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가 뭐길래
대체 +J가 뭐길래, 유니클로에 별반 관심도 없는 나같은 사람도 미친척 매장을 기웃거리게 만들었을까?
그렇다, 나는 유니클로에 별로 관심이 없다. 일단 몸통이 두꺼운 체형이라서 거의 맞는 옷이 없고, 또한 상표의 전체적인 색깔 역시 내가 좋아하지도, 또 내 피부색에 맞지도 않는다. 그래서 어쩌다 만원에 할인해서 팔길래 산 운동복 바지 같은 것들 몇 가지 빼놓고 유니클로는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오늘 밖에 나가는 김에 매장을 기웃거려본 건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대체 그게 뭐길래?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의 블로그도 읽어봤고 홈페이지도 들여다보았기 때문에 디자인이 어떻다는 건 대강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느낌이 다르고 또 원단이라는 것도 옷을 평가할때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에 직접 들여다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압구정동과 강남역에서 거의 다 팔리고 남은 몇 종류의 옷을 볼 수 있었는데, 화면상에서 그럴싸해보였던 벨벳 블레이저는 실제로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단,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유니클로는 물론 요즘 나오는, 일본에서 패턴 가져다가 만든 듯한 자켓들 그 어떤 것도 나에게는 잘 맞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말 잘 맞는다고 해도 149,000원을 주고 그걸 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바로 지난 주엔가, 백화점에 흔하게 있는 모 상표 매장에서 그보다 훨씬 질이 좋은, 우리나라에서 만든 자켓을 한 오 만원쯤 더 내고 사기도 했고.
그리고 이런저런 셔츠들이 걸려 있었는데, 그 가운데 아주 잔 분홍색 체크 셔츠를 어떨까 입어보았다. 의외로 너무 잘 맞아서 지갑을 열까 잠시 고민했는데, 무엇보다 면이 내가 알기로 포플린이라는 게 걸렸다. 사실 면 100% 셔츠는 원래 구김이 잘 가고, 또 다림질로도 완벽히 펴기가 힘든데, 특히나 얇은 포플린은 옥스포드 같은 원단보다도 훨씬 더 구김이 잘 간다. 그걸 확인하고 나자 불같이 치솟아 오르던 관심이 조금 사그러들었고, 가격(49,000원)을 확인하고 나자 아예 불이 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질 샌더의 이름에 이끌려 사기에 가격은 좀 아니다 싶었다. 아니, 디자인만으로 가격이 도저히 정당화되지 않는 품질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늘어나는 감으로 만든 브이넥 긴팔 티셔츠를 입어보았으나, 예상처럼 맞지 않았다. 사실 비싸서 관심 가지기도 어려우니까 그저 잡지에서 보아왔던 광고만으로 아 질 샌더는 굉장히 미니멀하구나, 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는데, 이렇게 미니멀한 디자인일수록 시선이 옷의 어느 한 부분 디테일로 가지 않아서 결국 원단이 좋아야 옷이 싸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유니클로라는 상표에서 마지막으로 기대하거나, 아니면 절대 기대해서는 안되는 것이 결국 원단이니, 이런 종류의 아무 장식도 무늬도 없는 셔츠는 잘 나가는 디자이너랑 협력했다고 내놓기에는 원단이 구린 유니클로의 태생적 한계가 그 발목을 잡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솔직히 말하면, 디자인은 결국 디자이너로부터 나오는 것이니까 그렇다고 쳐도 유니클로에서 보아왔던 다른 협력상품들에 비해 +J는 너무 유니클로와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들었다. 질 샌더가 얽히지 않고 그냥 저런 옷이 유니클로의 상표만 달고 나왔더라면, 사람들이 좋아했을까? 아니면 그런 옷들이 유니클로의 이미지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을까? 어떤 디자인이든 나올 수 있다는 건 알겠는데, 여태껏 보아왔던 것들, 그러니까 유니클로가 아닌 다른 상표들에서도 나는 어떤 큰 밑그림이나 틀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어째 여기에서는 그런 느낌이 별로 없었다.
패션도 문외한이고 경향이나 유행에도 솔직히 큰 관심은 없어서 더 할 얘기는 없는데, 그래도 요즘 유행인 것은 아닌 이런 종류의 상표나 디자이너 사이의 협력(collboration, ‘콜라보’ 라고도 한다더라. 일본에서 ‘코라보’ 라고 하는 데에서 나왔다던데?)의 거의 끝이 +J처럼 비싼 윗동네 디자이너와 저렴함을 추구 내지는 표방(그러나 우리나라의 가격은 솔직히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좀 세지 않나?)하는 상표의 만남이 아닌가 싶다. 굳이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다들 아는 것이, 이런 종류의 협력이 아니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질 샌더의 디자인을 느껴보겠나? 나는 그 뒷이야기 따위는 전혀 모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협력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또사람들도 그걸 알고 줄서서 사는 것 아닐까 싶다.
사실 사람들이 왜 유니클로와 같은 상표를 좋아하는가 생각해보면, 이미지와 상표에 관한 답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정도 가격에 그 정도 품질의 옷은 어디에나 많다. 물론, 디자인이나 색이 같은 가격의 다른 종류 옷들보다 나을 수도 있지만, 솔직히 내 눈에는 거기에서 거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런 다른 이름도 없는 같은 가격대의 옷들과 달리, 이 옷은 한데 모여서 ‘유니클로’ 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사람들은 옷을 입는다기 보다, 유니클로라는 상표를 입는 셈이다. 상표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입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누군가 ‘너 지금 입은 그 티셔츠 어디에서 샀니?’ 라고 물어봤을 때 같은 삼 만원짜리라도 ‘응, 동대문’, 이라고 대답하는 것과 ‘아 이거, 유니클로야’ 라고 대답하는 데에는 꽤나 큰 인식의 차이가 있다. 게다가 유니클로는 이제 미국에도 진출해서 세계적인 상표가 되었고, 만만치 않게 광고도 때려 그 이미지, 혹은 인지도 역시 좋다. 결국 사람들은 그걸 입는 셈이다. 거기에 질 샌더 같은 디자이너의 입김을 불어넣은 디자인이 선봰다니, 사람들이 줄을 서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이런 얘기는 전혀 새로울 것도 없다. 패션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다 알고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다 알았는데도 나는, 셔츠 한 벌에 49,000 원을 쓰지 못하고 그냥 집에 돌아왔다. 어느 한 편으로는 내 취향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 by bluexmas | 2009/10/04 20:23 | Style | 트랙백 | 덧글(36)
근데 유니클로를 유니클로이기 때문에 입는 사람이 있을지는 좀 의문이네요, (저를 포함해서)사람들이 유니클로를 좋아하는 이유는 ‘쓸데없는 디테일’ 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뭐 이렇게 생각하나 저렇게 생각하나 유니클로는 정말 대단한 브랜드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회장이 일본 최고 부자라니 얼마나 많은 옷을 팔아 제끼는지 상상이 가지도 않구요. 사람들이 패션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 수록 유니클로는 더더욱 성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떤 유행이 오더라도 결국 기본 아이템들은 꼭 필요하니까요 ㅎㅎ
기본적으로는 저도 유니클로의 품질이나 디자인, 색상 등등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소비자들이 선택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괜찮다고 인정하면서도 유니클로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제 취향은 아니거든요. 제가 취향이 좀 없기는 하지만.
근데 어제는 아무 생각없이 친구가 스웨터 산다 그래서 같이갔다가 +J땜에 들어가지도 못할뻔 했음-_-+ 결국 들어는 갔지만 제이플러스 상품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른 물건들도 제대로 못보고 그냥 나왔네요.
유명 상표라도 덕지덕지 붙이는 건 싫어하는 편이라
그렇다고 유니끌로가 질이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요
저도 유니끌로는 에누리하는 것만 삽니다 헤
그나저나, 곧 오시죠? 뵈어야죠^^
그런데 이제는 유니클로도 좀 변하지 않았나 싶긴 해요. 미국에 달랑 하나뿐인 소호 매장은 가끔 들르는데, 여전히 단순한 디자인도 있지만, 이번처럼 대대적으로 홍보는 안되었어도 작은 규모의 콜래보레이션은 하거든요.
구구절절 썼지만 저는 저렴한 가격대비 좋은 소재, 너무 오버하지 않는 디자인때문에 꽤나 즐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establishment들이 그러하듯 이런 것들이 결국 브랜드파워로 연결된다는 데에는 동의하구요.
저도 아마 옷이 몸에 좀 잘 맞으면 입을 것 같기도 한데, 제 체형과는 너무 걸이가 멀어서 입을 수가 없더라구요-_-;;; 사실 상표가 가진 힘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게 거의 전부일지도 모르구요…
전 이글루에 +J에 관한 포스팅이 넘쳐나길래 세일이라도 하나 싶었지만…
저도 작년에 한국에 갔을때 유니클로에서 후드티 하나를 샀었는데
품질과 디자인도 괜찮고 가격도 만원이 안하니까 좋더라구요
하지만 +J라인이 ‘유니클로 스러운’ 디자인이 아니라면 관심이 떨어지는군요
아 그리고 어제는 제가 술을 마시고 리플을 달았는데 사과드리겠습니다
어지러운 정신에 쓰기는 했는데 술깨니까 창피하네요…
죄송합니다 ㅠㅠ
너그러이 이해해주세요…
뭐 그러실 수도 있지요. 이왕이면 좋은 일로 술 드신 것이었다면 좋겠네요.
가끔 1만원에 1장씩 살 수 있는 허드랫바지 및 티셔츠의 공급소죠…
싸이크가 큰거까지 있어서 애용하고 있…ㅠㅠ;;
몸에 잘 맞지 않기도 하거니와, 남들이 다 열광하는 브랜드에는 짜게 식는지라 제게는 별로 끌리지 않는 브랜드네요. 제 친구는 그 자리에서 바로 길이 수선을 해줘서 좋아하던데. 기본적인 스타일에 적당한 품질의 옷은 유니클로가 아니라도 충분히 더 싸게 살 수 있잖아요? 적당한 가격의 캐시미어 컬렉션은 괜찮았던걸로 기억하지만.
다만 그걸 떠나서 콜라보레이션- 특히나 이번 질샌더 -은 기업 이미지와 세계화, 브랜드 아이덴티디의 가치를 한단계 업 시킬 수 있다랄까요. 한마디로 ‘더욱 글로벌화’ 쯤 되겠죠? 유니클로와 경쟁사라고 한다면 H&M이나 ZARA, TOPSHOP 이 있겠는데 이 세 브랜드는 이전부터 디자이너 콜라보를 비롯하여 여러 작업을 진행해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어 버렸지요. 그에 비하면 유니클로는 미비한 수준이었구요. ZARA는 예외적으로 콜라보 작업을 안하기로 유명한데 반면에 새 아이템 업데이트가 가히 광속급이라 꾸준하게 인기를 끌어 왔어요. 마케팅 적인 측면에서 이번 유니클로 프로젝트는 정말 참신하다고 생각해요. 안해도 되지만 함으로써 이미지 자체를 더욱 높인 결과를 낳아 버렸으니까요 ㅎㅎㅎ.
뭐 암튼 저도 이번에 +J 제품을 구입하긴 했는데 캐시미어 가디건 빼고 오늘 배송온 재킷은 그냥 그렇답니다. 환불할 예정이라지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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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쇼핑몰이 오픈하자마자 우르르 몰리는 현상에 기가막혔고…유니클로가 대학가에서는 이슈브랜드 수준이라기에 한동안 만나는 후배들에게마다 ‘유니클로가 왜 좋아?’라고 물었었거든요.
전 2000년 초 대학생이었는데, 시대를 걸치고 있는 가까운 후배가 ‘선배 때 지오다노랑 비슷하게 생각하면 될걸’이라고 말해주더라고요.
특별히 예쁜 것도 튀는 것도 고급인 것도 아닌데, 바로 그 특별하지 않은 점이 (특별하지 않은 가격에 더해) 유니클로의 매력이라며ㅡ
근데 질샌더와의 코라보는 그런 면에선 좀 매칭이 안 되고…^^;
저 역시 디자인이 좋고 아니고를 떠나 질 샌더와는 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비공개 덧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