고 싶은 마음 50%일 것이다. 어쨌거나 제목과는 달리, 큰 눈은 오지 않았다. 감히, 예전보다 그의 세계가 미지근해져서 내리던 큰 눈이 비로 바뀌어 땅을 적시고 말았다고 이야기하고 맺기로 하자. 다음 번에는 큰 눈이 제대로 내려주기를 기대한다. 지난 15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1. 사실 제목에서부터 나는 기대를 많이 했다. 그와 눈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눈의 여행자>를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아껴서인지도 모르겠다.
2.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를 읽고, 그가 앞으로 변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꼭 찝어 자전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가 그 소설을 통해 그동안 자신이, 또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겪은 일들을 한 번 정리하고 넘어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개인적인 시각에서 보는 것 이상의 서사가 개입된 것처럼 느꼈다. 거기에 나는, 막판에 벌어지는 주인공 여자의 임신을 희망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그의 소설에서 그 정도까지 강한 느낌의 희망으로 이해/해석될 수 있는 사건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3. 예전에 썼던 이야기이긴 한데, 그를 코리아나 호텔 앞에서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1995년 초였을거다. 트렌치 코트에 트렁크를 든 차림이었다. 나는 김광민이 진행했던 <일요예술무대>의 공개방송을 친구와 보기로 했다가 바람을 맞는 바람에 하릴없이 길거리를 쏘다니고 있던 중이었다.
4. 솔직히 다른 작가나 예술가는 별로 만나보고 싶지 않은데, 이 양반은 한 번 만나보았으면 좋겠다. 예산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어느 정도 화제는 끌어나갈 수 있을텐데.
5, 어쨌거나, 읽고 났더니 글이 쓰고 싶어졌다. 요즘 쓰는 그런 글들 말고…
# by bluexmas | 2010/04/18 00:00 | Book | 트랙백 | 덧글(8)
문제는 그래서 마무리가 어렵데요. 늘 이거 쓰다 저거 쓰다…그건 좋은 건 아니죠 ㅋ
물론 고심 끝에 정리해서 쓴 것이겠죠 제가 고심 끝에 그리는 것처럼
그림을 보면 그리고 싶어지는데 막상 실천에는 옮기지 않게 돼요 흐흐..
자신의 한계를 느끼며 절망에 빠지고 그렇게 슬럼프가-_-;;
그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 조금 둥글둥글해져도 괜찮다는 생각은 저도 합니다. 오히려 신파의 느낌은 별로 없었고, 다들 좀 다른 방식으로 지쳐보였어요. <대설주의보>는 저도 가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또 다음 소설이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