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고목에서 핀 자신감의 꽃
자기가 알고 있는 무엇인가가 어떤 종류의 지식의 끝이라거나, 벌써 머리의 용량이 다 찼기 때문에 그게 무엇이든 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끈질기게 견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대화가 곧 고통이 된다. 그래도 자존심은 남아있어 쉽게 ‘응 난 그걸 사실은 몰라’ 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저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의 체계에 누군가가 말하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을 억지로 끼워맞춰 이해하는 척을 한다거나, 아니면 아예 대놓고 거부하는 몸짓을 보인다. 마치 나는 그만큼 알고 있고 또 그만큼 알고 있어서 세상 훌륭하게 살고 있으니 더 알 필요는 없다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한 사흘정도 연속으로 만나고 나면 사람을 만나서 뭔가 얘기한다는 것이 무한대로 꺼려지게 된다. 인간의 삶은 불행하게도 유한하고, 반대로 보통의 우주도 그렇기는 하지만 지식의 우주 역시 끝이 없다. 그저 하나의 점에 불과한 개개인이 무엇인가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그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걸 왜 어떤 사람들은 대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일단 그것부터 궁금하다.
위와 같은 문제를 만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꽤 많기 때문에, 때로 자신감을 논하는 것은 보통 이상의 시간낭비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감으로 무장하게 된다. 그러나 그건 사실 눈가리고 아웅하기에 불과하다. 사람은 다 알 수가 없다, 애초에. 어쨌거나 그런 무지에서 가지를 친 자신감으로 무장을 한 사람은 자기가 그저 하나의 유한한 점에 불과하기 때문에 끝없이 노력해도 정말 끝없이 모를 수 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에 주눅든 전혀 다른 유형의 개인을 자신감이 없는 존재로 몰아붙여 공격한다. 조직에 몸담아 보면 안다, 정말 얼마나 많은 종류의 자신감이 실제로는 끝도 없는 무지의 골짜기에 또아리를 튼 한 마리의 뱀과도 같냐는 것을. 그게 본인만 물어 죽이면 상관이 없는데 무지는 결국 안대와 같으므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뱀은 모두를 물어 죽인다. 결국 무지에서 비롯된 자신감은 세상을 생지옥으로 망치는 원동력이다. 나는 자신감 따위는 갖추지 않은 인간으로 살아야 될 것 같다. 그런 부류의 인간들은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무시한다. 그리고 자기의 무지를 지적하는 사람에게 화를 낸다. 치가 떨린다.
# by bluexmas | 2009/09/12 02:10 | — | 트랙백 | 덧글(8)
차라리 어떤 전문적인 지식에 그다지도 자신감이 있다면.. 오류를 지적함으로써 면박이라도 줄 수 있겠지만 자기의 사고방식에 대한 자신감은 정말.. 도망갈 수밖에 없더군요 ㅠㅠ