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집에 돌아와서 저녁까지 다 먹고 나서야 장보면서 산 잡지책이 온데간데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영수증을 확인하니 계산은 되어 있었다. #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부분은 생각이 쓸데없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끔 완전히 정신줄을 놓거나 필름이 끊기는 것과 같은 상황을 겪을 때가 있다. 나는 계산대에서 또 무엇을 생각하다가 잡지를 봉지에 담지 않았을까? 생각나는 게 없었다. 늘 너무 생각이 많아서 피곤하다. 한 가지 생각을 골똘하게 계속하는 것도 아니고, 한 열 가지를 한꺼번에 생각하거나, 어떤 하나가 계속해서 덩굴처럼 뻗어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쨌든 또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잡지를 봉지에 담지 않았을 것이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른다. 이럴때는 내가 싫어지고 나에게 남에게 그러하듯 미친 듯이 화가 날 때가 있다. 남에게 화가 나면 얼굴을 보면서 소리라도 지를 수 있을텐데, 나에게 화가 나면 어떻게 해야 되나, 거울을 보면서 소리라도 질러야 되나?
다시 마트에 갈 생각을 하니까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 나는 오늘 아침 열 시에 나가서 아홉시를 넘겨 돌아왔다. 그리고 그 시간들 가운데 절반 정도는 바람부는 허허벌판을 쏘다니는데 썼다. 추운데 또 밖에 나가는 것도, 시간을 쓰는 것도 싫었다. 돈도 아깝지만 언제나 늘 시간이 돈보다 더 아깝다는 생각을 하며 산다. 생각 끝에 옆단지 본가에 가서 차를 끌고 나왔다. 마트에서는 쉽게 책을 찾을 수 있었다. 6,500원짜리 잡지를 마트에서 천 원 정도 싸게 사는데, 시간과 기름 손실이 그것보다 더 된다고 생각하자 짜증이 났다. 그러나 정작 더 짜증이 났던 건, 그렇게 마트에 들러서 책을 찾아왔는데 생각해보니 내일 만들어보려는 음식의 주재료인 단호박을 사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아아 샀는데 단호박만 빼놓고, 그것도 마트에 다시 차까지 몰고 갔다온 다음에야 기억을 하다니. 참 스스로가 싫다는 말은 웬만하면 안 하는 게 좋은데 이럴 때에는 참 싫다. 자질구레한 일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서 피곤한 경우도 많고, 또 밤에도 잠을 잘 못자는 경우도 꽤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종종하게 된다. 외할아버지는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고 병원에서는 심장의 한 쪽이 조금 크다고 그랬지만 검사결과는 딱히 눈에 뜨일만한 것을 집어내지 못했다. 며칠 전에 미식축구 선수 게인즈 아담스가 심장이 커져서 갑자기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심장 때문에 죽은 다른 사람 얘기를 들은 내 심장이 놀라서 죽는 것도 어쩌면 좀 소설스럽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아주 가끔, 전혀 예기치 않은 때에 스위치가 딱, 하고 내려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그 순간 아쉬울까. 그럴지도 모르는데 조금 더 느슨하게 살아도 되는걸까. ‘남들보다’라는 말은 감히 쓸 수 없지만 그래도 게으르게 살지는 않아왔다고 생각하는데 그 많은 부분이 삽질이라고 생각이 되어 슬픈데 이젠 삽질 좀 그만 해도 되나.
# by bluexmas | 2010/01/22 23:23 | Life | 트랙백 | 덧글(12)
결국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대로, 간편한 수첩을 휴대하는 게 안전하겠죠~
기록을 꾸준히 합니다만, 성질이 급해서 기록도 안 하고 막 대강 다니곤 합니다.
이 글 읽고 남 일 같지 않아 매우 슬퍼졌어요 흑ㅠ
오늘 밤이 지나면 조금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까요 🙂 토다쿠토다쿠-
오래 사는 건 좋은데 어떻게 오래 사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나이를 아주 먹게 되면(예를들어 90이상이든지)그럼 피곤해서 이제 그만 살아도 되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비공개 덧글입니다.
예언대로 죽으면 어차피 다 죽을테니 그렇게 고민은 하지 않습니다. 학교를 떠나면 또 회사에서 삽질하기 때문에 인생은 어차피 삽질의 연속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