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리스토란테 에오-소금에 대해서 생각해보다
리스토란테 에오에서 점심을 먹기 전, 예습(?)을 좀 하려고 인터넷을 뒤졌더니 신문기사가 나왔는데, 어윤권 주방장이 소금을 가장 중요한 식재료로 여기고 와인셀러에 보관해서 최상의 상태를 유지한다고 나와있었다. 과연 어떤 소금을 쓰는지 궁금했으나, 기사에서는 그 소금 자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서 아쉬웠다. 사실 소금은 그냥 소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렇게 어떤 주방장은 와인셀러에 보관해야만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소금은 음식을 만드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재료이다. 흔히 소금을 단지 음식에 짠맛만 불어넣는 재료로 생각하지만, 짠맛이 느껴지기 이전에 소금은 서로 다른 식재료들의 맛이 한데 어우러지는 역할을 해 준다. 사실 에오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처음에는 소금에 대한 글을 함께 써서 엮으려 했으나, 그 중요함에 걸맞게 소금에 대한 양이 방대해서, 그건 따로 글을 써야 되겠다고 계획을 수정하게 되었다(참고로, 내가 번역한 책에도 소금의 맛이나 건강에 대한 논쟁에 대한 내용을 아우르는 글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소금에 대한 대부분의 내용은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에오에서 음식을 먹고 소금에 대해 생각했던 이유는, 주방장이 소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만큼 이곳에서 음식에 소금이 쓰인 방식이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그건 음식에 대해 언급하면서 차차 설명하도록 하겠다.
알려진 것처럼, 리스토란테 에오에는 메뉴판이 없다. 생선/고기의 주요리를 고를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자리에 앉으면 웨이터가 오늘 먹게 될 음식을 말해주고, 생선과 고기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할지 묻는다. 그러한 절차가 딱히 나쁘지는 않은데, 하나의 의식처럼 오늘 먹게 될 음식이 적인 메뉴를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리에 앉은 손님에게 메뉴를 보며 숨을 돌릴 순간을 준다고나 할까? 아니면 메뉴를 카드처럼 만들어 식탁에 잘 꽂아놓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설명을 듣고, 농어와 한우 가운데 한우를 골랐다. 솔직히 고기가 얼마나 좋냐 이런 것들보다 나는 조리의 정도나, 고기면 그 고기와 다른 재료의 조화와 같은 것들에 더 관심이 많다. 안 먹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은 늘 한다.
여러 사람으로 이루어진 무리가 많이 오지는 않는지, 공간에는 2,4인용 식탁이 비교적 넉넉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혼자 밥을 먹으러 가면 사실 창가와는 떨어진 자리에 앉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공간 자체에서 특별히 답답한 느낌이랄지 그런 건 없었다. 전체적인 인테리어는 큰 장식없이 깔끔하고 단순한 가운데 현대적인 그림들이 눈에 띄었고,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었다. 화장실에는 남녀향수가 여러 종류 놓여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았다.
한눈에 포카치아라고 알아볼 수 있는 빵과, 물어보니 치아바타라는 대답을 들었으나 동의할 수 없는 또 다른 빵이 나왔다. 둘 다 맛있었는데, 물어보니 패스트리 셰프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고 들었다. 포카치아에는 간 치즈가 뿌려져 있었는데, 이게 조금 짠편이었다.
첫 번째는 단호박 수프와 파르메잔치즈 크림 브륄레에 마스카르포네 치즈가 가운데 든 두 장의 크래커였다. 일단 차림새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크래커와 받침 그릇인 작은 구리 남비의 색깔 조화랄지, 빨간 통후추가 군데군데 든 쌀알 등), 수프와 크림 브륄레의 노란색이 활기찬 느낌이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음식은 맛도 맛이지만 바삭거림(크래커, 브륄레 된 설탕)과 부드러움(수프, 커스터드, 마스카르포네 치즈)의 식감 대조를 염두에 두고 만든 느낌이었는데, 그렇다면 마스카르포네 치즈는 빼고 크래커를 조금 더 많이 담아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음식으로 완결성을 이룬다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단호박 수프가 담긴 잔은 예뻤지만, 수프의 양에 비해 조금 높지 않나 하는 생각이 아주 살짝 들었다.
두 번째로는 겉을 지진 북해도산 가리비와 애호박이었는데, 눈으로 보기에도 잘 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관자를 한 조각 잘라 입에 넣자 소금 알갱이가 씹혔고 딱 기분 좋은 정도의 짠맛이 퍼졌다. 조리를 다 하고 마지막에 소금 몇 알갱이를 뿌려낸 모양인데, 이럴 경우 소금은 맛 뿐 아니라 관자의 부드러운 부분과 대조되는 식감도 함께 준다. 과장 아니냐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정말 와인셀러에 보관해서 그런지 소금은 바삭거렸지만 동시에 촉촉했다(토마토에 바닷소금을 뿌려 먹는 것처럼 집에서도 이런 식으로 소금을 쓸 때가 있는데, 그럴 경우 소금 알갱이가 늘 바싹 마른 느낌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촉촉한 느낌이었다). 겉을 정말 잘 지진 관자는 속이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는 살짝 더 익어있었고, 애호박과 위에 얹은 샐러드가 그렇게 의미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세 번째-전채로는 두 번째-로는 새우와 송로버섯 맛을 더한 감자 퓨레에 보리알 리조토 약간이었는데, 촉감이 좋은 감자퓨레는 맛있었지만 새우 역시 탱글탱글하다고 말하기에 조금 더 익힌 느낌이었다. 차라리 보리알에 씹히는 맛이 좀 있고 새우가 그보다 더 부드러웠으면 좋았을텐데 두 재료의 식감이 역전되어 있었다.
그 다음은 “봄나물”과 맑은 해산물 소스를 곁들인 리조토였다. 폴렌타든 리조토든 이런 식으로 일단 조리한 다음 식혀서 덩어리를 만들어 겉면을 다시 지져 식감의 대조를 주는 것을 좋아해서 반가웠지만, 보리알처럼 이 리조토의 쌀알 역시 내가 좋아하는 정도보다는 조금 더 익혀서, 약간 죽과 같은 느낌이었다. 나중에 이 정도로 익힌 것을 사람들이 더 좋아해서 그러는 것이냐고 웨이트리스한테 물어봤는데, 그건 아니고 주방장의 취향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밑에 깔린 ‘봄나물’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기가 힘들었지만 바삭바삭한 겉보다 죽과 같은 느낌의 속의 식감이 더 두드러지는 리조토라면 야채를 이렇게 익히는 것도 괜찮겠지만 샐러드로 내는 것은 어땠을까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가장 느낌이 약한 음식이었다.
스테이크에 곁들여 먹으라고 올리브가 나왔는데, 다른 블로그에 올라온 사진을 볼 때마다 진짜 예쁜 올리브 그린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그런 올리브였다. 완전히 쩔어버리지 않은 올리브랄까.
그 다음은 한우 안심 스테이크. 관자에서 그랬던 것처럼 소금이 기분 좋게 씹혔는데 예전에 먹었던 곳에서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미디엄 레어 정도로 조리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더 낫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파프리카와 양파, 누에콩(맞나?)이 스테이크 밑에 깔려 있었는데, 모두 맛있게 잘 익어 있었고 콩이 가장 맛있었지만 비단 여기에 곁들인 야채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산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이건 비단 여기에서만 느꼈던 기분이 아니라서, 전반적으로 사람들의 입맛이 그런쪽인가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었다.
후식은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발사믹 식초에 살짝 버무린 딸기였는데 딸기도 신선했고 가게에서 만든 아이스크림도 괜찮았지만 집에서도 똑같이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이라서 그런지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에스프레소는 무난했는데 그라빠를 뿌리자 훌륭한 느낌을 바뀌었고, 쿠키는 맛있었다.
엄청나게 기술이 돋보이는 음식까지는 아니었지만 내가 생각할 수 없었던 재료의 조합과 같이, 뭔가 색다른 느낌을 기대했던 것도 사실인데 그런 느낌이 솔직히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좋은 재료로 비교적 잘 조리한 음식들이었지만 참신한 느낌은 아니었고, 코스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신선한 느낌도 부족했다. 새우가 나온다고 해서 일부러 고기를 시켰는데, 여기에 농어를 먹었다면 더 식상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소금을 쓰는 방식은 좋았지만, 그건 어쩌면 소스가 거의 없는 음식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소금을 재료에 미리 간해둘때와 마지막에 그런 식으로 쓸 때 음식의 맛은 아주 달라지는데 그러한 것을 염두에 두고 미리 간을 했는지 분간하기가 조금 어려웠다. 이렇게 내가 느꼈던 것들이 어쩌면 소위 말하는 “전성기”가 지나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러나 어쨌든, 서비스는 훌륭하다고 말하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일하는 모든 분들이 과장하지 않는 선에서 친절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그저 점심을 먹을 뿐이라서, 점심과 저녁 코스의 가격 차이가 꽤 나는 곳에서 점심을 먹으면 이게 다가 아닐지도 모르니 속단은 금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가격과 나오는 음식의 질을 생각해본다면 이 정도의 점심을 위해서는 이 근방에서 가장 좋은 선택은 아닐까 생각하다가, 그 다음에 가게 된 음식점에서 바로 그 생각을 바꾸게 된다. 그 음식점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 by bluexmas | 2010/02/26 09:06 | Taste | 트랙백 | 덧글(12)
Commented by nabiko at 2010/02/26 09:33
흐아…가고 싶은 곳은 점점 늘어만가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2/27 19:50
Commented by nabiko at 2010/03/01 22:17
Commented by SF_GIRL at 2010/02/26 10:37
저는 거의 제대로 안 읽었지만 2주전쯤 타임아웃 뉴욕에 소금 특집기사가 나왔었어요.
링크를 찾아봤더니 http://newyork.timeout.com/articles/restaurants-bars/82299/the-best-salts-in-new-york-city
‘ㅅ’ 저 착하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2/27 19:51
Commented by 러움 at 2010/02/27 02:11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2/27 19:52
Commented by momo at 2010/02/27 03:23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2/27 19:53
Commented by 홈요리튜나 at 2010/02/27 15:07
전 차에 소금을 넣어 마시는데 양의 미묘한 차이가 맛을 플러스마이너스 시키더라구요..아무리 제가 짠 걸 좋아해도 좀 더 넣은 날엔 단 맛을 해쳐버려요
꽃소금을 쓰다가 구운소금에서 고운 가루소금(뭔진 모르지만)으로 바꿨는데 맛이 더 풍부해졌어요..역시 소금은 중요하구나 새삼 느꼈죠u_u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2/27 19:53
Commented by 푸켓몬스터 at 2010/02/28 00:35
촉촉한 소금이란게 쉽게 와닿지가 않네요
경험이 없으니 공감도 없네요 ㅠㅠ
2 Respon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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