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혼과 작가주의

예전에 썼던 글을 본의 아니게 영어로 다시 써야(옮기는 게 아니라, 옮기는 건 불가능하다. 생각의 구조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영어와 우리말은) 할 일이 생겨서 꾸역꾸역 안 되는 걸 억지로 하고 있었는데, ‘예술혼’ 과 ‘작가주의’ 에서 딱 막혀버리고 말았다. 온라인 영어사전을 뒤져보아도 비슷하다고 생각할만한 무엇인가가 나오지 않는다. 나는 어쩌자고 저런 단어를 막 남발하면서 글을 썼을까? 어제 오늘 좀 반성했다. 솔직히 생각해보면 저런 두 단어가 정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내가 표현하려는 의미와 맞는지 생각 안 하면서 썼을 수도 있다. 말의 세계는 생각보다 심오하고, 사람들은 그렇게 심오한 세계에 생각보다 관심을 많이 기울이지 않는다.

외국에서 몇 년을 살면서 학교며 회사를 다니고, 나름 우리말 잘 안 써 가면서 그 사람들 사이에서만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해도, 여전히 안 되는 건 철저하게 안된다. 쉬운 회화며 메일 따위야 뭐 어느 상황에서도 크게 막히지 않고 말하거나 쓸 수 있지만, 막말로 그 동네에서 대학원 다니면서 석사를 두 개나 받아먹었다는 사람의 지식 수준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전문적인 말하기와 글쓰기는 정말 택도 없다. 학교 다닐 때에는 과제를 말도 안 되게 써가면서 주워섬기느라 이런저런 단어들을 나름 꾸러미로 만들어 가지고 있었으나 떠난지 5년이라 그것도 벌써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그런데, 그 옛날 꾸러미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예술혼이나 작가주의는 쓴 기억이 없다. 나는 우리말이고 영어고 글을 쓰다가 어려운 개념을 빌어와야 될 상황이 생기면, 웬만큼 돌아가서 쉬운 말로 쓰는 한이 있어도 그런 개념을 안 쓰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는 조금 더 심각하다. 하루 종일 이 생각을 하다가 결국 짜증이 나서 저녁 나절에 밥도 안 먹고 잠을 자서는 열 한 시가 다 되어 일어났다. 올빼미와 친구하는 삶은 싫은데…

 by bluexmas | 2009/12/08 00:42 | Life | 트랙백 | 덧글(14)

 Commented by 고선생 at 2009/12/08 00:46 

정말 모든 언어를 완벽히 번역한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 같습니다. 현지에서 그 나라 언어를 사용해보며 산 사람이라면 그걸 더 뼈저리게 느끼죠. 더불어 외국어사전의 단어들 반정도는 엉터리거나 쓸모없다는, 혹은 아예 오역이 되어있다는 것도.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11 23:56

오역의 문제는 사실 좀 심각하죠. 그건 솔직히 외국어를 몰라서가 아니라 우리말을 몰라서 벌어지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을 많이 합니다. 오역을 창작 수준으로 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Commented by 루아 at 2009/12/08 02:03 

안녕하세요? 맨날 눈팅만 하다 처음으로 덧글 남깁니다^^

단어의 꾸러미라…재미있는 표현이네요. 제가 느끼기엔 두 나라 언어를 아무리 유창하게 구사해도 영어랑 한국어 단어 꾸러미의 내용물이 갈수록 달라지는 것 같아요. 신경써서 노력하지 않으면 새로운 개념을 배울 때 그 개념을 표현하는 능력이 한 언어에 국한되어져 버리거든요. 두 나라 언어로 학술지에 논문을 내는 사람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뭐 다르게 생각하면 노력하면 되는 거라고…스스로를 위안합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11 23:57

저는 뭐 영어도 그저그렇기는 한데… 우리말로 쓴 걸 영어로 옮기는 건 아예 말이 안 되고,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처음부터 다시 써야만 하더라구요. 그래서 뭐 다 다시 썼지요.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더라구요.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09/12/08 02:30 

갑자기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생각납니다. 농촌에서 자란 라이언이 뭔가를 말하려 하는데 생각이 안난다고 하자 소위가 컨텍스트를 말해보라고 하지요. 그런데 정작 라이언 일병은 컨텍스트라는 용어 자체를 모르던… 여러 의미에서 그 장면을 꽤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언어, 대화, 소통 등등…

저 단어들 결론이 나시면 알려주세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기는 한데 문장 없이는 역시 말이 안되겠지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11 23:57

결국은 결론을 못 내리고 그냥 아예 다 풀어서 썼습니다. 저는 아예 그렇게 하는 게 속 편하더라구요. 솔직히 어려운 개념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과연 그 개념을 이해하는지조차도 회의적일 때가 많구요.

 Commented by 닥슈나이더 at 2009/12/08 08:02 

거기서 20년을 산 교포형도….

노는데는 한국말이 편하고…

일하는데는 영어가 편하다고…ㅠㅠ;;;

쉬운 단어와 슬랭은 한국말만 알고….

고급 단어는 영어만 알고..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11 23:58

전 솔직히 미국애들이랑 술마시면서 욕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미국 슬랭도 나쁘지는 않아요 친구들끼리는 ㅠㅠㅠ

 Commented at 2009/12/08 11:2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11 23:59

좀 잘 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어요. 읽기는 많이 읽는데(사실 우리말로 된 것보다 아직도영어로 된 걸 많이 읽는데), 쓸때는 전혀 녹아나오지 않더라구요. 더 연습이 필요한 것임에는 분명한데어떻게 연습을 해야 할까요?

 Commented by 잠자는코알라 at 2009/12/08 12:19 

저도 어려운 말은 되도록이면 안 쓰려고 일부러 의식하면서까지 말을 고치는 편인데… 어디서 주워들은 말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게다가 그걸 영어로 옮기신다니 더 힘드시겠어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11 23:59

그냥 아예 다 다시 썼어요. 옮겨보려는 노력을 버렸죠 T_T

 Commented by 푸켓몬스터 at 2009/12/09 17:06 

글을 읽고보니 예술혼과 작가주의가 정말 궁금하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2/11 23:59

아직도 해결을 못 봤어요 T_T 과연 뭘지 서울가면 한영사전이라도 찾아봐야겠어요T_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