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this much
…I promise.
택시를 탔다. 라디오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가 누구였는지 모르겠지만, 디제이는 박학기의 노래를 틀었다. 너무 오랜만에 듣는 박학기였다. 거기에 황치훈을 들먹였다. 글을 쓰고 싶었다, 그의 노래 제목을 인용해서. 그러나 택시에서 내리자 아무 것도, 정말 아무 것도기억나지 않았다. 심지어는 노래 제목마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내 숨결의 많은 부분에 겨울이 깃들여 있다고 떠들어댄 다음 그래서 입 닥치고 겨울을 맞기로 마음먹었다, 라고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 숨결의 많은 부분에 겨울이 깃들어 있는데, 낭만적인 부분은 벌써 계절의 수호신에게 상납한지 아주 오래다. 그러니까 따뜻하고 포근한 계절은 나의 것이 아니고, 내 계절에는 차가움만이 남았다. 그만큼 나는 냉혈한일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차가운 계절이 다가온다고 나에게 기대는 건 일생일대의 차가운 실수일 수 밖에. 내가 꼭 지켜야만 하는 체온만큼 따뜻한 사람이 아니게 된지는 기억하지도 못할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다. 생명이라면, 어떤 종류라도 자신의 존재가 시작되는 순간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 아니겠나. 비단 나나, 아니면 그때 그 강가의 바람만큼 차가웠던 당신 뿐만 아니라 그 모든 생명이. 그래, 뜬금없이 당신 얘기가 나와서 한 마디 하고 넘어가자면, 그때는 정말 용서할 수 없을만큼 냉혈한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지금의 나는 그때 그렇게 당신에게 배운 것보다 더한 것 같더라니까. 물론, 나는 내가 당신에게서 배웠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감사도, 비난도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것 보다는 그 둘 사이의 어느 감정도 취할 수 없는 이 흑백의 상태가 아쉬울 뿐이야. 물론 의미는 다르다는 것, 알고 있기는 하지만 누군가는 회색과 회색의 사이에도 열 두 단계가 있다고 했는데, 나나 당신이나 단지 두 마주보며 절대 만날 수 없는 색깔의 카드 두 장만을 손에 꼭 움켜쥐고 이렇게 살얼음 위를 걷고 있잖아. 그러니 아직도 우리는…
…아아 이러면 또 내일 아침에 후회하겠지. 내가 이러는 것보다 그냥 후회하는 게 더 싫은거지.
# by bluexmas | 2009/10/20 03:06 | —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