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버터와 크림

저녁에 잠시 밖에 나섰는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모종의 이유로 나는 눈이 내린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마트에 가서 계란 한 판과 초싸구려 백포도주, 뭐 기타 쓸데없는 것들을 샀는데 진짜 목적은 크림과 버터를 사는 것이었다. 연말이라 그 두 가지가 좀 많이 필요했다. 크림으로는 벌써 원액을 만들어 놓은 아이스크림 하나와 짝을 이룰만한 다른 하나를 더 만들고, 또 사워크림이 부족하니 아무래도 직접 발효를 해야 될 것 같으며, 또 무엇인가 수프를 만들거나 핫초코 따위를 만들때 넣어야 될 것 같았는데 어제는 아예 한 통도 남아있지 않아서 오늘은 남아있는 세 통을 모두 집어왔다. 사람들이 유효기간에 안달복달하고 나도 예외는 아닌데, 가끔 버릴 각오를 하고 놔두면 한 일주일은 더 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왜 우리나라는 유제품의 유통기간이 이렇게 짧은지 모르겠다. 살균을 미국보다 덜 하는 것도 아닐텐데… 종종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그 우유 보관하는 냉장고가 과연 제대로 냉장이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문을 닫을 수 있는 것보다는 못하겠지? 그렇다면… 어쨌든, 크림이 간당간당하면 아예 요거트를 하나 섞어서 상온에 두면 발효된다. 그래서 지난 번에 사워크림을 처음 만들어보았다(글 올려야 되는데…;)

버터도 뭔가 좀 만들어야 되어서 필요한데, 소들이 예민해서 젖을 안 주는지 어쩐지 버터를 사기가 쉽지 않아서… 그래서 갈 때마다 눈에 띄면 한 두 개씩 집어다가 심심할 때 두 큰술 정도 분량으로 깍둑썰기를 해서 냉동실에 얼려두는데, 서울우유 버터의 흰 색은 과연 이게 지방이 넉넉하게 든 건지 의심을 안 할 수 없게 만든다. 소가 뭘 먹냐에 따라 우유색도 달라지고, 또 버터의 색도 달라지겠지만 이건 좀 너무 하얗잖아… 솔직히 버터만 먹어봐도 그 지방의 느낌이 그렇게 풍부하지 않다. 크림은 눈의 색을 닮아도 되지만 버터는 그러면 좀 못마땅하다.

어쨌든 크림과 버터, 기타 쓸데없는 걸 잔뜩 사서 낑낑대며 들고 돌아왔는데, 크리스마스에는 뭘 해 먹으면 좋을까 아직도 그냥 생각만 하고 있다. 이탈리아식 코스 따위를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은데, 뭐 그건 그렇고 디저트는 꼭 코스로 만들어보고 싶다. 세 가지 정도로? 음식 만들 시간은 있나 잘 모르겠다…

이번에도 정작 쓰고 싶었던 얘기는 까먹어서 또 못 썼는데, 덧붙이자면 여행 좀 가고 싶다. 10월에 지금 하는 일 계약되면 갔다와서 일하리- 라고 마음 먹었다가 일이 완전히 쏟아져버려서T_T 겨울이 끝나기 전에 눈이 내리는 동네의 비즈니스 호텔 좁은 방 높은 곳에서 길거리를 내려다보고 싶구나. 술을 마시면서 계속 쓰려다가 쓰지 못하고 있는, 심야영화에 대한 글을 정말 쓰고 싶다.

 by bluexmas | 2009/12/20 02:41 | Life | 트랙백 | 덧글(10)

 Commented by 푸켓몬스터 at 2009/12/20 03:11 

따뜻한 지역도 여행으로 좋지요…ㅋ

 Commented by 하니픽 at 2009/12/20 03:16 

저도 크리스마스에는 무슨 케익을 만들까로 고민하고 있답니다~ 왠지 크리스마스니까 색다른 케익을 만들어 보고 싶어지는데 또 너무 새로운걸 만들면 만들다가 망쳐버릴까봐 걱정이 되요^^;; 조만간 방산시장도 가야할터인데 날이 추우니까 나가기가 귀찮아지고…인터넷 주문으로 시키자니 크리스마스 특수라고 주문이 밀릴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아마도 방산시장으로 가겠지요…

 Commented at 2009/12/20 03:1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고선생 at 2009/12/20 07:11 

크리스마스는 집에 있지 못해, 그 전에 뭔가 해먹을 궁리나 하고 있습죠.

빵, 과자같은건 절대 아니구요..ㅎ

 Commented by 잠자는코알라 at 2009/12/20 09:17 

블루마스님 저 이거 보고 냉장고에 남아 있던 유통기한 1주일 지난 생크림이 떠올랐어요. 감사해요 -_-;; 정말 크림이 멀쩡하더군요 ^^; 지금 비스킷 반죽해서 오븐에 넣어두고 왔답니다. 늘 말씀드리는 거지만 그 비스킷 레시피는 정말 최고예요. 주말마다 아침으로 구워먹고 있어요 ^^;

 Commented by 봄이와 at 2009/12/20 12:04 

예전엔 분명 버터는 약간 노란빛이도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베이킹 하느라고 버터를 사니까 정말 눈이 부시도록 하얀색이더라구요.

크리스마스에 디저트코스라니 +_+ 아아 역시 멋지셔요.

 Commented by 킬링타이머 at 2009/12/20 13:31 

지금 버터가 세계적으로 소비가 커서 구하기가 쉽지 않대요. 정말 마트가면 빵발라먹는 버터도 잘 없는…

서울우유 버터를 쓰시길래 역시 최상급만 쓰시는구나 싶었는데 희다니? 제가 처음에 사봤던 서울우유버터는 샛노란색상이었어요. 이게 수입이 있고 국내생산 제품이 따로 있나보더라구요.

저는 버터 구하기가 힘들고 비싸길래 5키로짜리 롯데우유버터를 샀어요. 마음 같아선 첨가물 없는 앵커버터를 사고 싶었지만 가격차이가 커서…;

하단의 제품별 특징을 참고해보시면 재미나실득!?

http://www.bakingschool.co.kr/bs/bemarket/shop/index.php?pageurl=page_goodsdetail&uid=436086

 Commented by 홈요리튜나 at 2009/12/20 16:29 

이전에 생크림을 밀봉하지 않고 열어둔 채 방치했더니 상한 맛이 아니라 새콤달콤한 맛이 나더라구요^^;

버터를 뽀얗게 표백이라도 한건 아니겠죠 흐흐..하얀 것보단 살짝 노리끼리한 것이 맛있어 보이던데

이번 크리스마스엔 저도 콸라님 따라 비스킷이나:9

 Commented by 나녹 at 2009/12/20 23:59 

작년에 일본에서 버터 품귀현상이 있었죠..하얀 버터는 영 식욕이 나질 않을 거 같아요

 Commented by zizi at 2009/12/21 01:05 

지난 번에 친구들이 모여서 얘기하다가 버터 얘기가 나왔는데, ‘같은 소포장 서울우유버터라도 흰 것이 있고 노란 것이 있더라- 염도차이도 없던데 대체 무슨 차이냐-‘하는 이야기를 신나게 하다가 조사는 해보지 않고 무익하게 마무리되었던 기억이 나네요.

전 서울우유 후레쉬버터 450짜리를 쓰는데, 제가 쓴 건 전부 노란 색이었거든요. 근데 친구 중 하나 왈 똑같은 포장으로 하얀 것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ㅡ.ㅡ 진짜 포장이 똑같고 내용물 색만 다른 건가요?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