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포스팅으로 모시는 리치몬드 슈크림

사실 슈크림은 돈 주고 사 먹어본 기억이 거의 없는데, 소문에 듣자하니 리치몬드 슈크림이 그렇게 훌륭하다고 해서 열 두 갠가 들은 한 상자를 사다가 먹어보았다. 그렇게 크지 않음에도 하나에 1,300원이나 하는 뽀대를 생각해보면, 웬만해서 단품을 가지고는 글을 안 올린다는 내 내부방침을 깨고 단독글로 모셔야 될 만큼의 대접은 해 줘야 되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어렸을 때, 수퍼마켓에서 파는 빵들 가운데에서도 슈는 없지만 그 크림이 들어간 것들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이 크림은 커스터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그런 빵들에 든 크림은 크림이라기 보다는 풀에 좀 더 가까웠다. 빵 안에 들어있을 때에는 찐득찐득해도 입에 들어가면 사르르 녹아 흩어져야 하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래도 풀처럼 찐득찐득했던 것 같다. 뭐 설탕과 계란, 그리고 바닐라 추출액이나 진짜 콩이 들어가는 이 크림은 맛도 맛이지만, 식감, 특히 점도가 중요하다.

사실 리치몬드는 한 백 만 가지의 빵을 만드는 것 같은데 지금까지 먹어본 것들은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이 슈크림은 정말 예외였다. 위에서 말한 점도가 일단 훌륭해서, 크림이 흐르거나 끈적거리지 않으면서도 입에 들어가는 순간 사르르 녹는다. 조금 더 생각을 해 보면, 오히려 아주 약간 묽은 느낌도 든다. 하지만 지나치게 묽을 경우 그 물기가 슈를 잡아먹을텐데, 크림과 슈의 비율이 말도 안되는 수준처럼 느껴지면서도 슈는 비교적 멀쩡하게 자신의 각을 유지하고 있다. 무엇인지 그 종류는 알 수 없어도 인공에 가까운 첨가물이 들어가면 꼭 뒤에 석연치 않은 시큼한 뒷맛이 남는 것이 많은 단 과자 종류의 인지상정인데, 이 슈크림의 뒷맛은 그저 깔끔했다. 뭐 이정도면 이 가격에 먹어도 돈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이 슈크림만큼 진하게 들었다. 크림이 워낙 엄청나셔서 슈 자체에는 생각이 미치지 않을 정도이기는 하지만 슈 역시 계란 풍미가 물씬 풍기는, 제 몫을 하는 녀석이었다. 먹는데 정말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그러나 두 개 먹기는 너무 두려워서 식구들을 나눠주고 하나를 챙겨 냉동실에 고이 모셔두었다.

 by bluexmas | 2009/12/31 14:13 | Taste | 트랙백 | 덧글(26)

 Commented by ellen at 2009/12/31 14:22 

아..먹고싶네요. 홍대까지 가야하나…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31 14:26

아주 가끔이라면 저거 먹으러 홍대 갈만한 가치도 있겠던데요. 아, 온라인 쇼핑몰도 있다고 들었는데 파는지는 확인을 안 해봤네요.

 Commented by F모C™ at 2009/12/31 14:28 

슈크림빵이라는 걸 어려서 동네 제과점에서 사먹곤 했더랬는데, 왠지 자연적으로 난 색감은 아닌 노란 색으로 찐득거리는.. 말씀대로 풀같은 질감의 크림이 들어있던 기억이 나네요. 어린 입맛에는 맛있었는데 한개까지만이고, 한개 넘게 먹으면 머리가 아파왔더랬지요. 그게 사실 ‘슈’크림이 아니고, 슈크림이라는게 따로 있고 심지어 슈가 크림의 이름이 아니고, 그 크림은 이름이 다르다는 걸 알았을 때는 차라리 날 주워온거라고 하면 덜 놀랐겠다 싶을 지경이었어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31 14:36

그러니까요… 저도 슈크림의 정체를 알고 나서부터는…. 어차피 전 주워온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어린시절을 보내서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어요 흐흐흑T_T

 Commented by F모C™ at 2009/12/31 14:40

그러고보니 성질나면 나 주워왔다는데로 갈거야!! 하고 슬리퍼바람으로 뛰쳐나가 근처 공원으로 올라가다가 엄마에게 잡혀서 아이스크림 하나 입에 물리고 회유되어 돌아오던 어린시절이긴 했습니다. 지금도 어리지만™요( ..)

 Commented at 2009/12/31 14:3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31 14:38

아 저 컵은 어디에서 주워온거에요. 은근히 마음에 들더라구요^__^

그 머핀 두 가지 조리법이 좀 다른데, 사워크림이 든 쪽이 훨씬 더 제대로 정제된 레시피에요 바나나쪽은 좀 딱딱하죠. 저는 아침으로 먹을 때에는 바나나를 좋아하구요. 원래 사워크림든 건 블루베리 머핀의 조리법을 응용해서 대신 건포도를 넣었는데, 저는 그게 더 좋더라구요. 블루베리는 잘못 다루면 터지거든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31 14:38

그리고 리치몬드 슈크림은 낱개로도 팔아요. 저는 그냥 대인배처럼 상자로 사서 가족들이랑 나눠먹었어요.

 Commented by 볼빨간 at 2009/12/31 15:16 

꽉차있네요

한입만;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31 15:21

저는 대인배라 드리려면 다 드리지 한 입만 드리고 그러지 않습니다’;;;

 Commented at 2009/12/31 15:4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홈요리튜나 at 2009/12/31 15:49 

보들보들한 슈만 봐도 사르르 녹아 없어질 것 같아요

맛보면 좋은 표정 나오겠는걸요

전 맛난 거 먹으면 창피하게도 표정이 풀어지거든요 흐흐-_;

 Commented by 당고 at 2009/12/31 16:49 

아아아-

슈 정말 좋아요. 특히 리치몬드 슈크림은-

전 한 번도 상자로 사본 적 없는데 진짜 부럽네요;ㅁ;

 Commented by lj at 2009/12/31 18:16 

리치몬드 좋아하는데 슈크림은 안 먹어봤네요. 여름에 지나가다가 팥 아이스케키(왠지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아요.)먹으러 자주 갔거든요. 조만간 홍대가면 슈크림도 시도해봐야겠어요.:)

 Commented by 로오나 at 2009/12/31 19:20 

리치몬드 슈크림 아주 그냥 한입 베어물면 입안에서 폭발할 듯한 몰망몰캉함과 꽉꽉 들어참이 매력적이죠>_<

 Commented by 봄이와 at 2009/12/31 20:22 

으악. 저 방금까지 리치몬드까지 달려나갈기세였어요.

하지만 오늘은 31일..거리에 사람들이 넘쳐날 생각을 하니..후우

 Commented by essen at 2009/12/31 21:09 

정말 실하게 생겼네요. 홍대입구 갈 일이 생기면 꼭 들려서 사와야겠어요.

 Commented by 나녹 at 2009/12/31 21:33 

리치몬드 수억번 지나쳤는데 먹어본 적은 없는… 요건 한 번 도전해봐야겠네요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09/12/31 22:52 

저, 저 컵은…

 Commented by 다비 at 2010/01/01 01:43 

저거 처음 먹기 시작할 땐 900원이었는데… 물가가 ㅠ ㅠ 저거랑 살구 든 동전만한 거 맛있어요. 치즈 타르트렛인가 그것도 괜찮고. 아이스바도 그럭저럭.

그거 말고 특히 독일식이 어쩌고 하는 큰빵들은 다 그저 그렇죠. 믹스로 만든대나 그러더군요.

 Commented by 잠자는코알라 at 2010/01/02 01:01 

아주 옛날에 한 번 먹어봤는데 맛이 기억나질 않아요 ㅠㅠ 블루마스님이 맛있다고 하시니 갑자기 먹고싶네요! 저는 갈 때마다 품절이더군요. 주로 밤에 가서 그런지 ㅠ.ㅠ

 Commented by 닥슈나이더 at 2010/01/02 01:03 

흠… 저 리치몬드 슈를 95년도에 아마 처음 먹었을텐데…..

와~ 맛있다.. 라는 기억이 없는걸 왜일까요?? ㅠㅠ;;;

워낙 좋아해서… 어느 가게던 보이면 집어드는 슈인데..ㅠㅠ;;

 Commented by googler at 2010/01/03 06:02 

리치몬드, 전통값 합니다.

 Commented by 토니 at 2010/01/03 21:51 

홍대말고 성산동에도 있죠.

리치몬드는 계란샌드위치, 슈크림, 아이스바!

 Commented by iris at 2010/01/04 09:35 

어머나! 저는 슈크림을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해서 이렇게 제가 먹어본적이 없는 슈크림이 있으면 꼭 먹어봐야한다는… 조만간 꼭 사먹어봐야겠어요 흑흑

 Commented by 노호호 at 2010/02/26 13:14 

파리크라상의 바닐라빈 송송 슈크림도 맛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