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길]W.e-괜찮은 컨셉트, 아쉬운 음식
가로수길은 점점 망가져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싼 임대료 때문인지, 길가의 가게들은 계속해서 망해가고 그 자리에는 큰 기업의 프랜차이즈가 들어선다. 아무런 특색도 없는 탐앤탐스 커피가 길가에 떡허니 들어서 있는 것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탐앤탐스는 싸기라도 하니 다행일지도 모른다. 비싸도 형편없는 집들도 있을테니까.
그 탐앤탐스가 있는 길 뒷쪽 골목을 지나다니다가, 한식 디저트를 한다는 카페가 있길래 지난 주에 들어보았다. 솔직히 가로수길에 있는 거의 어떤 것들에도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이 집 역시 별 예외는 아니었지만 한식 디저트라는 말에 맛을 보고 싶었다. 어렸을때, 할머니가 직접 만드시는 한과며 떡, 식혜, 수정과, 그리고 다식 등등을 많이 먹었던 나로서는 우리 음식의 과자나 후식, 차 종류가 맛있고 또한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집 어떤 음식을 내놓는지 궁금했다.
솔직히, 몇 번이나 지나쳐갔지만 발을 들여놓기까지는 여러번 망설였는데, 그건 가게 앞에 세워놓은, 가게의 디자인과는 맞지 않는 싸구려 입간판에 쓴 군고구마며 호떡에 대한 선전 때문이었다. 만약 가게의 대표주자가 (계절한정이라고 해도) 군고구마나 호떡이라면, 그건 내가 생각했던 한식 디저트가 아니고, 굳이 맛을 볼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어쨌든, 궁금증을 해결해야만 했다.
내부는 깔끔하지만 비교적 편안한 느낌이었는데, 메뉴를 받아보니 뭐 좋은 재료를 써서 한식에 바탕을 둔 후식을 주로 만들고 작은 컵에 담은 비빔밥 같은 브런치도 하는 모양이었다. 호떡이나 군고구마가 아니더라도 단호박이나 팥, 그리고 검은깨 등으로 만든 푸딩이 있었고, 수정과나 식혜 등등으로 만든 그라니타도 있었다. 어차피 저녁도 먹었기 때문에 배부른 걸 먹을 필요도 없고 해서, 검은깨 푸딩(4,500원)과 수정과 그라니타(8,500원)을 시켰다.
일단 검정깨 푸딩은,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검정깨로 만든 페이스트를 푸딩의 위에 얹은 것인데 맛은 무난한 편이었다. 패션파이브 같은데에서 파는 푸딩이 너무 달다고 생각하는터라, 이 정도의 은은한 단맛을 가진 푸딩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고 또 검은깨의 맛이 푸딩과도 그럭저럭 어울렸다. 사실 푸딩이 늘 너무 느물거리는 식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터라, 검은깨가 조금 더 거칠어서 대조가 되어도 괜찮을 듯 싶었다.
그러나 수정과 그라니타는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수정과로 그라니타를 만들어 오렌지를 곁들인다는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그 오렌지의 향이 약했다. 위에 오렌지 두 쪽이 올라있고, 바닥에 오렌지청을 깔았다고 했지만 차라리 오렌지 제스트를 내서 버무리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실망스러웠던 점은, 수정과 자체가 맛이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수정과는 발효를 해야하는 식혜보다 만들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들어가는 재료도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만든 수정과는 계피향이 정말 그득해야 하는데, 이 수정과는 그냥 밋밋했다. 향도 그렇고, 단맛 역시 싱거웠는데 먹고난 뒷맛이 설탕의 단맛이 아닌 것은 느낌이 있었다. 나가면서 물어보니, 그라니타는 만들지만 식혜나 수정과는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라니타는 액체를 얼리면서 30분이나 한 시간에 한 번씩 포크로 저어주기만 하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물론 얼음알갱이가 어떻게 맺히냐에 따라 그라니타에도 못하고 더 나은 것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거기까지 따져야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라니타가 만들기 쉬운 디저트임에는 틀림이 없다.
가게를 나오면서 일하는 분들께 이것저것 물어보았는데, 가게 전체의 아이디어까지는 모르겠지만 메뉴며 음식은 컨설팅업체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런 얘기를 듣고 먹었던 것들을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해보니, 컨셉트는 굉장히 좋지만, 그 컨셉트를 바탕으로 한 실행이 너무 약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 이 가게가 스스로를 디저트 카페라고 정의한다면 그건 보통의 카페나, 아니면 한식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전통 찻집까지 비교하자면 그런 찻집처럼 오래 앉아서 차며 머무르는 공간으로 설정된 것은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더구나 공간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런데, 그렇다면 그 디저트들은 일반 차보다 가격이 더 비쌀테고, 그렇게 비싸다면 당연히 아무데에서나 맛볼 수 있는 것보다 조금 더 만드는데 공을 들이거나 특색이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4,500원짜리 검은깨 푸딩에는 그다지 불만이 없었지만, 사실 이름만 근사하게 그라니타이지 직접 만든 것도 아닌 수정과를 얼려서 오렌지 두 조각을 곁들였을 뿐인데 그 가격이 8,500원이라는 것은 그 단순함 면에서 조금 납득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이건 너무 치졸한 비교일지도 있지만, 보통 크기의 유리잔에 얼려서 간 수정과를 채웠다면 그 양은 액체 수정과의 반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식혜나 수정과를 얼린 것에 과일을 곁들여서 성격을 불어넣었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그러한 식의 성격을 불어넣는 작업이 컨설팅 업체의 힘을 빌은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다소 단순하고 순진한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호떡과 군고구마를 언급했는데, 호떡의 경우 ‘호떡 팬케이크’ 라는 이름으로 가게에서 직접 구운 호떡 몇 장(바깥에 시럽을 따로 내놓는 것으로 보아 속에 설탕을 채운 호떡인지는 잘 모르겠다)에 조린 사과나 딸기류를 얹고 메이플 시럽과 하겐다스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스쿱을 곁들여 12,000원 정도의 가격에 내놓고 있었고, ‘고구마 플래터’ 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군고구마에는 정확하게 무엇이 곁들여지는지 다른 사람들의 식탁을 들여다보지 않았지만 가격은 8,000원 정도 였다. 좋은 재료로 가게에서 직접 만들면 노점에서 파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맛있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은 이 디저트들이 조금 잘 꾸민, 그리고 어디에서 먹을 수 있는 호떡과 군고구마에 불과한데 가격이 저 정도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과연 이 집의 정체성은 이러한 음식들로 인식이 될 수 있는 것이며, 이것이 사람들이 기대하고 가게를 들르게 만드는 한식 디저트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사실, 폭신폭신해서 기름을 잘 흡수하는 팬케이크나 빵 종류와는 달리, 쫄깃쫄깃하며 기름진 호떡 종류는 같이 기름진 아이스크림과는 그렇게 좋은 궁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게 하겐다즈 바닐라라면… 왜 오미자나 구기자 아이스크림 같은 건 안될까?
사실 이제 우리도 잘 몰라서 그렇지, 한식을 디저트에 적용한다면 거기에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 일단 음료 종류만 해도 비단 식혜와 수정과 뿐 아니라 사람들도 잘 아는 오미자나 구기자 같은 것도 있고, 좀 한약스럽지만 감초의 맛도 충분히 응용할 수 있다. 과자 종류도 위에서 언급한 다식 뿐 아니라 한과나 강정같은 것도 있고, 정과 같은 것들도 얼마든지 활용 가능한다. 과연 어느 정도의 한식을 응용하고 싶은지 정확하게 헤아리기가 좀 어려웠지만, 적어도 호기심에서 찾아온 사람이 계속해서 찾아올 수 있는 카페가 되려면, 보다 더 생각을 많이 한 음식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제는 가로수길에도 비싸지 않은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계속해서 들어서고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차별화를 시키지 않는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집의 특별한 무엇인가가 먹고 싶어서 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보다는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 장소를 찾는 것이 목적이고, 그렇다면 그저 그런 스타벅스나 탐앤탐스의 커피나 케이크로도 만족한다. 그렇지 않으려면 달라야 하는데, 과연 얼마나 달라야 하는 것일까? 아직 우리 음식을 바탕으로 하는 집들이 별로 없고, 더구나 디저트 카페는 별 볼일 없는 굿오브닝 컵케이크를 빼놓고는 거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승산이 충분히 있는 상황이지만, 그러려면 보다 생각이 많이 들어간 디저트를 내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정도라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한식을 컨셉트로 삼은 것이 보다 더 gimmick에 가까운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입맛은 서양의 케이크나 과자가 가지고 있는 단맛에 길들여져 있어서, 전체적으로 그 단맛이 은은한 한식 종류에는 오히려 낯설음을 느끼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나는 이 가게가 진화하는 것을 보고 싶은데, 가게를 꾸려 나가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그걸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 by bluexmas | 2009/12/01 15:57 | Taste | 트랙백 | 핑백(1) | 덧글(23)
Linked at Casa dei tre ors.. at 2009/12/03 20:04
… 맛과 베리류의 새콤한 맛은 안 어울려요. 호떡과 아이스크림도 안 어울려요.뭐 그냥 그랬다구요.사촌언니야, 미안.난 그냥 집 가까운 홍대에서 놀래요.전체적인 평은 bluexmas 님과 다르지 않아요.홍대의 일식 디저트 까페, Urara에서 먹은 도라야키입니다.비싸지는 않은데 맛은 보통이고 양이 적으면 결국엔 비싼 거죠.Ur … more
땡큐~^^
컨셉은 좋은데 질적으로 떨어지는거 ㅠㅠ
비공개 덧글입니다.
오늘은 오랫만에 단체로 고기집에 다녀왔는데 ‘고기집은 왜 이리 시스템이 불편하고 정신사나워야 하나’ 여러 고민을 가져봤습니다..
저도 고기집 잘 안 가는데, 왜 고기집은 늘 그따위인지 모르겠더라구요. 얼마전에 어쩔 수 없이 새마을식당 갔는데, 음식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정신 하나도 없더군요.
쓰신것처럼 한식 과자나 음료.. 진짜 맛있지 않나요? 저는 옛날에 어디서 유명하다는, 잘 만든 유과 먹고 진짜 놀랐는데.. 정말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뭔지 그때 깨달았답니다. 설명해주신 음식들을 보니 한식 디저트를 양식 디저트 스타일로 예쁘게 바꿔놓은 가게같네요.. 진짜 한식 디저트를 정말 맛있게 만들어서 내놓는 곳이 있으면 일부러라도 찾아가보고싶어요 ^^
씁쓸하죠.
그러나 뭐라고 말해도 딱히 알아들을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들던데요. 그게 그냥 전반적으로 분위기며 설정이 그런 것이니까요. 호떡에 하겐다즈 바닐라는 솔직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