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여학생-틀 안에 갇힌 이야기
바로 어제 끄적거려 놓은 잡담에서 언급한 책.
책을 읽으며 내내 그림이 등장인물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토마의 그림에 디테일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반드시 세밀해야 표정이 전해지는 건 아니다. 보노보노만 해도 그렇지 않나.
그렇게 그림 자체로 감정을 제대로 실을 수 없다면, 만화라는 것이 시각적인 예술이기는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대화로도 얼마든지 그런 것들을 이뤄낼 수 있을텐데 이 만화는 딱히 그런 느낌도 없다. 그리고 사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이유 가운데 일부분은 이 만화에 등장하는 어떤 등장인물도 나나 내 주변 세계의 사람과 공통점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읽는 가운데 드문드문 ‘아 뭐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나보네, 이런 감정을 가지고 사나보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과는 또 별개로 등장인물이며 전개되는 이야기 자체가 그냥 어떤 틀 안을 맴돌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들었다.
어제의 잡담에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여자주인공은 소설가이고 그럭저럭 인기를 얻고도 있지만 그 소설의 세계가 정확하게 어떤지에 대한 묘사가 없기 때문에 그녀와 그녀가 쓰는 소설의 세계에 과연 (절대 전부일 필요는 없지만) 겹치는 부분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달리 말하자면, 과연 그녀가 소설가라는 것을 작가가 제대로 정당화하고 있는지 그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딱히 소설가가 아니라 출장 요리사였어도, 아니면 솔직히 그냥 회사원이었어도 그 주변의 환경이나 등장인물을 살짝만 바꿔주면 별 무리가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만약 그렇다면 작가가 일궈낸 세계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주인공은 그냥 쿨해보이기 위해 소설가가 될 필요까지는 없었을테고, 또 그게 그녀가 소설가로 설정된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나머지 등장인물들 모두, 집합적으로 만화가가 정해놓은 감정의 선을 절대 넘지 않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세 권이라는, 그렇게 많지도 않은 분량에서도 등장인물의 관계를 복잡하게 얽어놓고 그 내부에서 철저하게 경제적으로 재활용하는 일일연속극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서 단조로움과 지루함을 느꼈다. 모두가 어느 수준 이상으로 슬픔이나 기쁨을 느끼지 않는 느낌이었고, 아무도 조명을 받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의 오빠는 무슨 블로그도 하는 사람이고 약간의 오덕기도 보이고, 회사를 그만두게 된 이유나 성격도 설정대로 힘을 가지고 조금씩 더 끄집어 낸다면 굉장히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되었을텐데 그 어떤 것도 보여주지 못한채 주변인으로 맴돌다가 만다. 그래서 그냥, 이러한 등장인물들 모두가 어느 정도는 작가의 일부를 투영했고, 또 아직 작가에게 이야기, 즉 서사를 원하는 만큼 짜낼 힘이 없기 때문에 이런 것 같다는 뻔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 결론을 내리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뻔한 결론이므로 물음도 뻔하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여자 주인공은 외롭다는 말을 입에 자주 담는데, 언제나 진짜 외로운 사람은 외롭다고 말 안 한다는 편견을 가진 나로서는 만약 그녀가 진짜 외로운 사람이라면 그게 소설을 지어내는 원동력일텐데 그걸 없어져도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어쨌거나 나는 이 책이 조금 더 재미있지 않다는 점에 아쉬움을 느꼈다.
# by bluexmas | 2010/02/05 00:38 | Book | 트랙백 | 덧글(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