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외출

어제는 근 열흘인가만에 서울 나들이를 해서 압구정동 모 식당에서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대화에 섞어 쓰시는 세련된 강남부자아줌마들 옆자리(혼자 밥 먹는 나를 위해서 식당에서 칸막이를 쳐 주었다)에서 혼자 점심을 먹고 몇 군데를 들러 사람들을 만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신세계본점에 들러 싸게 나온 포도주를 무려 네 병이나 사들고 서울역에 가서 집에 내려가는 기차표를 사기 직전까지는 참 제제대로된(오타인데 어째 더듬는 것 같은 느낌이 나서 그그냥 내버려두두기로 해했다) 하루였다. 일에 차질이 생겼다는 전화를 받고 바로 택시를 타고 동교동으로 달려…가려 했으나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차는 엄청나게 막혀 그냥 기어가다시피했고 덕분에 택시비는 만 삼천원이 나왔으며 많이 풀렸다던 날씨는 생각보다 굉장히 추웠으며 미끄러운 길을 걸어다니기에 정말 포도주 네 병은 엄청나게 무거웠다. 집에 돌아올 때에는 강남역에서 버스를 탔는데 정말 너무 안 와서 덜덜 떨면서 30분을 기다려야만 했고 포도주 네 병은 정말 엄청나게 무거웠으며 오늘 꼭 뚝배기를 써야할 일이 있어서 이마트가 문닫기 15분 전에 간신히 도착해서 포도주 네 병과 가방과 식빵 몇 덩어리를 포함한 짐 일곱갠가를 간신히 보관함에 쑤셔넣고 이층으로 올라가 뚝배기를 고르는데 꽃무늬가 그려진 뚜껑이 달린 것들은 다 7천원이 넘었지만 뚜껑도 상자도 없는 3천원짜리가 있어서 혹시 납이 들어간 도료따위로 처리를 한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으나 자주 쓰지도 않을 건데 그 옆의 매대에서 황토흙인지 뭔지로 만들었다는 걸 만 오천원이나 주고 살 수는 없었다. 뚝배기를 계산대에 봄동과 청경채 각각 한 단씩과 함께 매대에 내밀었을때 사랑해요 이마트 랄랄랄라 랄랄랄랄라 하는 노래가 나와서 계산대의 아주머니에게 이 노래를 하루 종일 계속 들어도 괜찮으시냐고 물어봤더니 당연히 괜찮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 노래를 계속 들었더니 잠꼬대로 부르는 것 같다는 농담을 하고 다시 포도주 네 병과 가방과 식빵 등등을 들고 길을 건너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택시기사는 무슨 아파트가 눈도 안 치워놓느냐고 자기는 그래서 아파트 단지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면서 나를 내려주었다. 집에 올라와서 짐을 내려놓았으나 사실은 그게 끝이 아니었던 이유는 어머니가 어디에선가 토마토가 들어왔는데 집쪽도 아닌 집 반대쪽의 경비실에 맡겨놓았더니 찾아가라고 점심을 먹고 있는데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두 번이나 전화를 하셔서 그걸 찾으려 다시 집 반대쪽의 경비실까지 내려갔다 와야하기 때문이었다. 가보니 경비실은 비어있고 순찰중 딱지가 붙어 있었는데 또 오기는 싫어 같이 쓰여있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아저씨는 경비실 안의 화장실에서 배설물 순찰을 하고 계신 것이었다. 그 수고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 혹시 섬유질과 리코펜이 풍부한 토마토가 다음 번의 배설물 순찰을 쉽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한 개를 드리고 왔다. 어제는 오랜만에 외출을 했는데 하루가 좀 길었다.

 by bluexmas | 2010/01/17 02:39 | Life | 트랙백 | 덧글(45)

 Commented at 2010/01/17 03:5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17 22:36

아아 그러셨다니 다행이네요.

사실은 매달 아주 힘들게 쓰고 있어요. 그래야 읽는 분들이 더 즐겁지요. 제가 최선을 다해서 써야 내보내고도 찜찜한 구석이 없어요. 음식 글은 비교적 쉽게 쓰는데 건축에 관한 글은 그렇지 않더라구요. 아무래도 직업이었으니 더 어렵게 생각하는 구석도 있고, 또 어느 수준으로 써야 되는지도 계속해서 생각을 해야 하구요. 보통 마감 넘기면 한 4-5일 있다가 다음 주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메모해놓으면서 조금씩 준비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18 00:41

참,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애독자엽서도 가끔 보내주세요ㅜㅜㅜ

 Commented by 초이 at 2010/01/17 04:33 

ㅎ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17 22:37

재미있으셨나봐요. 사실 피눈물나는 얘긴데 다들 재미있어 하시는듯…

 Commented by sarah at 2010/01/17 05:04 

읽기만 하는데도 숨이 차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17 22:38

저도 어찌나 숨이 차던지 괴롭더라구요. 즐겁게 시작했다가 여러모로 괴롭게 맺었습니다.

 Commented by 나녹 at 2010/01/17 05:35 

알찬 하루였네요. 괜히 토마토 먹고싶어지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17 22:38

알찬 하루는 늘 괴롭죠… 홀푸드에서 파는 에어룸 토마토 강춥니다. 진짜 맛있는데 파운드에 한 8불 할거에요…

 Commented by 푸켓몬스터 at 2010/01/17 05:36 

띄어쓰기가 없는것이 굉장히 바쁜 느낌이 듭네요

아휴 저는 회사 옮겨서 회의하고 술먹고 피시방가서 겜하다가 끝;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17 22:39

회사 옮기셨군요. 보다 더 좋은데로 옮기신거죠? 축하드립니다… 힘든 하루였어요.

 Commented by JUICY at 2010/01/17 09:32 

저도 어제 날이 풀렸다해서 플랫슈즈를 신고 돌아다녔다가 …

집에 오는 15분 동안 발가락이 동사해가는 경험을 해봤어요… =_ㅠ

이제 그 신발은 봄이 올때까진 고이접어 신발장에 둬야겠어요 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17 22:40

저도 계속 부츠신고 다니다가 오늘 간만에 안 신고 다녔어요. 춥기는 춥던데요 아직-_-;;;;

 Commented by 펠로우 at 2010/01/17 11:01 

고생하셨군요^^ 금요일저녁이라면 인파에 치이더라도, 시청이나 충정로에서 2호선타고 신촌 혹은 홍대입구역에서 하차하는게 그래도 좀 낫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17 22:40

사실 짐이 너무 많아서 택시를 탄건데 돈이 정말 미친듯이 올라더라구요.

 Commented by black at 2010/01/17 11:17 

금요일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추웠죠 ㅠ_

추운데 와인 네 병은 .. 어우야 -_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17 22:42

그게 신세계 본점에서 바로 서울역까지 한 정거장이니까…집에 가니까…하다가 정말 죽는줄 알았어요-_-;;;

참, 전에 프로토콜로 어디에서 사셨는지요? 주로 백화점에서 와인을 사는데 괜찮은 가게 있으면 추천 좀 부탁드릴께요~^^

 Commented by black at 2010/01/18 00:23

저도 주로 백화점에서 와인을 구입합니다.

아니면 여기저기서 할인행사 할 때 찾아가서 사는정도에요. 딱히 추천할만한 가게가 읍네요 ^^;

프로토콜로 산 곳은 레뱅 드 매일 잠실점이구요.

레뱅에서 수입한 것 같으니 레뱅 드 매일 매장에선 다 판매할 거라 생각돼요.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10/01/17 11:45 

뭔가 요즘 지하철 탈 때만 읽고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느낌입니다. 한글판 축약본이나 디즈니 만화영화와 다른 원작의 앨리스가 하는 독백 같아요. 그냥 앨리스는 여자 이름이니 앨리스 쿠퍼라고 해드릴까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17 22:42

앨리스쿠퍼 좋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영어로 읽으시는지요? 다시 읽어보고 싶은데 그게 정말 동화인지 아닌지는 참 잘 모르겠더라구요.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10/01/17 23:18

그게 저작권 기한을 넘은 고전이어서 그런지 unabridged로 여기저기 이북에 올라 있더군요. 아이폰 무료 앱들 중에서 제일 먼저 받아 읽기 시작했는데, 제 지하철 출근 거리가 16분밖에 되지 않아 아직도 못 끝냈답니다. 물론 동화인데 동화라기엔 좀 기이하지요. 작가가 어린 소녀들의 심리와 정신세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의심도 많이 샀으니 말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17 23:22

아 아이폰으로 찾을 수 있겠네요… 저도 하나 다운받아봐야겠습니다.

 Commented by subin at 2010/01/17 12:11 

재밌어요. 흐히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17 22:43

힘들었어요. 흐흑ㅠㅠㅠ

 Commented by 잠자는코알라 at 2010/01/17 14:29 

ㅋㅋ 하루 이야기 재미있어요.

홈에버라는 마트에서 전구 파는 알바 한 적이 있는데요 ‘함께 즐겨요 행복한 홈에버 행복한 우리엄마 얼굴 홈에버 웃음 가득한 아빠 얼굴 홈에버~’이노래를 하루 종일 들으니 정말 고역이더라고요 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17 22:46

매일 올리고 싶은데 여건이 안 되어서요ㅠㅠㅠ

전구를 파신 적이 있군요… 저는 사탕공장에서 일한 적 있는데 크크.

일본 비꾸카메라 이런데 가면 그보다 더 짧은 노래가 미친 듯이 반복되는데 정말 누군가 돌아버려서 총기 난사 사건이라도 일으킬 분위기에요-_-;;;

 Commented by F모C™ at 2010/01/17 15:06 

그 이마트 노래는 여전한가보네요; 해피해피해피 이마트~로 마무리되지요; 그나마 홈플러스는 다른 음악이라도 틀어주는데.. 어느순간 이 방송이 나오면 직원여러분은 하던 일을 멈추시고 인사를 하라는.. 그러면 박수 두번 치고 인사였던가, 요즘은 못본듯한데 생각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듭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17 22:46

아 그런거 너무 손발이 오그라듭니다. 오후 네 시 인사시간에 가면 눈 안 마주치려고 정말 애써요…

 Commented by googler at 2010/01/17 21:26 

음… 토마토가 섬유질이 풍부하시군요. 고구마가 섬유질 풍부하다길래 고구마 오븐에 쪄먹던 기억에…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17 22:47

뭐 야채니까 풍부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고구마도 풍부한데 참 가스 감당이====33333

 Commented by wany at 2010/01/18 00:31 

포도주 4병에 뚝배기에 토마토라..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20 03:16

재미있으신가봐요.

 Commented at 2010/01/18 02:0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18 02:08

아이고 감사합니다ㅠㅠㅠ 열심히 쓸께요.

 Commented at 2010/01/18 03:3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19 00:54

^^ 네 이제 며칠 있으면 나올거에요.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mew at 2010/01/18 12:46 

아아.. 이마트 노래. 같이 장 보러 가신 아부지께서 ‘해피해피해피이마트~’를 ‘돈내놔돈내놔돈내놔~’로 개사하셨었죠 ㅎㅎㅎ 정신없는데 잘 읽히는 글이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19 00:55

저는 욕을 섞어서 부를 때도 있어요 사실은-_-;;; #발#발#발 이마트~ 뭐 이런 식으로-_-;;;

 Commented by mew at 2010/01/19 08:18

으악 으악~~~~ 블루님 ㅠ.ㅠ 저 빵터졌어요 흥거헝헝헝흫허ㅓ ㅠ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20 03:16

으하하 죄송해요.. 너무 적나라했나요. 그러나 저 꿈이 나중에 욕쟁이영감설렁탕집차리는거라서요 크크크…

 Commented by mew at 2010/01/20 10:42

그 설렁탕집 찬성입니다. 꼭 차리세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22 23:58

앗 알겠습니다!!! 꼭 차릴께요!!! 단 손님도 같이 욕할 수 있게 해서 같이 단란화목한 분위기를 꾸밀거에요 크크크

 Commented by mew at 2010/01/22 23:58

크하하하하하~~~

좋은 생각입니다-_-)b

 Commented by 닥슈나이더 at 2010/01/22 17:53 

마지막 문장이 왜 시니컬 하게 느껴질까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1/22 23:58

히히 정말 시니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